나는 매일 아침 다이어리를 꺼내 글을 쓰며 나를 비워 낸다. 자고 일어나도 지워지지 않는 어제의 묵은 감정이 있다면 빽빽이 써 내려가고 오늘을 시작하는 나의 감정과 몸 컨디션을 스스로 느껴보며 써본다. 그렇게 다이어리를 쓴지도 몇 년이 되었다. 그동안 쓴 다이어리는 몇 권이고 쌓여 내 책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고 쌓인 다이어리의 무게만큼 나도 가벼워졌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정제되지 않은 이 글들이 쓸모없이 종이를 빽빽이 채우고 있어 보일 수도 있지만 분명 이 한 장 한 장만큼 나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졌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절대 보여주기 부끄러운 수많은 나의 수치심, 혐오를 과감하게 쏟아내었다. 나 스스로조차 인정하기 힘든 나의 모습을 솔직히 써 내려가는 동안 어딘가 모르게 난 자유로워지고 내가 가벼워졌다. 비워내고 나니 가뿐했다.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날 것의 솔직함을 용납하기 어렵다. 가끔은 너무 날 것이어서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부적응자 같기도 하고, 천하에 몹쓸 년 같기도 하며 남편과 아이에게 한 없이 못된 아내이자 엄마처럼 느껴진다. 나 스스로 용납하지 않는 것들은 없는 척하며 마음속 깊이 우물을 파 집어넣은 지 오래이다. 등을 돌려 못 본 채 하지만 뒤에서 빼곡히 쌓여만 가는 감정들이 산을 이루어 그 그림자가 내 앞을 뒤덮은 지 오래다. 내 눈앞의 감정의 그림자를 애써 외면해도 무의식적인 자기혐오와 죄책감이 생긴다.
회사에서 괜찮은 사원 인척, 집에서 책임감 있는 딸인척, 남편에게 사랑스러운 아내인척,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유쾌하고 부드러운 사람인척 하며 살아가는 우리인데 스스로에게만큼은 ‘척’하는 걸 관두고 싶었다. 그래서 어디 가서 고해성사를 하듯, 누군가를 폭력적으로 소리 지르며 내 주먹을 마구 휘두르듯, 내 다이어리에 퍼부었다. 다이어리가 사람이었다면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중환자실에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이어리가 한 권, 두권 쌓이다 보니 내 주먹도 약해진다. 치명타만 날리던 내 주먹도 조금은 잠잠해진다. 이 악물고 있던 턱의 힘이 풀린다. 꽉 쥔 두 주먹에 힘이 풀려 손이 펴진다. 아… 후련하다.
다이어리는 후련해진 뒤에도 매일매일 써 내려가고 있다. 나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하루의 30분이다. 나와 대화하는 법을 배우게 된 나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내 생각을 내버려두는 여유까지 부리게 되었다. 그렇게 내 무의식을 발견하고 나를 더 알아간다. 내 다이어리도 곡소리에서 콧소리로 소리의 결이 달라진다.
하루하루 쌓이는 나의 잡다한 글들 속에 복잡한 마음을 비워내고 희망과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채워 넣는 것으로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