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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고 Mar 29. 2022

지평선과 밤하늘의 별

청개구리 같은 내 마음

20 중반이 되기 전까지 항상 외국에서 한국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한참 사춘기 소녀였던 중학생 때는 4음의 투박한 음을 내는 나의 핸드폰을 보며 한국의 64화음 오케스트라 같은 핸드폰의 멜로디를 가진 또래 중학생을 부러워했다. 2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갔었는데, 한국에 가기  달 전부터 어디를  것인지, 어떤 화장품을 사서 돌아올 것인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머리를  것인지 생각하는 날들로 채워졌다. 명동과 홍대 같은 번화하고 트렌디한 장소에 가서  나가는 학생의 무리와 함께 걷고 느껴보고 싶었다. 내가 있는 뉴질랜드의 지루한 평화로움, 지평선이 보이는  한적함이 따분하고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도 항상 한국을 그리워했다. 한국의 미용과 피부관리는 일본보다 저렴한 데다가 실력도 더 좋아서 한국에 가는 방학만을 기다렸다. 일본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유학생이었지만 한국에 오면 나도 든든한 부모가 있는 아이여서 부모한테 기대어 조금씩 억누르고 살았던 나의 욕구들을 마음껏 표출하는 여름방학을 보냈다. 평소에 나를 보지 못하는 엄마 또한 그 두 달만큼은 나에게 더 너그러웠다. 나에게 평소에 같이 다니면서 사지 못하는 백화점 옷들과 화장품들을 잔뜩 사주시곤 했다.


그렇게 찬란하며 산만했던 외국생활을 청산하고 20대 중반에 한국에 돌아왔다. 편안하고 그냥 익숙한 큰 퍼즐의 한 조각처럼 자연스러웠다. 홍대, 성수, 강남 한복판을 마음껏 누리고 보통 한국인처럼 예쁜 카페를 돌아다니며 셀카도 많이 찍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남자와 만나 실컷 연애하고 결혼했다. 대형 단지에서 아이를 키우는 육아맘으로 동네 상가에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커피숍에서 기다리는 지극히 평범한 30대 애엄마가 되었다.


한국에 와 10년이 거의 다 되어가니 시간마저도 멈추어져 있었던 것만 같은 뉴질랜드의 드넓은 자연도, 쏟아 내릴 것만 같아 위축된 마음으로 경의로움을 느꼈던 뉴질랜드의 밤하늘의 별들도, 작은 호빗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농사를 지을 것만 같았던 바닷가로 향하는 길이 그립다. 다시 시간이 멎은 것 같은 공간을 느껴보고 싶다. 지루한 평화로움도 따분한 바람도 맛보고 싶다. 몇 평 안 되는 일본의 좁은 자취방에서 외롭긴 해도 나 혼자만 간수하며 살던 그 단순함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미래도 불안하고 뭐든지 부족함으로 가득한 나인 것 같아 애써 어른이 되어가려 애쓰던 작은 나와 그 공간이 그립다.


한국에 오고 싶어 하던 외국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한국에서 평범한 일상을 10년간 지내다 보니 다시 해외생활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강해진다. 싫다 투덜투덜 거리지만 20년간의 떠돌이 생활이 내 핏 속 깊이 박힌 건지도 모르겠다. 불안과 혼란과 설렘과 호기심이 공존했던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싶다. 불안정한 아이였던 과거에서 조금은 날 이해하게 된 지금 다시 그곳,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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