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남편 연수를 따라 4개월 동안 브라질에서 머문 적이 있다. 신혼부부의 긴 행복한 여행이었다. 연수에서 주재원으로, '애가 없는 여행 커플'에서 '세 가족의 정착'으로 이름이 거창해진 만큼이나 해야 할 일도 거창해졌다. 수많은 업무적인 메일을 주고받게 된 나는 오랜만에 마치 총무부 직장인이 된 것만 같았다. 거대한 예산과 변화를 동반한 거대 프로젝트 앞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나, 가족의 총무다.
단기체류자일 때는 이 나라의 사회망과 연결될 일이라곤 유심을 사는 것뿐이었는데, 장기체류자가 되었을 때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 사회와 연결되어 간다. 이 복잡한 사회에 하나씩 연결될 때마다 내가 여기에 살러 왔구나 하고 실감이 난다. 핸드폰 개통으로 이 사회와 끈을 묶고, 집을 계약함으로 단단하고 굵직한 끈을 단단히 묶고, 개인 납세번호(CPF)가 세 가족 모두에게 주어졌다. 마트에 가서 계산을 하면서 번호를 누를 때마다 또 이 사회와 연결되었음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한 나라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그 사회에 촘촘하고 다양하게 엮이며 살아간다. 오랜 우정, 오랜 동네, 수많은 학교들과, 사회와 연을 맺으며, 어른이 되어서는 귀찮고 버거운 사회의 시스템에 깊숙이 들어간다. 세금을 내고, 그 나라가 주는 혜택을 받고, 가진 게 많아질수록 사회에 부담해야 할 몫도 많아진다. 이미 칭칭 감겨 있는 복잡한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또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다양한 방면으로 더 끈을 묶어 간다.
나는 여러 연결고리를 만들고 또 해체하고, 다른 곳에 가서 연결과 해체를 하며 살아왔다. 여러 개의 사회와 연결되어 본 경험으로 그 덕에 지금 여기에 와서도 대단한 적응력과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만 평생을 살아온 남편에게 이런 부드러운 연착륙은 다 내 덕이라며 우쭐댄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내가 진짜 한 사회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낡고 해진 끈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기도 하며, 끊어진 끈을 다시 매듭 묶어 이어 보기도 하는 삶. 지긋지긋하고 애증 가득한 동네에 동시에 안정감과 푸근함을 느끼게 되는 삶. 성장에 따라 나도 달라져 다른 색의 끈을 묶기도 하는 그런 삶. 그렇게 살다 보니 나의 삶의 궤적이 한 사회 속에서 뚜렷하게 보이는 삶. 그 사회의 다양한 맛과 냄새를, 폭넓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아름다움 삶.
어느 삶이 더 낫다고는 내가 어떻게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다만, 용기 내어 사회와 적극적으로 연결되어 보고 이방인, 방관인이 아닌 참여자로 살아가는 어른이 되고 싶다. 몇 년 뒤면 다시 끊어낼 이 브라질 사회와도. 다시 돌아갈 한국 사회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