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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I

2-4-2. 전력과 AI

AI 문명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엔진

by 유비관우자앙비

1️⃣ AI의 산소, 전력

AI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가 산소를 당연히 숨쉬듯, AI는 전기를 호흡하며 살아갑니다. AI의 성능은 GPU의 수로 결정되지만, 그 GPU를 움직이는 것은 전력입니다. 전력은 AI 문명의 산소이자 혈액이며, 공급이 멈추는 순간 인공지능의 사고 역시 정지합니다. 이제 AI 산업의 성장은 GPU 속도보다 전력망의 용량, 즉 인프라의 물리적 한계에 의해 결정되고 있습니다.


2️⃣ 폭증하는 에너지 수요 ― “AI가 전기를 먹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30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945테라와트시(TWh)에 이를 전망입니다. 이는 현재의 두 배를 넘고, 일본 전체 전력 사용량을 초과하는 수준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가 전체의 4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10퍼센트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GPT-4 모델을 학습하는 데만 약 1.3기가와트(GW)의 전력이 소요되었는데, 이는 서울시 하루 전력 사용량의 약 4퍼센트에 해당합니다. 오늘날 하나의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전력은 이미 중소 도시 한 곳과 맞먹는 수준이며, 데이터센터의 전력 구조를 보면 전체 소비의 절반 이상이 GPU 및 CPU 연산에, 약 30퍼센트가 냉각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냉각은 단순한 보조 기능이 아니라 효율을 좌우하는 핵심 경쟁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3️⃣ 전력 공급의 한계 ― GPU보다 느린 인프라

GPU는 몇 달마다 세대가 바뀌지만, 하나의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에는 평균 6년 이상이 걸립니다. 미국 전력 회사들은 AI 수요를 감당하려면 2030년까지 원전 40기 규모의 전력 추가 확보가 필요하다고 분석하고 있으며, 실제로 텍사스, 버지니아, 애리조나 등 일부 주에서는 전력망 포화로 인해 데이터센터 인허가가 제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AI 산업의 병목은 GPU가 아니라 전력입니다. 그리고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가장 빠르게 움직인 것은 기술기업이 아니라 금융자본이었습니다.


4️⃣ 전력의 병목과 자본의 진입 ― “전기를 가진 자가 AI를 가진다”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사모펀드와 인프라 펀드들이 전력망과 데이터센터를 동시에 인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전기를 단순한 에너지 자원이 아니라 AI 시대의 핵심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2025년 블랙록(BlackRock)은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xAI와 함께 미국의 얼라인드 데이터센터(Aligned Data Centers)를 400억 달러, 약 56조 원에 인수했습니다. 이 거래는 발전소와 송전망, 데이터센터, AI 운영까지를 아우르는 통합형 메가딜로 평가됩니다. 블랙록은 이어 최대 1,000억 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펀드(AIP)를 조성해 발전소·전력망·냉각 설비까지 패키지로 인수하고 있으며, 브룩필드, 맥쿼리, KKR 역시 유럽과 아시아에서 발전소와 데이터센터를 동시에 확보하며 ‘전력-데이터 이중 자산화(Double Assetization)’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블랙록과 뷔나 그룹이 20조 원 규모의 AI 데이터센터와 해상풍력 복합단지를 추진 중입니다. 이들은 발전소에서 송전망, 데이터센터, AI 서비스로 이어지는 ‘전력에서 데이터로, 그리고 자본으로’의 수직 통합 구조를 구축하며 새로운 AI 자본주의의 인프라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AI가 새로운 석유라면, 그 파이프라인은 전력망이고, 그 파이프라인의 주인은 이제 금융자본이다.” 전력망이 국가 기간산업이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으며, 이제 AI의 생명선은 전력보다 돈이 먼저 흐르는 곳에서 결정되고 있습니다.

5️⃣ 에너지의 삼분법 ― 재생에너지, 가스터빈, 그리고 원자력

AI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세계는 세 가지 에너지 축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재생에너지입니다. 아마존은 2025년까지 재생에너지 100퍼센트 달성을 조기 완료하며 민간 부문 최대의 풍력·태양광 구매자로 부상했습니다. 구글은 한화큐셀과 함께 아시아 지역의 대규모 태양광 프로젝트에 투자하며 24시간 탄소중립 데이터센터를 추진 중이며, 네이버클라우드는 춘천 데이터센터를 수력 발전과 직접 연결해 ‘그린 클라우드’ 브랜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기후나 날씨에 따라 변동하는 간헐성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는 가스터빈(LNG)입니다. GE, 지멘스, 미쓰비시가 시장을 과점하고 있으나 AI 수요의 급증으로 가스터빈과 제트엔진의 공급이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데이터센터 건설 일정이 지연되고, LNG 가격의 변동은 전력 단가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셋째는 원자력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컨스텔레이션 에너지와 20년 계약을 체결해 스리마일섬 원전을 재가동하고 애저(Azure) 데이터센터 전용 전력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TerraPower)는 와이오밍 주에서 소형 모듈 원자로(SMR)를 기반으로 한 AI 전용 발전소를 건설 중이며, 한국의 울진에서는 두산에너빌리티와 한화가 SMR-데이터센터 복합단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원자력은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지만, 정치적 리스크와 지역 갈등이라는 복합적인 변수를 안고 있습니다.

6️⃣ 에너지 지정학 ― “전력망이 새로운 지도다”

AI 인프라는 전력망을 따라 확장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저전력 단가와 풍부한 원전·풍력 자원을 기반으로 텍사스와 애리조나에 대규모 AI 캠퍼스를 조성하고 있으며, 중국은 내몽골과 쓰촨의 수력 자원을 활용해 국영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냉각 효율이 높은 북유럽 지역이 AI 데이터센터 허브로 부상했고, 한국은 평택과 용인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와 SMR이 결합된 복합 전력벨트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제 AI 패권은 GPU의 속도가 아니라 전력망의 지도 위에서 그려지고 있습니다.



7️⃣ 환경 리스크 ― AI의 ‘열과 물의 문명’

AI 데이터센터는 보이지 않는 열과 물의 도시입니다. 구글의 데이터센터는 연간 14억 리터의 물을 냉각용으로 사용하며, 대형 AI 모델 한 번의 학습은 약 5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합니다. 이는 항공기 6만 대가 내뿜는 탄소량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2023년 프랑스 OVH 데이터센터 화재, 2024년 판교 정전 사태는 AI 인프라의 물리적 리스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유럽은 데이터센터 신축 시 재생에너지 100퍼센트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고, 한국 또한 환경 영향평가 제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AI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이제 전력 효율이 곧 환경 윤리라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8️⃣ 전력 효율과 기술의 결합

AI 기업들은 냉각, 효율, 에너지 재활용을 통해 새로운 전력 전략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블랙웰(Blackwell) 아키텍처로 전력 대비 성능을 네 배 개선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액침냉각과 AI 열 제어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삼성전자는 폐열 재활용으로 에너지 효율을 35퍼센트 향상시켰으며, SK하이닉스는 LNG 복합 발전소와 연계된 HBM 생산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결국 AI 산업의 경쟁력은 기술의 정교함이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력을 다루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9️⃣ 결론 ― “전력망이 곧 AI 문명의 신경망이다”

AI의 미래는 코드의 문제가 아니라 전력의 문제입니다. 데이터가 AI의 기억이라면, 전력은 그 기억을 움직이는 전류입니다. AI가 발전할수록 더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고, 전력을 더 생산할수록 탄소와 열이 늘어납니다. 이제 인류는 AI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전력과 환경의 균형을 새롭게 설계해야 합니다. AI의 성장은 연산 속도의 곡선이 아니라 전력망 용량의 곡선 위에 서 있습니다.


다음 편 예고

이제 데이터(기억)와 전력(에너지)의 축이 완성되었습니다. 다음 5부에서는 AI가 이 기반 위에서 산업과 노동, 그리고 생산성 구조를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AI 에이전트와 소프트웨어 시장의 재편 ― 생산성의 혁명」이 그 이야기의 다음 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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