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비관우자앙비 Jan 03. 2019

정답러가 주변에 있다면,

원래 충언과 고언은 이음동의어다

다이어트에는 많은 방식이 있다. 굶는 것도 있고, 운동하는 것도 있고, 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기도 하고, 시술 혹은 수술을 받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사실 핵심은 식이 조절에 있으나, 어지간한 다이어터가 아닌 이상, 식이 조절에 어려움을 겪으며 “10년째 다이어트”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guilty pleasure” 등 조어가 생산되곤 한다.


다이어트는 사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연구가 진행된 분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였으나, 그 본질을 직시하기 싫어하는 (나같은) 사람들에 의해 “정답”은 불편하게 치부되기도, 아니면 아예 외면당하기도 한다.


살다보면 꽤 명확한 정답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매우 rare하다) 입바른 소리하는 사람들은 모난 돌이 정을 맞듯이 주변에서 매우 싫어한다. “아 그걸 누가 몰라서 그러냐”는 반론에 자주 맞서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다 보면 정답러는 공격적이 되기 시작한다. 정답이 공격적 논리를 가지고 있으면 뭐다? 반감에 의한 정답의 가치가 절하되며, 정답이 오답으로, 혹은 고려조차 되지 않는 옵션외의 선택지가 되어 버린다. 누텔라 샌드위치가 눈 앞에 있는데, 돌같이 딱딱한 통곡물 비스켓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항상 주변의 정답러를 애써 무시하며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불편한 진실”이라는 있어보이는 말을 사용하며, 인생사에 굳이 불편하게 살 필요가 있느냐, 좋게좋게 살아가자며 하하호호 넘기는 경우가 꽤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정답러가 우려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그 상황에 대해 언질을 들었거나 예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황하며 때때로 그 정답러를 욕하기도 한다.


팩트폭행이라는 조어는 이러한 배경에서 생긴 것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에 대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있고, 팩폭을 통해서는 “통쾌함”만 있을 뿐 실질적 변화가 생기지는 않기에 “폭행”이라는 단어로 팩트를 수식하는 것 같다. 폭행은 형사나 합의로 가며 짧은 호흡을 갖는 행위이기에.


소수의 똑똑한 사람들은 그 정답러들의 모난 진실을 잘 가공하여 현실의 기회를 만든다. 그리고 그 들은 앞서나간다,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지기도 하고. 예로부터 충신들은 칼을 많이 맞았다. 혹여 내 주변에 정답러를 내가 언어라는, 혹은 눈빛이라는 칼로 목을 내리치지는 않았는지 2018년을 돌아보게 된다.


당신의 주변엔 정답러가 있는가? 있다면 아껴주고 사랑해주자.

매거진의 이전글 욕망의 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