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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자까 Jun 19. 2023

호구보다는 미친 x이 되겠습니다.

게으른 알바생  이걸로 참교육 해준 썰



쟤야 쟤. 쟤가 걔래. 한국에서 온 미친 X.




역시 호구보다는 ㅆㄴ이 편한 세상인 건가?

그날 이후 나는 HQ안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






나의 첫 바리스타 경험을 만들어준 커피 HQ. 출처: Coffee HQ at Flinders station 구글 이미지




"김자까자까야, 이번주 토요일 12pm~3pm 쉬프트 혹시 대신해 줄 수 없을까?"


말레이시아에서 온 에밀리는 장거리 연애를 하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시드니로 가야 할 것 같다며 두 손 모아 코를 찡긋거리며 부탁했다.


카페에서 내가 일하는 시간대는 금토일 오후 5시부터 새벽 3시. 호텔 레스토랑에서의 일은 아침 11시면 끝이 나기 때문에 잠깐 쉬고 바로 일을 할 수 있어서 수락했다. 이런 날이면 새벽 5시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다음날 새벽 3시에 일이 끝났다. 장장 19시간의 노동이었다.


몸은 고되고 배는 고프고 피곤에 쩌들어 살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받는 주급을 볼 때면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대학 등록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으니깐.


"오케이! 내가 대신 일 해 줄게"


3시간을 더 일하면 45불이나 더 벌 수 있으니 나는 휴식 대신 돈을 택했다.


"아, 근데 내가 일하는 시간대에 미셀이라고 모나쉬 학생이 한 명 있거든... 음.. 좀 나무늘보인데 얘는 착해. 참고해~"


내가 일 하는 시간대에선 주로 한국인 필렉스와 함께 했다. 뉴질랜드에서 온 워홀러 애나, 호주인 대학생, 중국인 유학생과도 함께. 오전에 오픈했던 사람들은 퇴근을 하고 오후조 아르바이트생들이 HQ로 몰려들었다. 토요일 오후를 함께 할 알바들은 에밀리를 대신한 나와 네덜란드인, 나이지리아에서 온 미셀이 한 팀이 되었다.


서로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얼마나 여기서 일을 했는지, 호주엔 얼마나 있었는지 호구 조사가 진행되었다.


"안녕? 난 모나쉬 다녀.  여기서 일한 지는 한 달 조금 안 되었어. 반가워~"


'아... 쟤구나. 모나쉬 대학생의 나무늘보라는 애가.'


모나쉬 대학교 2학년인 미셀은 나이지리아에서 왔다고 했다.  키 173에 까만 피부, 머리는 드레드를 땋고, 컬러풀한 티셔츠와 청바지를 즐겨 입는 20대 초반의 여자애였다. 162인 나는 미셀 옆에 서면 고무나무의 매미처럼 작게 느껴졌다.


일 할 때의 나는 말 수 가 적은 편이었다. 아무래도 로이스 호텔에서 왕따를 겪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친해지는데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한가 할 땐 다들 프리 토크를 즐겼다. 아시아권 유학생들과는 비교적 대화가 덜 부담스러웠는데, 영어권 유학생들과는 영어 대화는 확실히 어렵게 느껴졌다.


영어 때문에 말 수 가 적은 척을 하는 나는 한국에서 온 조용하고, 일 잘하는 애로 비쳤다.  빠릿빠릿하게 커피를 만들고, 쉐이크를 만들고, 샌드위치를 데워서 포장하고, 뒷정리까지도 말끔하고 빠르게 처리하는 그런 애로.


반면에 미셀은 정말 느렸다.

걸음걸이 속도, 주문을 받고 계산하는 속도, 커피 빈을 갈아 스탬프를 찍는데 한 오백 년. 우유 스팀을 치는데 한 오백 년. 라떼 만드는데 300년. 테이크아웃 뚜껑을 덮는데 100년이 걸렸다. 셰이크라도 주문받는 날에는 만들고 포장까지 1000년이 걸릴 만큼 속도가 느렸다.


함께 일하는 다른 스텝들은 미셀의 그런 느린 행동들을 답답해하면서도 아무도 선뜻 "빨리해"라고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서로 눈으로 ㅆ욕만 하며 레이저를 뿜을 뿐이었다. 그것도 미셀이 안 볼 때만.


더운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행동이 느리다고 어디서 본 기억이 난다.

하지만 더운 나라 사람들 모두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는데, 유독 미셀은 느렸다. 느린 것뿐만 아니라 틈만 나면 아이폰을 들여다보며 페이스북을 보고 있기 마련이었고(주로 남자), 쉐이크를 만들고 난 후 뒷정리를 제때 하지 않아 다른 사람이 하기 일쑤였다. 늘 5분 정도 지각을 했고 퇴근은 칼 같이 지켰다. 고집은 또 어찌나 쎈지 다른 알바들과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무조건 본인의 말이 다 정답이란 듯 우겼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호주 멜버른, 그리고 다양한 인종이 함께 일하는 여기 카페 HQ엔 일 못하고, 느리고, 고집 센 젊은 꼰대 1명이 존재했다. 함께 일하면서 딱 만나기 싫은 유형 1순위 였다.


'어차피 나는 오늘 하루만 얘랑 일 하면 돼'


안심하고 있었던 2달 후 금요일 오후 5시.

그녀가 있었다. HQ 카페 부스 안에.


'아니 왜? 미셀 쟤가 저기 왜 있지?'


목토 일을 했던 그녀는 금토로 쉬프트와 시간대를 바꾼 것이었다. 그녀와 목요일에 함께 일했던 스텝들은 반가움에 소리를 질렀고, 나는 마음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뭐 그래도 영 나쁜 애 같진 않았으니깐'


아니, 그녀는 나쁜 X이었다.

사카스틱 랭귀지(친절한 듯 돌려까서 맥이는 영어 표현)를 구사하며 번번이 나를 무시했고, 내가 묻는 말엔 항상


"Sorry? 뭐라고? 뭐라고? 잘 못 알아 들었어. 다시 또박또박 말해 볼래?"


분명히 알아들은 거 뻔히 아는데 매번 못 알아듣는 척을 했다.


'다 티 나거든? 기집애야?'


그리고 항상 아시아권 사람들은 너무 시끄럽다면서 자기네 반 중국인 친구 욕을 해 대었다. 물론 그건 나도 인정이지만 자꾸 중국과 한국을 마치 1+1 묶듯이 다 싸잡아서 욕을 했고, 아시아 대부분이 시끄럽다면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대었다. 그러면서 본인은 나이지리아에서 왔지만 어릴 적 프랑스에서 자라서 반은 프랑스인이라며 자신의 국적을 바꾸곤 했다.


그녀와 말을 많이 섞지는 않았지만 함께 일하는 1달 동안 스트레스 마일리지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한번 말을 해 봐?'

하다가도 나보다 무려 11cm이나 키가 큰 흑인 여성 앞에선 한 없이 쪼글아 들었다. 사실 조금 무서워서.


그러던 어느 무더운 날이었다.

미셀과 나 단둘 이만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줴엔장. 알바 한 명이 갑자기 빠진 것이다.


그녀는 평소에도 농땡이를 자주 피우지만 유독 나와 있을 땐 더 심하게 농땡이를 피웠다. 영어를 잘 못하는 한국에서 온 요 꼬맹이를(그녀의 입장에선) 만만하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HQ 카페는 플린더스 역 안에 있다 보니 일반 손님, 여행객 못지않게 기차 운전수 분들이 자주 왔다. 하루에 기본 적으로 커피를 3~6잔이나 때려 마시는 호주인들 답게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는 기사분들이 많았다.


아직 기차 시간이 조금 남아 있는 기사 분들과 가끔 스몰 토크를 하기도 해서 제법 나의 단골도 있었다. 하지만 바쁠 땐 나도 기사 손님도 알아서 짧게 대화를 마치고 각자 할 일을 했다. 이게 기본 아닌가?

하지만 우리의 미셀은 달랐다.



반가운 HQ. 머핀 정리 항상했었지 ㅎㅎ 출처: Coffee HQ at Flinders station 구글 이미지



12시가 조금 넘은 나른한 오후.

몇 번 얼굴을 봐서 기억하고 있는 기차 운전수가 왔다. 나는 우유를 정리하고 있었고, 미셀이 주문을 받았다. 손님은 별로 없어서 한적했다. 그는 평소와 동일하게 라떼 1잔을 주문했고 미셀은 그라인더에 커피 빈을 갈기 시작하면서 손님과의 대화도 시작했다. 커피를 스티밍 할 때도, 라떼를 만들 때에도, 커피를 건네주는 그 순간 까지도 둘의 대화는 이어졌다.


'뭐. 친한 사인가? 그럴 수 있지' 싶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기차 운전수는 커피를 받아 카페 뒤쪽에 마련된 작은 바 테이블에 앉았고, 일어서면 얼굴이 빼꼼 카페 안으로 넣을 수 있는 높이였다. 그곳에서 미셀과 운전수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 사이 나는 우유 정리를 마쳤다. 새로운 손님 두 팀이 왔고, 혼자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고, 머핀을 데우고, 손님에게 전달했다. 손님 2팀을 받는 동안 미셀은 꿈쩍도 하지 고 기차 운전수와의 토크에 전념했다.


그녀가 토크에 전념하는 사이 한 시간이 지났다.

한 시간 동안 나만 혼자 일을 한 것이다. 혼자 충분히 할 수 있는 손님의 양이어서 처음 1시간은 그냥 봐주었다. 2시간이 넘어가니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하나 싶어서 놔두었다. 3시간이 넘어가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열받아서.


'아니 이건 아니지 않나? 농땡이의 수준을 넘어 완전 나를 호구로 아는 것 같은데? 그리고 저 기차 운전수는 왜 안 가?'


3시간은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 하기엔 적절했다. 마침내 나의 뚜껑은 '펑' 소리와 함께 열렸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요 나쁜 계집애에게 한국인의 매운맛을 보여 줄 때가 온 것이다.


"미셀,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뭐 하긴. 이야기하잖아"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가 당당히 말했다.  여전히 기차 운전수는 얼굴만 빼꼼 내놓은 체였다.


"그러니깐.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대화한다니깐"


"그러니깐. 왜 지금껏 대. 화. 만. 하고 있냐고?"


나의 단호한 태도와 눈빛을 보고는 그녀도 뭔가 잘 못 되어 가고 있다고 살짝 느끼는 눈치였다.


"단골손님인데 반가워서 이야기를 조금 하고 있었어."

"조금? 너 지금 저 손님이랑 얼마간 이야기한 줄 알아? 벌써 3시간 째야. 그 3시간 동안 나 혼자 주문받고, 커피 만들고, 샌드위치 만들고, 뒷정리 다했어. 지금이 쉬는 시간이야? 근무하는 시간이잖아? 왜 놀아? 넌 여기 놀러 왔어?"


"어.... 잠깐만요.."

기차 운전수가 나의 말을 잘랐다.


"아니. 그만요. 당신도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여긴 일하는 장소예요. 아무리 반가운 건 반가운 거고 3시간 동안 직원이랑 이렇게 대화하는 거 민폐인 거 모르게요? 그만 가 주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가시라고요!"

"미안합니다..."


기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3시간 10분 만에 카페를 떠났다.


"저기, 너무 심한 거 아냐? 사람을 그렇게 내쫓으면 어떡해?"

"뭐? 심해? 너 심하다는 뜻 몰라?  아.. 진짜 어이없네. ㅆㅂ!"   


불쑥 한국욕이 튀어나와 버렸다.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몰라도 의미는 전달이 된 듯했다.


"너 지금 욕했지?"

"그래 욕했다. 어쩔래? 넌 여기 일하러 왔냐? 놀러 왔냐? 항상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뭐 하는 짓이야?"


한번 터져버린 화는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영어와 한국어, 한국 욕을 섞어가며 미셀에게 쏟아부었다. 그녀는 당황을 했고 횡설수설  했다.


"아, 됐고 닥쳐. 제대로 일 안 할 거면 그냥 집에나 가!!"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내가 잘 못 들은 거지?"

"아니 제대로 들었어. 닥치고 집에나 가라고.  어우 이 ㅁㅊㄴ"


흑인이라 조금 무서워서 처음엔 피했지만 한번 열린 뚜껑은 멈출 줄 모르고 폭주 기관차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마침 오후 3시가 되었고 3시 쉬프트를 맡은 호주 여자애와 중국 남자애가 왔다. 카페 멀리서부터 큰 소리가 들려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와봤더니 내가 언성을 높이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쪼그맣고 별로 말이 없던 한국 여자애가 눈을 희번뜩 거리며 지랄하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쉬프트를 작성하고 카페를 떠나려는 찰나 뒤에서 욕이 들렸다.


"퍼킹 코리안"

나는 뒤돌아 보며 미쉘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날렸다. 미소와 함께.





플린더스역을 떠나려던 찰나, 호주 여자애가 뛰어와서는 왜 그러냐고 좌초지종을 물었다. 그래서 나는 친절히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호주애는 연신 "오 마이갓~ 엄벌리버벌"을 외치다 내일 보자고 손을 흔들곤 카페로 돌아갔다.


평상시 농땡이를 자주 피우고, 지각을 밥먹듯이 하고, 일을 대충대충 했던 미셀은 이날을 계기로 공공의 적이 되었다.


그리고 이 날 이후 나는 성격 더러운 한국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조용하지만 화가 나면 성격이 더럽다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다고.

거침없이 욕을 구사하고,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말하는 미친 x이라고 소문이 나고 있었다.  

이거 욕이야 칭찬이야? 어쨌든 만만하게 보이는 호구보다는  ㅆㄴ인 게 더 나을 듯싶었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다른 시간대에 아르바이트하는 스텝들이 나를 구경하러 내가 일하는 시간대에 와서는 종종 인사를 하고 갔다.


"네가 걔구나? 한국에서 온 애. 미셀을 한방 먹였다는. 이름이 뭐야? 페북해?"


희한한 일었다. 미셀과의 사건 이후 나는 HQ의 인싸가 되어 있었다.

3개월 후 그녀는 근무 태만으로 매니저에게 잘려 HQ를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영어를 못해도 싸울땐 기세가 더 중요하다는 것.

나는 차츰 영어 울렁증에서 벗어나고 있었고, 더이상 영어권 특히 흑인과의 대화가 무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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