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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자까 Dec 12. 2023

네? 영어선생님이 중국사람이라고요?


신발끈을 묶고 현관을 나가려는 찰나 핸드폰을 챙기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이미 신은 신발을 벗기가 귀찮아진 나는 무릎을 희생시킬 건지, 칼날 발로 뒤뚱뒤뚱 갈지 잠깐 고민하고

무릎을 희생시켜 방에 있는 핸드폰을 가방에 쏙 집어넣었다. 얼얼해진 무릎을 펴고 종종걸음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아. 이러다 지각하겠는걸?


평소 같으면 호텔 조식 알바를 끝마치고 바로 학교로 향했지만, 오늘은 옷을 갈아입고 가야 했다. 멀쩡히 길을 걷다 새똥을 팔에 맞았기 때문이었다. 평화의 상징 비둘기는 내겐 그저 내 옷을 버리고 내 시간을 잡아먹는 그런 악마 같은 새새ㄲ 에 불과했다. 


오늘의 첫 수업은 영어 시간. RMIT 파운데이션 수업 후 첫 영어 시간이었다. 강의실에 도착했는데 학생들은 아무도 없고 웬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응? 강의실이 여기가 아닌가? 스케줄표를 확인해 보니 여기가 맞는데?


그녀의 첫인상은 복숭아 뼈까지 기장이 내려오는 검은색 슬랙스에, 오색 찬란한 꽃무늬 난방, 검은색 재킷을 툭 걸쳤다. 빠글 머리, 검은색 안경을 쓴 친근한 60대 한국 할머니 같았다. 누구지? 그녀는 나를 보며 인상 좋은 미소를 날려주었다. 


"웰컴~일찍 왔네요?"

"아... 네,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코리안?"

이라고 물었고

나는

"예스. 아엠 코리안"이라 답했다. 


그렇다. 그녀는 영어 과목 선생님이셨다. 랭귀지 스쿨만 다니다 본격적인 학교 영어 수업에 살짝 기대를 했었는데. 그런데 웬걸? 영어 선생님이 중국 할머니라고?

 

중학교 때의 영어 선생님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녀 또한 60대 할머니였는데 처음 배운 영어의 흥미를 뚝 떨어 뜨려 놓는 장본인이셨다. 영어는 몰랐지만 발음이 상당히 이상하다는 걸 알 정도였고, 뭘 물으면 꿀밤을 때리며 그냥 외우라고만 하는 그런 주입식 할머니 영어 수업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윽고 클래스 메이트들이 삼삼오오 도착했다. 분명 나는 늦은 것 같았는데, 다른 학생들이 더 늦게 와서 그런가? 졸지에 1등으로 온 착실한 학생 되었다. 허허이.


약간의 실망감으로 시작한 영어 수업은 그녀의 발음으로 신뢰도를 살짝 상승시켰다. 중국인 특유의 엑센트는 섞여있었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러니깐 RMIT 파운데이션에서 영어를 가르치시겠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다시금 느꼈다.



그녀의 수업은 토론과 에세이 지옥이었다. 매주 하나의 주제가 정해지면 찬성과 반대 의견을 나누어 토론을 해야 했다. 그 첫 번째 주제는 매우 심오했다. 

'여자는 왜 부루카를 써야 하는가! 찬성? 또는 반대?'

이슬람 여자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눈만 가린 채 (눈을 가리기도 함) 신체의 모든 부분을 가리는 의복에 대한 주제였다. 나의 마음은 반대였지만 어쩌다 찬성의 편에서 토론을 하게 되었다. 내 신념과 상관없이 반대의 의견을 말해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고역이었고, 내 짧은 영어 실력으로는 이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을 토로하기 쉽지 않았다. 


숨 막히는 토론배틀이 끝이 나면 에세이를 과제로 제출을 해야 했다. 말은 어찌어찌 얼버무려 간다 해도 에세이는 정말이지 머리를 더 쥐어뜯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주제에, 반대도 아닌 찬성 의견을 써야 한다는 것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마음의 백배쯤 들었다. 잔뜩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인도에서 온 작은 소녀가 말은 건넸다. 


"내가 좀 도와줄까?"


신을 영접하듯 하늘에서 BGM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아래위로 흔들었다. 이때부터 이 소녀는 나의 에세이 선생님이 되었다. 정말 이 친구가 없었다면 나의 에세이 과제는 매번 낙제했을 것이 분명했다. 훗날 이 친구가 나를 좋아하는지도 모른 체 가깝게 얼굴을 들이민 것, 카페테리아 갈 때 팔짱을 낀 것, 함께 런치를 먹으며 웃은 것 이 모든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이 친구는 나에게 적극적으로 에세이 과제를 도와주었다. 

매 순간 설레었을 그녀를 생각하니 더 미안해졌다. 파운데이션 코스가 종료되던 파티에서 나에게 고백할 줄은 꿈에도 이땐 몰랐었다. (이 에피소드는 다음에 풀게요~)


첫 번째 영어 수업이 끝이 났다.

생각보다 유쾌한 성격의 할머니 선생님은 피는 못 속이는 분이셨다. 확실히 중국인 학생들에게 조금 더 친절했는데, 쉬는 시간마다 중국어로 자주 대화를 하기도 하고, 더 웃어주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어쩌면 에세이 점수도 조금은 더 후하게 준건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들었지만 나의 에세이도 통과되는 걸 보니 모두에게 후한 것 같아 조금은 안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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