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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자까 Nov 06. 2023

누나, 돈독 옮았어?

알탕과 함께 물 건너간 로맨스



손님이 뜸해진 새벽 1시.

플린더스 역사 안에 있는 테이크아웃 카페엔 적막만이 흐른다. 간간이 오가는 사람들만 있을 뿐 12시부터 개미새끼 한 마리 없다. 손님도 없는데 왜 영업은 3시까지 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는 꿀 빠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오만 있었다. 이 시간은 잠과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시간이었다.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해서 호텔에서 조식 타임 알바를 하고, 11시부터 오후 3~4시까지 파운데이션 수업을 듣고, 조금 쉬다 카페로 아르바이트를 오는 강행군인 날은 졸음 앞에 장사 없었다. 병든 닭마냥 꾸벅꾸벅 졸고 있자면 체온은 내려가 더욱 싸늘하게 느껴지는 멜버른의 밤이었다.




호주 멜버른의 플린더스 스테이션
플린더스 스테이션 안에 있는 커피 HQ. 밤 12시부턴 개미새끼 한 마리 없다.




졸린 눈을 비비고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잠을 깨웠다. 옆을 보니 고동색 비니를 쓴 필렉스는 핸드폰으로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보다 5살 더 어리다고 쌩쌩한 저 모습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재밌어?"

"그냥 하는 거지 뭐"

"아오... 손님도 없고, 3시까지 언제 버티냐?"

"그냥 2시에 문 닫을까? ㅎㅎ"


장꾸 같은 눈빛으로 나의 동조를 구하는 필렉스에게 나는 "노"를 외쳤다.

그랬더니 필렉스는 불퉁한 입술로 삐죽거리며 말했다.


"누나, 돈 독 옮았어? 왜 이렇게 열심히 해? 그냥 대충 하자~"

"누군 좋아서 이렇게 새벽에 이러고 있겠니? 그래도 알바 시간은 맞춰야지"


한국사람이지만 캐나다 시민권자인 필렉스는 부모님의 지원아래 호주 멜버른에서 유학 중이었고, 엑스트라 용돈을 벌기 위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와 난 출발점이 달랐다.




돈 독

이 두 단어를 듣는 순간 20살의 내가 떠올랐다.


때는 바야흐로 온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던 2002년. 나는 갓 스무 살이 되었다.

술고래 아빠와 좁디좁은 통영 촌구석을 벗어나 언니가 살고 있는 서울로 상경을 했다. 앞으로 뭘 할지 몰랐지만 우선 돈을 벌어야 했기에 강남역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당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알바를 했는데 예전에 '토마토'라는 김희선 주연의 드라마를 찍었던 레스토랑이라고 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도, 야외 테라스의 테이블도, 하얀색 셔츠와 검은색 조끼, 하얀 앞치마는 입을 때마다 늘 통영 촌년을 설레게 만들었다. 막내였던 나는 가끔 근처 분식점으로 음식 픽업 셔틀을 갔다.


미유.

레스토랑에서 1분 거리 아래에 있던 분식점이었는데,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김밥과 쫄면, 우동을 가지러 갔다. 딸랑. 통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웬 장발의 사내가 콩나물을 다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햇살이 잔뜩 들어간 분식점의 테이블은 순식간에 세피아 톤의 영화 무드처럼 따듯해 보였고, 장발의 사내는 콩나물을 다듬던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내 마음도 그분께 어서 가고 있었다. 항상 말 많은 아줌마만 있었는데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 분식집에서 일한다고? 아들인가? 누구지? 온갖 물음표 살인마가 내 마음을 휩쓸었다.


"전화 주문한 거 찾으러 왔는데요...."

"아, 네, 잠시만요"


장발의 사내는 주방에 픽업 왔다며, 나머지 음식을 포장해서 새하얗고 고은 손으로 햐얀 봉지를 건넸다. 봉지를 받으며 손가락이 살짝 부딪혔는데 세상 보드라운, 고생이라곤 1도 해 보지 않은 손인 것이 틀림없었다. 역시 아들인가?


그날 이후 분식점 음식 픽업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오늘은 분식 말고 딴 거 먹을까?"

"저는 김밥이 먹고 싶어요~ 쫄면이랑! 우리 분식 먹어요. 매니저님"


뺀질나게 분식집을 드나들며 장발의 사내와 말도 못 섞었지만 손님과 직원의 대화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미유 분식점 문 앞에 알바구함 구직 공고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건 절호의 찬스였다. 저 사내와 친해질 기회!!


"저... 주문한 음식 찾으러 왔는데요."


그는 보드라운 손으로 새 하얀 포장 봉지를 건넸다. 내가 나가지 않자 왜 안 가니?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우물쭈물거리다.


"여기 오후 알바 구하던데, 제가 일하면 안 될까요?"


그날 사장님과 간단히 면접을 보고 나는 합격 프리패스를 얻어 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미유 분식집 알바 첫날.

장발의 사내와의  핑크빛 로맨스를 꿈꾸며 최선을 다해 치장을 했다. 꾸안꾸를 몰랐던 나는 꾸꾸꾸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분식집 알바 1달 후 핑크빛 로맨스는 시뻘건 알탕과 함께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웃으면서 나에게 상처만 남겨준 장발의 사내와 함께.





알 탕

시뻘건 국물에 동태알과 고니, 쑥갓이 먹음직스럽게 팔팔 끓고 있다.

동시에 내 마음도 팔팔 끓어 넘치고 있다.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깜빡이면 뚝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핑크빛 로맨스를 꿈꿨지만 현실은 시뻘건 알탕 앞에서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돈독 옮았냐는 소리나 듣고 눈물이나 흘리고 있다니. 최악 중에 최악의 상황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미유에서 알바를 한지 한 달이 되었을 무렵 회식을 하게 되었다. 사장님 부부와 주방 보조 실장님, 장발의 사내, 부산에서 온 동갑내기 여자 알바생 그리고 나 이렇게 6명은 남자 사장님의 적극 추천으로 미유 근처에 있는 호프집으로 회식을 가게 되었다. 메인 메뉴는 찌개류와 제육볶음인 상당히 향토적인 술집이었다.


그 장발의 사내는 사장님의 아들이 아니었고, 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며, 집이 근처이고 잠깐 알바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회식동안 분위기는 무르익어 가고 있었고 맞은편에 앉은 장발의 사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이놈의 알탕에 있던 고춧가루가 치아에 붙었는지 몰라 소심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한참 왁자지껄한 가운데 갑자기 주제가 나에게 쏠리게 되었다.


"그래 통영에서 왔다고? 서울 와서 이젠 뭐 할 거야? 대학은 왜 안 갔어? 알바를 왜 두 개나 해?"


등등 질문 폭격이 쏟아졌다.


"대학은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안 갔어요. 지금 따로 하고 있는 게 없어서 우선 알바를 두 개 하고 있어요."


대학 갈 형편도 안되었고, 공부도 못했지만 허세가 있던 20살이라 나는 말을 아꼈다.


"뭐 하러 그렇게 아등바등 알바해? 너 돈독 옮았어?"


무심한 듯 장발의 사내는 말을 툭 내뱉었다.


돈독.

그 말이 왜 그렇게 가슴에 꽂혔을까?

아등바등 살아온 내 삶을 엿보기라도 한 걸까? 애써 명랑한 척 살아온 나의 마스크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알 수 없는 울컥함에 내 눈엔 눈물이 고였고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뚝 흘리고 있었다.


순간 모두 당황했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어가고 있었다. 옆에 있던 동갑내기 친구 박카스는 (늘 박카스처럼 에너지가 넘쳐 내가 지어준 별명)는 휴지를 뜯어 나에게 건네주려다  팔팔 끓고 있는 알탕냄비를 툭 쳤고 그대로 시뻘건 국물이 내 옷에 쏟아졌다.


뜨거운 알탕보다 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발의 사내는 나를 달래려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고, 이미 상해버린 마음은 굳게 닫혀 버렸다. 회식은 싸해졌다. 화장실로 뛰어간 나는 펑펑 울었다. 그 "돈독" 이란 단어가 이렇게 가슴을 후벼 팔지는 몰랐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마셔서 술에 취해 감정이 격해진 걸까? 좋아하던 남자애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 슬펐던 걸까? 아등바등 살고 있는 삶을 들켜서 속상해서 운 걸까?

어쩌면 셋다 일지도 모르겠다.


박카스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여 시뻘겋게 변해버린, 사놓고 처음 꺼내입은 새하얀 카라티를 닦아 주었다.


시뻘건 알탕과 함께 혼자만의 짝사랑 로맨스는 끝이 났지만 이날 이후 나에겐 베스트 프랜드가 생겼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베프인 박카스와는 가끔 알탕의 추억을 이야기하곤 했다.


"야, 기억나? 네가 예전에 호프집에서 내 옷에 알탕 쏟은 거?"

"또 시작이냐? 고마해라~ 마이 무따이가?"


그녀는 부산 여자, 나는 통영 여자.

로맨스는 잃었지만 베프를 얻은 사건이었다.


지금은 돈독 옮았냐는 말에 웃으며 넘길 수 있지만, 그땐 마음도 여리고, 정말 가난했고, 자존감도 바닥이던 때라 마음에 생체기가 크게 났었다. 햇살 가득한 분식집에서 콩나물을 다듬던 장발의 사내. 술김에 돈독이란 단어 하나로 내 눈물을 그렁그렁 뽑아간 사내. 지금은 베프가 된 친구와 한 남자를 두고 경쟁 아닌 경쟁하던 그때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코끝을 스치는 새벽 공기가 이제 곧 3시가 됨을 알려 주었다. 필렉스와 나는 카페 마감을 하고 내일 보자며 헤어졌다. 청소차량만 보이는 텅 빈 스완스톤 스트릿을 걸으며 노란색 불빛 아래 저벅저벅 집으로 향했다.




퇴근길 플린더스 역 앞 풍경
낮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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