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러브. 호주 할아버지 선생님의 성함이다. 한국엔 김사랑이 있다면 호주 멜버른엔 존사랑이 있었다.
존 러브 선생님의 과목은 'Principles & Elements of Design'으로 다소 익숙하지 않은 단어의 조합만큼 선생님은 매번 희한 안 과제들을 던져 주었다.
그의 첫 수업은 야회 현장 학습으로 시작되었다.
플린더스 스테이션 맞은편에 있는 페더레이션 광장에 모인 그룹 8의 25명의 학생들은 아직은 어색한 서로의 공기를 맞으며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이윽고 존 러브 선생님이 백발의 머리를 흩날리며 괴짜 박사 같은 비주얼로 등장했다.
"오늘은 멜버른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건축물을 보면서 프린시플과 엘리먼트 디자인의 모습들을 볼 거예요. 자. 이제 이쪽으로 갈까요?"
프린시플도, 엘리먼트 디자인도 생전 처음 듣는 나는 동공이 흔들렸지만 일단 우르르 행렬에 나도 합류하였다. 그때 눈에 장난기 많은 18살 발리에서 온 남학생 디디가 말을 걸었다.
"안녕? 너 옷 이쁘다~ 한국사람이지?"
짜식 뭘 좀 아는구나. 해외에서 옷 잘 입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사람들이 많다던데, 역시 그런 건가? ㅎㅎ
"이건 무슨 수업이래?"
말레이시아에서 온 18살 볼살 통통하게 귀여운 쑤웨이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화에 참여하였다.
"나도 잘 모르겠어. 일단 따라가자"
아까부터 눈이 마주치던 한국인 여자 세명과도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반에서 한국인은 나 포함 4명이었는데 영어 이름은 저스틴, 아이린, 제인. 셋 다 아주 어리고 피부는 사골 국물처럼 뽀얗고 예뻤다. 젠장 역시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았다.
아까부터 우리들을 지켜보던 브라이언이 다가왔다. 브라이언은 베트남 남자 앤 데 눈웃음을 항상 치고 다니는 피부가 까무잡잡한 느끼한 한국 남자 같은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그룹이 형성된 이날 이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북적이는 플린더스 역을 지나 러브 선생님은 좁은 골목길로 향했다. 우리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듯 열심히 따랐다. 플린더스역 뒤쪽 카페거리가 즐비한 '디 그레이브 스트릿'을 거쳐 어느 한적한 골목에 멈춰 섰다. 그곳은 어둠과 환한 빛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풍겨져 나오는 곳이었다. 마치 해리포터 속 도비가 튀어나올 것 같은 그런 뒷골목이었다.
러브 선생님은 건축 양식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었다. 아직은 100% 알아듣긴 힘들었지만, 아주 오래된 건축 양식이라는 것과 콘트라스트 즉, 대비된다는 건 이런 거라며 '프린시플 & 엘리먼트 디자인'의 기초를 설명해 주셨다. 알 것 같기도, 잘 모를 것 같기도 아리송했지만 학생들과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수업에서 러브 선생님은 과제를 내주었다.
그 첫 번째 과제는 포스트 카드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단어만 딱 5개를 던져 주었다.
1. Eligent (엘리강트/우아한)
2. Sophistigated (소피스티케이티드/세련된)
3. Sensible (센서블/현명한, 판단력이 좋은)
4. Crazy (크레이지/미친, 말도 안 되는)
5. Trashy (트레시/쓰레기, 조잡한)
아니? 이걸로 뭘 어떡하라고?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먼저 노트북을 열어 구글에 해당 단어들의 이미지를 검색했다. 다양한 이미지에서 아이디어를 수집했다. 핀터레스트에도 검색해서 다양한 이미지를 체크했다. 대충 어떤 느낌인지 감이 잡혔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머리를 잠깐 쥐어뜯고, 간단히 챙겨 입었다. 핸드폰을 100% 풀 충전하고 일단 밖으로 무작정 나갔다.
러브 선생님과 야외 수업을 했던 골목길과 멜버른 시티 곳곳을 빨빨거리며 싸돌아 다니면서,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평상시에 지나치던 풍경과 건물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풀 하나까지도 스토리가 있어 보였다.
뭔가를 하겠다는 목표가 있어서 그런지 피사체들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만의 엘리강트, 소피스트게이티드, 센서블, 크레이지, 트레시를 모았다.
과제가 끝이 나면 이놈의 호주 학교는 꼭 발표를 한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나는 당최 발표가 익숙해지지 않았다. 다들 영어로 솰라 솰라 자신이 만든 포스트 카드를 자연스럽게 설명하는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벌써부터 입에서 두드러기가 나는 것 같았다. 한국 사람만큼이나 발표를 많이 안 해본 나라는 아마 베트남일 것이다. 우리 반엔 베트남 클래스메이트들이 3명이 있다. 느끼한 브라이언과 '비코즈 오브(because of/~때문에)'를 '피카소'라 발음하는 꽝후이, 그리고 미미.
미미는 가히 독보적이었다.
미미
그녀는 독특했다.
23~4살쯤 된 미미는 학업보다는 화장과 패션에 진심인 아이였다. 수업도 늘 듣는 둥 마는 둥 왜 파운데이션 수업을 듣는지, 대학 갈 마음은 1도 없어 보였지만 출석률은 60%였다. 미미는 웃상이었는데, 쭉 찢어진 눈에 달걀형 얼굴, 검고 긴 생머리에 화장을 전문가처럼 잘했고, 대화를 해 보면 꽤 재밌는 구석이 많은 친구였다.
미미의 차례가 되어 자신이 만든 포스트 카드를 발표했다. 온통 노란색에 검은색 몇 개 가 있는 아주 심플하다 못해 대충 발로 만든 느낌이 드는 포스트 카드였다. 과연 뭐라고 발표를 할까?
"제가 만든 포스트 카드 주제는 옐로우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노란색을 좋아하니깐요"
끝이었다. 마치 90년대 뉴스 인터뷰에서 "저는 옷을 이렇게 입어요. 왜냐하면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같은 앞뒤 문맥 없는 자기주장이었다.
초등학생도 저렇게는 발표를 안 할 것 같았다. 그녀는 주구장창 노란색을 좋아해서 만들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참으로 인상 깊은 발표가 아닐 수 없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 건 우리들의 몫이었다.
노란색 예찬론자인 미미는 파운데이션은 페일(fail/실패하다)했지만, 바로 결혼에 성공했다.
아주 아주 부잣집 유학생을 만나 곧바로 임신한 미미는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인스타그램에 온통 도배를 하였다. 명품옷을 즐겨 입고, 요트 위에서, 고급 빌라에서, 각국의 여행지를 다니며 상류층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현재 딸하나 아들 하나, 인상 좋은 남편과 함께 인스타그램 셀렙이 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역시 그녀의 파운데이션 학업은 전략적이었다.
내가 만든 포스트 카드: Journey of me postcards (멜버른 시티를 주제로 콜라주 형태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