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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운 김동찬 Apr 12. 2024

나무, 그리고 나무가 된 나

나무를 바라보다 나무가 되다

나무


바람이 분다

나뭇잎이 흔들린다

바람이 분다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바람이 분다

나무 몸통이 흔들린다


바람이 분다

땅 속의 나무뿌리가 보인다

바람이 분다

나무뿌리가 흔들린다

바람이 분다

나무뿌리가 안간힘으로 땅을 끌어안는다


바람이 분다

나무가 사라지고

바람이 분다

뿌리도 사라지고

바람이 분다

나만 남았다


바람이 분다

내가 흔들린다

바람이 분다

내 두 발이 안간힘으로 땅을 버틴다

바람이 분다

나는 왜 버티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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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창 밖에 햇살이 눈부셨다. 


나는 여름 오후의 나른함에 몸을 맡기고 안락의자 깊숙이 몸을 밀어 넣고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한 손에 책을 들었지만 몇 줄 읽다가 졸음이 와서 그냥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하늘은 슬플 만큼 푸르렀고 지나가는 사람마저 없는 거리는 텅 비어있었다. 


맞은편 보도 위에 가로수가 몇 그루 있었다. 키가 큰 나무들은 여름 햇살을 옆으로 받으며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 조용히 서있었다. 그런 창 밖의 풍경이 너무도 평화롭기만 해서 나도 마치 그 안에 있는 정물의 하나인 양 미동도 않고 밖을 향해 앉아있었다. 


나무들의 모습은 너무도 의젓하였다. 그 나무들을 바라보며 나는 어느새 ‘나무만큼 아름다운 시(詩)를 결코 볼 수 없으리라’고 읊은 조이스 킬머의 나무라는 시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나무는 선 자리에 가만히 팔만 벌리고 있어도 그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고 초록빛 잎사귀와 탐스런 열매까지 맺는데 인간은 천지사방을 뛰어다녀도 제 앞가림 하나 제대로 못하고 세상과 자연에 폐만 끼치기 일쑤이니 조이스 같은 시인도 ‘시(詩)는 나 같은 바보들이 만들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나무를 만들 수 있다.’고 탄식을 했나 보다.


금년 들어 부쩍 책을 읽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속도만 준 것이 아니라 이해력은 더 떨어졌다. 애를 쓰고 책을 붙들고는 있지만 진도도 안 나가고 책을 덮었다가 다시 펴면 어디까지 읽었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날 정도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아직은 그럴 나이가 아닌데……’하며 애써 부정하지만 엄연한 사실 앞에 혼자 혀를 차며 탄식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도 책을 붙들고 창가에 앉았다가 책은 안 보고 창 밖 풍경만 보고 있었다.


글은 더더욱 안 써진다. 애써 생각을 다듬어 무엇인가를 써보려고 컴퓨터를 켜고 자판을 두드리려 하면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잘은 못 썼어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단 쓰기 시작하면 생각이 생각을 물고 나와 글 한 편 마무리 짓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건만 요즈음은 도통 자신이 없어 아예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 같아서는 옛날의 훌륭한 문장가 특히 천재 시인들을 도와 좋은 글이 나오도록 도와줬다고 하는 시마(詩魔)가 혹시 늦게라도 내게 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하고는 혼지 피식 웃는 때도 많다. 젊었을 때의 나도 한번 쳐다보지도 않았던 시마(詩魔)가 이제 다 늙은 노인네가 뭐가 좋다고 와주겠나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한숨지을 따름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른하게 그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그 사이에 시간이 제법 지나갔나 보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꽤나 길어졌다. 그리고 나는 바로 앞의 나무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바람이 부나 하면서 나는 고개를 들어 나무를 쳐다보았다. 나무 맨 꼭대기의 잎사귀가 아주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 흔들림은 자세히 보아야만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흔들림이었다.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그 흔들림을 지켜보았다. 내가 지켜보는 동안 나무 꼭대기 잎사귀의 흔들림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흔들림은 옆으로 퍼지면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왔다. 마치 높다란 둑에서 물이 넘칠 때 둑방 아래로 물이 퍼지며 흘러내리듯 잎사귀의 흔들림은 그렇게 옆으로 아래로 퍼지더니 이윽고 나무 전체의 잎사귀들이 흔들렸다. 아 그 흔들림의 장관이라니! 잎사귀들은 제각기 하나씩 자기의 흔들림을 간직하며 모두가 같이 흔들려 결국 나무 전체의 흔들림이 되었다. 


여름 나무의 잎사귀들은 무성하였다. 무성한 잎사귀들의 흔들림 속에서 나뭇가지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내 눈에는 잎사귀 속에서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크고 작고 굵고 가는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들을 붙잡으려는 듯 처음에는 꼼짝 않고 버티더니 결국은 나뭇잎들과 같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잎사귀들은 춤을 추듯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자 이윽고 나무 몸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나무 몸통이 부르르 몸을 떨 듯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바람이 계속 부는지 아니 바람이 그만 자버렸는지 나는 느끼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안 했다. 나는 흔들리는 나무만 보고 있었다. 나무 잎사귀들의 가벼운 흔들림, 그 흔들림에 장단을 맞추는 나뭇가지들의 흔들림, 그리고 전율하며 몸을 떠는 나무 몸통의 흔들림, 모두가 합하여 흔들림의 장관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 흔들림의 와중에 과연 나무뿌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이미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있는 힘을 다하여 흙을 끌어안고 있는 나무뿌리를 보고 있었다. 땅 위의 나뭇잎이 흔들릴수록 나뭇가지와 몸통이 더불어 흔들릴수록 나무뿌리는 흔들리는 그들을 지탱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여 흙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날 오후 하염없이 나무를 바라보고 있던 나는 어느새 나무가 되어 있었다. 그 나무는 한때 잎이 무성하던 때도 있었던 나무였다. 그러나 이제는 우수수 잎 진 뒤 볼품없는 가지와 몸통을 겨우 받치고 있는 뿌리만 남은 나무였다. 나른한 상태로 창 밖의 나무만 내어다 보고 있던 나는 어느새 두 발로 힘을 다하여 바닥을 딛고 있었다. 흔들리는 나무를 지탱하기 위하여 힘을 다해 흙을 끌어안고 있는 나무뿌리처럼.


2018. 3월 석운 김동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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