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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운 김동찬 Apr 23. 2024

이름도 모르는 분

삶의 방향을 바꾸어 준 분


그날도 오늘같이 질척 질척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십여 년 전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오클랜드 공항은 생각보다 작고 초라했다. 겨를도 없고 초조한 마음이라 자세히 둘러보지 못했지만 오클랜드 공항이 주는 첫인상은 내가  생각했던 그런 멋진 공항은 아니었다. 얼마 전 딸아이랑 전화하면서 “거기 어떠니?” 하고 물었을 때 “그냥 예뻐요,”하고 말 끝을 흐리던 생각이 났다. 무언가 마음 한구석이 미흡한 느낌을 애써 떨쳐내고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밖으로 나오자 어린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다가온 중년의 한국 여자가 말을 걸었다. “저기 영은 아빠신가요?” “아, 예 그렇습니다. 연이 어머니시죠?”하고 이번엔 내가 물었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연이 엄맙니다,”하고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그녀의 모습에선 어딘지 피곤한 삶의 느낌이 전해 왔다. 비 오는데 공항까지 나오느라 힘들어서 그렇겠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영은인 안 나왔나요?”하고 물었다. “네, 오늘 레슨이 있는 날이라서요. 레슨 끝나고 집에서 기다릴 거예요.”하고 그녀는 대답하며 “피곤하실 텐데 빨리 나가시지요.” 하고 출구 쪽을 가리켰다. 주차장에 새워 놓은 그녀의 차에 가방을 싣고 나자 그녀는 나에게 “뒤에 타세요. 얘가 엄마 옆에 앉고 싶어 해서요.” 하며 엄마를 떨어지지 않으려는 딸아이를 가리키며 동의를 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고 뒤에 앉았다. 공항 주차장을 빠져나간 차는 달리기 시작했고 밖은 어두웠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집까지 얼마나 걸리지요?”하고 어두운 길거리를 내다보며 내가 물었다. “평소엔 한 사오 십분 걸리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거의 한 시간 걸릴 거예요.”라고 그녀가 답했다. 


큰 딸 영은이가 이곳 뉴질랜드에 온 지가 벌써 반년쯤 됐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자 어딘가 유학을 가고 싶어 했는데 영어권의 나라 중에서 고르다가 선택을 한 나라가 뉴질랜드였다. 한 번도 와보지 않은 나라였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였지만 책을 통해서 알아본 뉴질랜드는 나름대로 호감이 가는 나라였다. 영은이가 아들이었다면 아마도 무리를 해서라도 미국으로 보냈겠지만 사업차 많이 가본 미국이라는 나라는 딸아이를 보내기에는 너무 험한 나라 같아서 일찌감치 포기했고 캐나다와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 중에서 고르다가 여자아이를 혼자 보내 놓기에 그래도 가장 안전한 나라가 뉴질랜드 같아서 결정을 했었다. 미리 뉴질랜드에 와서 살고 계셨던 친지 한 분이 믿을만한 분이라고 소개해주셔서 연이네 집에 딸아이를 홈스테이(homestay) 시킨 것이 반년 전이었다.  


“영은이 돌보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시죠? 어떻게 걔가 그런대로 잘 적응하나요?”하고 나는 운전하는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수고는요 뭘. 그리고 영은이가 성격이 좋아서 잘해나가고 있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좀 더 일찍 와 봤어야 하는데 이럭저럭 하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하고 나는 다시 비 오는 밖을 쳐다봤다.


처음 온 곳이라 어디로 가는지 알 수도 없었지만 차창 밖으로 어두운 바다가 보였다. 멀리 가까이로 한두 척씩 떠다니는 배가 보였고 그 배들 안에 켜진 불빛이 내 눈을 찌르고 들어오자 나는 비로소 외국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닷길인가 봐요?”라고 내가 말하자 “네, 여긴 어디나 조금만 나가면 바다예요,”라고 그녀는 답했다. “여긴 타마끼 드라이브(Tamaki Drive)라고 오클랜드에서도 꽤나 아름다운 바닷길이에요,”라고 그녀가 말을 이어가는 순간 나는 차가 움찔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차가!”하고 그녀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냄과 동시에 나는 달리던 차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도 그걸 알았는지 차를 왼쪽 길가로 붙였고 곧이어 시동이 꺼졌다. 그녀가 한두 번 다시 시동을 걸어보려 했지만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죠?”라고 내가 묻자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죄송해요. 기름이 떨어졌나 봐요,”라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기름이요?”라고 반문하는 나에게 그녀는 “오일 게이지가 고장이 난 걸 아직 못 고쳤는데요……그래도 기름이 좀 남아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라고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원 이런, 그럼 어떻게 하지요?”라고 내가 묻자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좀 사다 넣어야 되는데 꽤 멀어서 어떡하지요?”하며 오히려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생전 처음 이런 경우를 그것도 처음 오는 외국에서 당했기에 나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울상이 다 된 애 엄마에게 더 무어라고 할 수도 없어서 차 밖으로 나왔다. 비가 제법 세차게 내리고 있었지만 우산을 쓸 여유도 없었다.


나는 무작정 지나가는 차에게 손짓을 했다. 도움을 요청할 작정이었다. 궁 즉 통이라고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통하다. 첫 번 차는 그냥 지나갔다. 두 번째 차도 그냥 지나갔다. 나는 절망적으로 더욱 크게 손을 흔들었다. 세 번째 차가 내 앞에 와서 서면서 창문을 내렸다. 차 안에 앉아있는 중년의 백인 남자가 나를 쳐다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차에 기름이 떨어졌는데 도와달라고 말하며 길옆에 서있는 연이 엄마의 차를 가리켰다. 잠깐 나와 내가 타고 온 차를 번갈아 쳐다보던 그 남자는 내게 빨리 옆자리에 타라고 했다. 그리고는 가까운 주유소에 가려면 돌아가야 한다며 조심스럽게 차를 돌렸다. 운전을 하면서 그는 주유소에 가면 작은 용기에 기름을 넣어서 파는데 용기 값을 보증금으로 내놓았다가 나중에 용기를 갖다 주면 돈을 돌려줄 거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면서도 나는 거푸 감사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멀리 주유소가 보이자 나는 반가웠고 차가 주유소에 도착하자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뛰어내렸다.


주유소 안에 들어가 직원에게 사정 설명을 하자 직원은 주유 호스가 달린 빨간 플라스틱 통을 내게 주면서 나가서 기름을 넣어 다시 갖고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어떻게 기름을 넣는지도 몰랐다. 직원에게 내가 방금 외국에서 왔기에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 좀 도와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 직원은 잠깐 딱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더니 카운터에서 나와서 나를 데리고 주유대로 가서 플라스틱 통에 가득 기름을 넣었다. 그리고 다시 나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더니 기름 값 외에 보증금 20불을 더 내라고 했다. 그때서야 나는 차 안에서 들었던 말이 이해가 갔다. 나는 내라는 대로 돈을 내고 고맙다는 인사와 더불어 기름통을 들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밖으로 나온 뒤에야 나는 어떻게 연이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차로 돌아갈지 막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어둠은 비를 따라 더욱 질퍽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이 비에 걸어갈 수도 없고, 어디서 택시를 잡아야 하나,’하며 혼자 중얼거리며 허둥지둥 길 쪽으로 나가다가 문득 나는 나를 태우고 왔던 차가 비상등을 켠 채 주유소 마당 한구석에 아직도 서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저 양반도 온 김에 기름을 넣으려고 그러나? 아직까지 여기 있게,’하며 차 쪽을 쳐다보자 그는 창문을 열고 내게 빨리 타라는 손짓을 했다. ‘아니 그럼 여태껏 나를 기다렸단 말인가?’ 나는 놀랠 사이도 없이 그의 차로 뛰어가 문을 열고 그의 옆에 앉았다. “나를 기다리셨습니까?”라고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똑바로 앞을 보고 운전하며 말했다. “이 시간엔 택시를 불러도 금방 안 와요.”  나는 그만 가슴이 울컥하며 말문이 막혔다. 이 비 오는 밤에 여기까지 데려다준 것만도 고마운데 다시 데려다주려고 기다린 그의 따뜻한 마음이 온몸으로 전해 왔다. 


얼마 안 돼 길가에 서있는 연이 엄마 차가 보였고 그는 그 바로 뒤에 차를 세웠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나중에 연락할 수 있도록 이름과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는 웃으면서 우선 가서 기름부터 넣으라고 했다. 나는 재빨리 내려서 연이 엄마 차로 다가가 주유 뚜껑을 열고 기름통의 기름을 쏟아부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가지 않고 뒤에서 헤드라이트를 켜서 내가 쉽게 기름을 넣도록 배려해 주었다. 기름을 넣은 뒤 인사를 하려고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다시 이상이 없나 시동을 걸어보라고 했다. 내가 연이 엄마에게 가서 시동을 걸어보라고 하자 시동을 건 연이 엄마가 잘 걸린다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그에게 돌아가 정중하게 다시 고맙다고 말하며 꼭 한번 만날 수 있도록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말하자 그는 손을 저으며 그럴 필요가 없으며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똑같이 도와주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곧 차를 몰고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차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비에 젖는 것도 모르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만 타세요,”라고 말하는 연이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차 안으로 몸을 디밀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하셔서,” 하는 연이 엄마에게 나는 “여기 사람들은 다 이렇게 친절한가요?”라고 물었다. “네 대부분 그래요. 아직도 사람들이 순수하지요,”라고 연이 엄마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어둠은 더욱 짙어졌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우중충한 거리의 모습이 별안간 다정하고 평안하게 내게 다가왔다.  


아마도 그날 저녁이었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 이런 나라라면 한 번 와서 살아 볼만한 나라라는 생각이 어렴풋이나마 처음으로 들어왔던 순간이. 비록 딸아이를 공부시키기 위해 뉴질랜드로 보내기는 했었지만 그때까지는 외국에 나와 살 생각이나 이민을 올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 그날, 뉴질랜드에 첫발을 디뎠던 그날, 하마터면 큰 봉변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그 한 사람의 뉴질랜드 분의 따뜻한 마음씨는 그다음 해 우리 가족이 뉴질랜드로의 이민을 망설이고 있었을 때 분명 커다란 더하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어쩌면 한 사람의 친절한 행동이 한 가족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미션 베이(Mission Bay)를 향하는 타마끼 드라이브(Tamaki Drive)를 지나가다 아직도 옛날 그 자리에 서있는 칼텍스(Caltex) 주유소를 보면 비 오던 그날 저녁 일이 그 이름도 모르는 분의 따뜻한 마음씨와 더불어 생생하게 가슴속에서 살아난다.


그 저녁을 생각하며 한 편의 기도문을 쓴 때는 뉴질랜드로 이민 온 뒤 꽤나 세월이 지난 어느 비 오는 밤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분을 위한 기도


주님

비 오고 어두운 그 저녁

낯선 곳의 길 잃은 양처럼 

손 흔들어 도움 청할 때 저랑 같이 계셨지요


주님

그 빗속 그 어둠 속 지나던 많은 차 중

손 흔드는 나그네에게 다가온 차는

분명 주님이 보내셨겠지요


주님

당신의 말씀 기억합니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비 내리는 짙은 어둠 속

낯선 나라에 첫 발길 내디뎠다 곤경에 빠진 저는

분명 당신의 지극히 작은 소자였습니다.


주님

당신의 말씀 또 기억합니다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주님

그 저녁 보내주셨던 이름도 모르는 고마운 그분 

당신은 알고 계시니 당신께 맡깁니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분에게도 그리고 당신에게도.


2016. 8. 27 석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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