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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운 김동찬 Dec 08. 2024

사랑을 위한 두 편의 시(詩) 3

로제티 '나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와  노발리스 '나를 잊지 마세요'

나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크리스티나 로제티

나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날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세요
내 머리맡에 장미꽃도 심지 마시고
그늘 만들어 줄 사이프러스 나무도 심지 마세요
내 위의 푸른 잔디가
소나기와 이슬방울에 젖게 놔두세요
그리고 기억하고 싶으시면, 기억하시고

잊고 싶으시면, 잊어 주세요.


나는 그늘도 보지 못하고,
비도 느끼지 못할 거예요
나는 나이팅게일이

고통스러운 듯 계속 노래해도 듣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뜨지도 지지도 않는
어스름 속에서 꿈을 꾸며

어쩌면 나는 기억하고

그리고 어쩌면 잊을 수도 있겠지요
 
 When I am dead, my dearest

                           Christina Rossetti
 
 When I am dead, my dearest,
 Sing no sad songs for me;
 Plant thou no roses at my head,
 Nor shady cypress tree:
 Be the green grass above me
 With showers and dewdrops wet:
 And if thou wilt, remember,
 And if thou wilt, forget.
 
 I shall not see the shadows,
 I shall not feel the rain;
 I shall not hear the nightingale
 Sing on as if in pain:
 And dreaming through the twilight
 That doth not rise nor set,
 Haply I may remember,
 And haply may forget
 
 크리스티나 로제티(Christina Rossetti, 1830~1894)는 영국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의 한 사람입니다. 그녀의 시 세계는 신비스럽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사랑과 죽음에 대한 많은 시와 동시도 지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듣고 따라 부르는 자장가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는 곡은 모차르트의 것이지만 가사는 로제티의 시입니다. 오늘 여기 소개하는 시 ‘나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는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을 만큼 잘 알려진 시입니다.

 

이 시를 통해 시인은 사랑하는 이에게 유언 같은 부탁을 합니다. 아버지와 두 오빠가 모두 시인인 문학적인 집안에서 자랐기에 아주 어릴 때부터 시를 썼다고 하지만 시인이 불과 18살의 나이에 사랑과 죽음을 주제로 하는 시를 쓴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이런저런 질병에 시달렸던 시인에게 죽음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졌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사랑과 삶에 대해서 고민을 시작하는 사춘기 소녀들에게 때로 아름다운 도피처로 느껴지는 죽음의 유혹이 18살의 시인에게도 손길을 내밀었기에 이런 시를 썼을까요?


첫 연에서 시인은 사랑하는 이에게 자기가 죽으면 슬픈 노래도 부르지 말고 꽃도 놓지 말고 나무도 심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이런 통상적 의례는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한 격식이지 죽은 뒤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누워있는 위에 있을 잔디는 비와 이슬에 젖는 자연스러운 상태 그대로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구절들은 장자(莊子)가 죽으려 할 때, 제자들이 후하게 장사 지내고 싶다고 하자 ‘나는 천지를 널로 삼고 해와 달을 한 쌍의 옥으로 알며 별을 구슬로 삼고 만물을 내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있다. 내 장례식을 위한 도구는 갖추어지지 않은 게 없는데 무엇을 덧붙인단 말이냐?’라고 했다는 일화<『장자』 잡편(雜篇) 열어구(列禦寇) 32편>가 생각나게 만듭니다. 18살 어리기만 했던 시인이 어떻게 장자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가다가도 기억하고 싶으면 기억하고, 잊고 싶으면 잊어버리라고 첫 연을 끝내는 시인의 담담한 어조에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사랑과 죽음에 초연한 시인의 인생관을 느낍니다.


둘째 연에서 시인은 죽어서 무덤 속에 있습니다. 죽은 육신은 보지도 느끼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슬픔과 죽음을 상징하는 새인 나이팅게일이 마치 고통스러운 듯 노래한다 해도 듣지도 못하며 뜨지도 지지도 않는 어스름 속에서 꿈을 꿀 따름입니다. 살아생전의 나날은 뜨고 지지만 죽은 뒤의 나날에는 뜨고 짐이 없습니다. 따라서 뜨지도 지지도 않는 어스름은 죽음을 시적(詩的)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 죽음 속에서 꿈을 꾼다 해도 어쩌면 기억하고 어쩌면 잊을 것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모습은 첫 연의 마지막에서와 마찬가지로 조금도 사랑과 삶에 연연하지 않고 담담하기만 합니다. 어찌 보면 냉정할 만큼 단호하게 사랑하는 이에게 죽음을 가정한 스스로의 마음을 털어놓는 이 시에서 오히려 시인의 애잔하고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18살 나이에 이런 시를 쓸 수 있었기에 크리스티나 로제티는 평생 독신으로 신앙에 의지하여 시작(詩作)에 전념하며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노발리스의 ‘나를 잊지 마세요’


죽은 뒤의 자기를 ‘기억하고 싶으시면, 기억하시고 잊고 싶으시면, 잊어 주세요,’라고 사랑하는 이에게 담대할 정도로 초연하게 말했던 18살의 소녀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에 비해 죽은 뒤의 ‘나를 잊지 마세요’라고 애타게 부탁했던 청년 시인이 있습니다.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 노발리스입니다. 그가 쓴 시 ‘나를 잊지 마세요’를 보면 사랑하는 이에 대한 미련(未練)이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애절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잊지 마세요

                                                 노발리스


나를 잊지 마세요, 언젠가 부드럽고 서늘한 흙이

당신을 위해 다정스레 고동치던 이 심장을 덮더라도

그때는 더 완벽하게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예전엔 이 심장이 약점과 실수투성이였다 하더라도


그때는 자유로운 이 정신은 당신을 축복하며 떠돌고

당신의 정신에 위안과 달콤한 예감을 줄 겁니다.

당신 영혼에 부드러이 말 거는 이가 있으면 나라고 생각하세요,

나를 잊지 마세요! 나를 잊지 마세요!


Vergiß mein nicht

                                                              Novalis


Vergiß mein nicht, wenn lokre kühle Erde

Dieß Herz einst dekt das zärtlich für dich schlug

Denk das es dort vollkomner lieben werde,

Als da voll Schwachheit ichs vielleicht voll Fehler trug.


Dann soll mein freier Geist oft segnend dich umschweben

Und deinen Geiste Trost und süße Ahndung geben

Denk das ichs sey, wenns sanft in deiner Seele spricht;

Vergiß mein nicht! Vergis mein nicht!


노발리스(Novalis, 1772~1801)의 본명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Georg Friedrich Freiherr von Hardenberg)입니다. 독일의 초기 낭만주의 시대에 활동한 그는 "노발리스"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썼습니다. 이십 대 초반에 어린 소녀 조피 폰 퀸(Sophie von Kühn)을 만나자마자 운명 같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만난 다음 해에 조피와 약혼을 했습니다. 조피의 나이 불과 13살이었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어린 나이에도 약혼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행복은 잠깐이었고 2년 뒤 조피가 15살이었을 때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은 노발리스의 문학과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면서 평생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녀를 따라가고 싶어서였을까요? 노발리스도 병으로 28살이라는 너무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발리스가 이 시를 쓴 때가 1794년입니다. 조피와 약혼하기 1년 전에 썼던 시인데 왜 한참 젊었던 그때 죽음을 소재로 사랑을 고백하는 시를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조피의 죽음을 예감했을까요, 아니면 그녀가 죽은 뒤에 얼마 못 살고 죽을 자기의 죽음마저 예감했기에 이런 시를 썼을까요? 여하튼 노발리스는 순진한 청년다운 마음으로 자기의 죽음을 지켜볼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를 잊지 마세요’라고 호소합니다. 처음 연의 첫 구절과 마지막 연의 마지막 구절에서 세 번이나 거푸 ‘나를 잊지 마세요’라고 절규하는 시인의 마음에서 간절한 사랑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첫 연에서 자기가 죽은 뒤 혹시 자기의 사랑이 부족했었다면 심장을 덮고 있는 흙을 넘어서라도 더 완벽하게 사랑할 것이니 ‘나를 잊지 마세요’라고 애원합니다. 두 번째 연에서는 이제는 육신을 벗어나 자유롭게 된 자기의 영혼(독일어 Geist는 정신 또는 영혼의 뜻이 있다)이 당신 곁에 떠돌며 축복할 터이니 혹시라도 어떤 부드러운 속삭임을 들으면 ‘나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말합니다. 지극히 낭만주의적인 발상이지만 ‘나를 잊지 마세요! 나를 잊지 마세요!’라고 끝을 맺는 반복되는 호소가 시를 다 읽은 뒤에도 잔향처럼 귓가에서 울립니다.


‘어쩌면 나는 기억하고 그리고 어쩌면 잊을 수도 있겠지요’라고 끝을 맺었던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시와 ‘나를 잊지 마세요! 나를 잊지 마세요!’라고 끝을 맺는 노발리스의 시를 읽으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름을 느낍니다. 혹시 이런 다름이 남과 여의 사랑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노발리스와 같은 남자의 사랑의 표현은 역시 로제티와 같은 여자의 사랑의 표현보다는 우직한 것이 아닐까요? 그 표현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두 편의 시가 전하는 간절한 사랑의 마음은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2024.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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