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모니카 Apr 23. 2021

아, 고장 나기 딱 5초 전

정보 과잉에 기인한 울렁거림

평소처럼 하릴 없이 SNS 앱을 켜서 화면에 뜨는 사진들을 무심코 훑어 본다. 그러다 누군가가 올린 본인의 결혼 생활에 대한 불만 가득한 글을 읽어 내린다. 그때 문득, '아, 내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재빨리 스크롤을 내려 보니 또 누군가의 주식 잔고 화면 캡쳐를 마주하게 된다. 얼떨결에 남의 재정 상황까지 알게 되어버린 거다. 또 다른 누군가는 지금 우리가 가상화폐에 투자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 친한 친구의 목소리나 들을까 하고 최근 통화목록을 넘기는데, 통화목록에서 친구들 이름은 찾기도 어려울 만큼 저 아래 내려가 있고, 가장 윗 목록에는 며칠간 주고 받은 업무통화 기록만 가득하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출근 전에도, 퇴근 후에도 업무 연락이 왔다.

며칠 전에는 지인 한 명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 본인이 최근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에 대해 한 시간 가까이 말을 쏟아냈다. 나는 이렇다할 대꾸도 제대로 못하고 맞장구만 내내 쳐주다 전화를 끊었다. 그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당시 몸살 기운이 있어 약을 먹고 누워 있던 상태였다. 그럴 거면 전화를 왜 받았냐 싶겠지만, 나도 그런 내용의 통화가 그렇게나 길게 이어질 줄은 몰랐지, 뭐.

뇌에 과부하가 걸린 듯하다. 들어오는 정보들을 다 소화해내지 못하고 다시 그대로 토해낼 것만 같은 기분이다. 사고 회로의 어딘가에서 지직지직, 하고 타는 소리가 난다. 위에 한가득 음식이 차 있는데 입으로는 계속해서 새 음식을 쑤셔넣는 것 같은 느낌. 이미 삼킨 걸 전부 뱉어내진 못해도, 적어도 새 음식을 식도로 밀어넣는 일은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누군가에게는 더이상은 삼키기 싫은 음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SNS 앱들을 찾아 폴더 하나에 숨겨두었다. 스마트폰 메신저 프로필에 덕지덕지 붙여둔 프로필 사진과 상태메시지도 다 떼어냈다. 소화불량으로부터 오는 울렁거림이 가라앉을 때까지는 입력되는 정보들을 최대한 줄일 셈이다. 그리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을 참지 못할 때는 역시 글을 써야겠다. 글로 뱉어야지.

그러고 보니, 타이밍 좋게 오늘은 작년에 사두고 쓰지 않던 물건들을 처분했다. 나는 얼마나 시원하게 살고 싶어서 선풍기를 두 대나 샀을까. 에어컨까지 하면 내 방 하나에 냉방기구만 세 대였다. 매일 조금씩, 물건들을 정리할 예정이다. 원래도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긴 하지만, 조금 더 물건을 줄이는 일에 힘을 써봐야 겠다.

아, 이 와중에도 기다려지는 연락은 아주 멀리 있는 듯하여 괜히 더 울렁거린다. 이 역시 비워야 할 일이라고, 생각은 한다.

작가의 이전글 올 봄에도 허브 씨앗을 심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