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봄이 되면 허브 씨앗을 사다 심습니다. 바질이나 레몬밤은 심는 대로 싹이 잘 트는데, 로즈마리는 발아율이 그리 높지가 않습니다. 매년 실패하면서도 올해도 고집을 부려 로즈마리 씨앗을 샀습니다. 혹시 몰라 씨앗을 한 열 개쯤 심어 봤는데, 다행히도 이번엔 싹 하나가 빼꼼 나왔습니다. 괜히 기분이 좋아서 시시때때로 얼마나 자랐는지 자꾸 들여다 보게 됩니다.
주말에는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다이소와 서점과 올리브영엘 들렀어요. 딱히 뭔가 살 것이 있던 건 아니고 곧장 집으로 들어가기엔 봄 기운이 좀 아쉬워서요. 하릴없이 다이소 매장 안을 빙빙 돌다가, 메인 진열장에서 시들어가는 화분들을 발견했어요. 봄이라고 화분을 입고해놓은 것 같기는 한데, 아무래도 잡화점에서 화분을 하나하나 관리하기는 쉽지 않았겠죠. 팔리지 못한 녀석들은 흙에 곰팡이를 피우거나 잎이 쪼글쪼글 말랐더라고요. '내가 너 하나라도 살려보마' 싶은 마음에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홍콩 야자 화분을 하나 샀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거기 있던 화분을 몽땅 들여오고 싶었지만, 그렇게 욕심 부렸다가는 오히려 내 집에서 다 생명을 거둘 것 같아 참았죠!
올리브영에서는 말도 안 되는 꽃핑크색 립스틱을 샀어요. 이걸 바를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봄 같고, 꽃 같은 색이에요. 저를 잘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 옷장에는 무채색 옷들 밖엔 없거든요. 시꺼먼 옷을 입고 꽃분홍색 립스틱을 바를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괜히 마음이 동해서 고민도 없이 결제해버리고 나왔어요. 이런 걸 두고 계절을 탄다고 하나요.
좋은 기운들을 모아보려고 합니다. 나에게 좋은 일들을 좀 해보려고요. 매일 아침 화분을 살피고, 바르지도 않을 분홍색 립스틱을 꺼냈다 넣어보는 일. 밖으로 나돌지 않으면서도, 안으로 파고들지도 않는 일. 앉은 자리에서 잔잔한 파동을 만들어 내는 일이요. 당신도 안온한 봄날을 보내길 바라요. 부디 나돌지 않고, 파고들지 않기를 바라요. 혹여 누군가의 잔잔한 파동이 당신에게 가 닿거든 아마 아주 예쁜 물결이 만들어질 거예요. 그러니, 굿 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