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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Jul 04. 2024

대기업 15년차 총무 출신 형의 고민

권고사직

몇 년 만에 J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른 손목의 왓치에 뜬 J형의 이름을 보며 반갑다기보다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년이 넘는 모진 사회생활로 단련된 어떤 촉이 전화를 받기 전에 정수리를 강타했다. 아마, 먼가 부탁을 하려고 전화한 것이라는 촉. (설마 형... 보험 팔려나)


의구심이 가득한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에세이 소재를 구하기 위해... 요즘은 에세이 소재를 구할 수 있다면 군대라도 다시 돌아 갈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다)


그 전에 J형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 81년 生


- 회사생활 첫 커리어를 중견 식품 기업의 총무팀에서 시작했고, 3년 차에 지금 다니는 대기업으로 이직


-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12년 근무, 총 경력 15년(차부장급)


“아이고, 이게 누구야? J형님 아냐? 살아계셨네. 얼마만이여? 점심은 잡쉈고?” (독자분들은 놀랄 수도 있지만, 글쓰는 나와 사회생활을 하는 나는 다른 사람이다. 사회에서 나를 본 사람들은 극E 성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나는 극I이다. 극I가 먹고살려고 극E 흉내를 내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토닥토닥 나자신)


“JK(글쓴이)야, 잘 지냈니? 너 듣자하니깐 S 그만두고 중견 L로 갔다며?”


형이 많이 급하긴 한가보다라고 생각했다. 몇 년 만에 전화해서 바로 본심을 내 보일줄이야. 형은 지금 이직을 알아보고 있었고, 먼가 청탁이던 정보던 나에게 원하는 게 있었다.


“아니, 형님. 몇 년만에 전화하고선 그런 재미없는 얘기로 스타트를 끊으쇼. 이렇게 깜빡이도 없이 훅 들어오기야?”


“아… JK야. 미안하다. 형이 요즘 정신이 없다. 사실 내가…”


그렇게 J형의 하소연이 20분 정도 이어졌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금 다니는 대기업의 총무팀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2년 전에 S임원이 해외에 나가서 같이 사업개발을 해보자고 제안했더랬다. 그리고 해외 주재원 자리도 약속했더랬다. J형도 회사에서 티도 안나는 총무일만 10년 넘게해서 현타가 오던 찰나에, S임원의 솔깃한 제안을 받아드려 2년간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하만 주재원 발령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2년이라는 시간을 장기 출장으로 때웠다고 한다. (J형의 표현에 따르면) 결국 S임원으로부터 팽당해서 지금은 총무팀과는 상관없는 팀에서 자기보다 어린 팀장과 함께 일한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형, 총무팀으로 돌아가면 안돼?”


J형은 한숨을 쉬며,


“이미 자리 없지. 너도 알다시피 총무팀이 특별한 기술이 있는게 아니잖아. 성실하게만 하면 대부분 할 수 있는 일이잖아. 내가 주재원병에 빠져서 헛꿈꾸고 있는 사이에 이미 젊은애들로 찼더라.“


그리고 충격적인 결론을 전했다.


“회사에서 1년 연봉 줄테니, 제발 나가달랜다.”


띠로링…


J형의 하소연은 이어졌다. 원래 애가 둘이었는데 1년 전에 늦둥이가 생겼단다. 그래서 기저귀 값이 많이 든다고 한다. 안 그래도 고정 지출이 있는데 늦둥이 때문에 더 힘들어졌다 등등  


그래서 내가 물었다.


"형, 다른 회사는 알아봤어?"


J형은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아봤지... 그런데 대기업에서 차부장급 총무를 뽑는 회사는 없더라. 총무팀 공고가 간혹 나더라도 3~4년차 몸 날랜 젊은 친구들로 뽑더라."


내가 바로 되물었다.


"형, 꼭 대기업 고집할 필요가 없잖아. 나처럼."


형은 민망한 듯 대답했다.


"맞어. 그런데 외벌이에다가 생활비가 지금 수준에 고정되어 있어서, 지금 받는 월급이 필요해."


대부분의 월급쟁이가 그러하듯 형도 딱히 재테크나 다른쪽으로 돌파구는 없어보였다. 40초반... 대기업 총무 출신 15년 경력 아는 형의 가족은 월급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 나는 더이상 해 줄 말이 없었다.


형은 조금 뜸을 들이다가, 어렵게 나에게 혹시 아는 자리가 있는지 물었다. 나도 딱히 청탁을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지만 차마 매정하게 짜를 수는 없었다.


"알았어. 형 내가 알아볼게."


"고맙다. JK야."


나는 예전부터 직장인의 몸값을 이루는 요소가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고, 나름 직장인의 몸값을 이루는 주요 요소가 2가지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1. 각각 회사의 내부 시스템에 적응해서 나오는 능력치. 혹은 내부 정치 능력. 주로 잘 짜여진 시스템에서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주로 높이 사는 능력. (스타트업이나, 성장 중인 회사에서 이 능력치를 강조하다보면 회사는 망한다)


2. 각 분야에서 어느 회사에서도 먹히는 실제 실력


위 2가지 잣대로 보건데, 냉정하게 형은 1번과 2번 항목 모두 부족한 상태이다. 그러다보니 현재 회사의 해고 통보에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내가 형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무엇일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 조언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부담이 덜하다)


내 생각은 몸값을 낮춰서라도 이직을 하고, 그곳에서 총무일 + 다른 역량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렇게 급변하는 시기에서 지속적으로 시대에 맞춰 역량을 개발하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인 10여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영문으로 계약서를 혼자 힘으로 오롯이 작성할 수 있으면 이는 대단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AI 도움으로 영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도 영문 계약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 영어 계약서 작성 능력도 10년 전에 비해 중요성이 아주 낮아졌는데, 총무일만 가능한 역량을 보유한 사람은 오죽할까.


형을 보며, 나를 반성했고, 앞서 언급한 1번 능력보다는 2번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실질적인 고민을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 떠나서 조만간 J형을 만나 소주 한 잔 기울여야겠다. 나도 언제든 형과 같은 상황에 처해 같은 고민을 할 수 있다는 절박함에. 그리고 같은 아빠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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