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브루잉 - Mahler/ Uri Caine
‘새로 할 결심’으로 듣는 말러 교향곡 제5번 4악장 Adagietto
Mahler / Caine: Urlicht / Primal Light (Uri Caine, Winter & Winter)
마침내.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았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더욱이 박찬욱 감독 작품 치고는 시각적 과잉이 배제된 가운데 단지 변사 사건을 중심으로 담당 수사관과 피해자의 부인 사이에 오가는 심리 묘사가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영화다. 거기에 어울리듯 영화 속에서 내내 흐르던 곡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5번 4악장 Adagietto.
말러는 교향곡 5번을 1901년부터 작곡하기 시작했다. 이전 시기 전 유럽을 지배하던 세기말의 음울한 불안도, 지병으로 인한 개인적인 고통도 사라진 시점이다. 또한 작곡가와 지휘자로서의 명성과 함께 연인 알마 쉰들러를 만났던 해이기도 하다.
말러는 Adagietto를 작곡한 뒤 아무런 설명 없이 악보를 알마에게 보냈고 작곡가이기도 했던 알마는 이 곡이 지닌 의미를 곧바로 알아채고는 ‘나에게 오라’고 말러에게 전했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은 19세의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이른다. 알마 쉰들러는 특히 당대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키스’의 주인공으로도 알려질 만큼 매력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말러의 교향곡 제5번 4악장이 O.S.T로 사용된 또 다른 영화가 있다. 1971년에 개봉한 루치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다. 이 영화는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원작으로 삼았다.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스토리가 변형되며 주인공 구스타프가 소설가에서 음악가로 바뀌었다. 토마스 만이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에 말러의 부음을 듣게 되면서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소설 속 주인공 구스타프 아센바흐는 다분히 구스타프 말러를 형상화 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말러와 그의 음악을 좋아했던 토마스 만의 자전적 인물이기도 하다. 구스타프 말러, 구스타프 아셴바흐, 여기에 구스타프 클림트까지, ‘구스타프’라는 이름이 주는 유사성으로 미처 따라가지 못할 의식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평소 말러의 곡을 즐겨 듣는 말러 마니아로 알려져 있는 박찬욱 감독은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이미 교향곡 5번 4악장 Adagietto가 사용된 것이 부담스러웠으나 이 곡을 대체할 만한 다른 음악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한편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 유리 케인(Uri Caine)은 자신과 같은 유대인인 말러의 작품으로 무려 세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여기에 더해 각 앨범에서 고른 음원을 모아 발표한 편집 앨범까지 합하면 모두 네 장의 앨범을 내놓은 셈이다. 이 중에서 1997년에 세 번째 앨범으로 발표한 <Mahler/Caine: Urlicht/Primal Light>(Winter & Winter)는 말러의 교향곡과 가곡들을 유리 케인이 직접 편곡한 앨범이다. 이후 바그너를 비롯한 다수 작곡가의 클래식을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로 발표하는데 기점이 되었다.
특히 이 앨범은 말러 특유의 장대한 스케일의 악기 구성을 소규모 편성만으로도 훌륭히 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정통 클래식 스타일은 물론 재즈, 유대계 포크 음악 등 다양한 스타일의 장르가 말러의 음악이 가진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유리 케인이라는 음악적 울타리에서 고유의 독자성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이쯤 되면 유리 케인의 음악적 한계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라는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앨범의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유리 케인도 유리 케인이지만 앨범에 참여한 사이드맨들의 면면이다. 얼핏 눈에 들어오는 연주자로 클라리넷에 돈 바이런이고 트럼펫은 데이브 더글라스, 바이올린은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마크 펠드만이다. 각 연주자들의 성향으로 볼 때 이들의 음악을 말러의 이름으로 완벽하게 묶은 유리 케인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앨범에서 말러의 교향곡 제5번 4악장 Adagietto는 8번 트랙이다. 유리 케인의 편곡답게 연주 중반 이후의 임프로바이제이션이 뛰어나지만 원곡이 지닌 말러 음악의 본질이 결코 무뎌진 것은 아니다. 아름답지만,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비극을 향해 다가가는 운명을 예감케 하는 비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2023년 첫 글은 ‘헤어질 결심’으로 쓰고 말았지만 말러의 Adagietto는 ‘새로 할 결심’으로 듣는다. 사실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Adagietto가 이렇게 새롭게 들리는 게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