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rmur - 2023년 1월 12일
나는 쇠락하는 존재들이 왜 이렇게 몸서리치게 좋을까.
'한때 빼어나고 섬세하고 찬란했던 것의 잔재는 우리에게 연민과 더불어 존경심도 불러 일으킨다. 지나간 것, 쇠락한 것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빌케 부인, 로베르트 발저)
폐허, 잔해, 망각, 쇠락의 작가 제발트가 좋아했다는 로베르트 발저 역시 쇠락의 아름다움을 예찬한다. 스러져야 할 때 스러져 존재하다가 소멸시효를 넘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야말로 진정 매혹적이다.
나도 역시 만지면 곧 바스라지고 부서질 것 같은, 쇠락하는 존재들이 몸서리치게 좋다.
주위의 모든 존재, 시간, 공기, 공간 같은 것들과 내가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의 부질없음과 쇠락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 것, 그건 내가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제발트와 발저 같은 작가들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