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가 늘면서, 개인의 행복이 더욱 더 중요해지고 있다. 소확행부터 무해력까지 소소한 행복을 키워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크고 거창한 이벤트보다는 작고 소소한 것들, 그리고 하루라는 작은 단위에 더 마음을 기울인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10년,5년의 미래의 행복보다는 1년, 6개월, 한달, 일주일, 그리고 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것이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루가 쌓여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일 년이 된다는 이 당연한 말을 몸소 실천하려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클수록, 당장의 손에 잡힐 것 같은 오늘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몇 년 후의 내 모습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이런 모습은 어쩌면 미래를 계획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는 오늘, 내일, 그리고 당장의 일주일에 집중해 사는 것이다. 물론, 가끔 1년 후, 3년 후, 5년 후의 나를 상상해보곤 한다. 하지만 그 상상은 언제나 희미한 윤곽에 그치고 만다. 1년 후엔 이런 모습일까? 3년 후엔 저렇게 변해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 보지만, 결국 이내 포기하고 만다. 그 이유는 단순히 나의 상상력 부족 때문은 아니다. 그 상상이 곧 나의 숙제가 되어, 오늘을 짓눌러버릴 것 같은 무게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늘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 수 있는 깡다구나 용기가 있는 건 아니다. 한때는 미친 듯이 하루하루를 갓생으로 살아보려 애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노력은 뿌듯함보다는 나에 대한 당연함과 기대감만 높여놓았다. 갑작스러운 여행을 떠나거나 방탕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러다 결국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무심해진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는 자극적이지도 무료하지도 않은 일상을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불교에서 말하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중도(中道)의 상태가 떠올랐다. 그게 어쩌면 내가 원하는 삶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중도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스쳤다. 그리고 문득 떠올렸다. 결국, 일상을 관리하는 핵심은 감정을 관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의 감정 변화는 어김없이 나의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감정은 어디에서 가장 크게 흔들릴까? 나는 무엇으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까? 이런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단순히 어떤 사실을‘알아가는 것’을 넘어, ‘이해해가는 것’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여정이었다.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거나, 좋은 기분을 유지하려 애쓰기보다는, 스스로 감정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힘을 키우는 밭을 정성스럽게 가꾸는 과정이었다.
조는거 아니고 득도중인 망토리
사실, 사방팔방에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것 때문인가, 저것 때문인가, 아니면 이것저것 때문인가?" 하며, 어디서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나름의 기록을 남기고, 원인을 추적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떤 영향을 받는지 칼로 무 자르듯 명확히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지도 정확히 파악하려니, 그 과정 자체가 꽤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때로는 이런 고민을 할수록 내가 얼마나 예민한 사람인지, 체력이 약한 사람인지, 또 얼마나 속이 좁은 사람인지에만 집중하게 되어 기분이 더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덕분에 내가 어디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끼는지, 또 어떤 순간에 세상이 미워지는지 크게 영향을 받는 포인트를 조금씩 찾아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아침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하루 기분이 크게 좌우된다. 갓생을 사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여유롭게 아침을 리드해 간다는 기분이 들면 그날 하루를 아침의 기분 그대로 유지하려 스스로 더 노력하게 된다. 반대로, 세상이 나를 등지고 있다고 느낄 때는 대개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배란기, 생리 전, 생리 중 모두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 한 달 4주 중 딱 1주일만 정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점을 인지한 이후로는 세상 탓도, 남 탓도, 내 탓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자 노력했다. 이처럼 어떤 포인트에서 영향을 받는지 알아가는 과정은 내가 나를 대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자신을 대처한다는 말이 조금 우습게 들릴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동시에, 가장 상처 주고 아프게 할 수도 있는 존재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를 대처하는 법은 꽤나 평온한 일상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치트키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예상 가능한 과거의 경험이나 반복되는 루틴한 생활에서만 감정을 이해하는 건 한계가 있다. 사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환경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영향을 받는 원인을 파악하기보다는, 그 영향을 받은 후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나의 감정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나는 나인데, 내 감정을 모를 리가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꽤나 자신이 편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무엇보다 ‘괜찮고 싶은’ 마음, ‘괜찮아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의 감정은 말의 톤과 뉘앙스, 먹는 것, 정리정돈, 술, 샤워하는 시간 등에서 자주 드러났다. 나는 분명 평소처럼 말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남편이 “너 왜 말을 그렇게 하냐?”고 물을 때가 있었다. 또, 먹고 싶지 않아도 라면을 먹고, 소주를 찾게 되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내 마음속에 크고 작은 가싯거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나는 집 정리를 꽤 중요하게 여기는데, 단지 청결 때문만은 아니다. 내 집의 상태가 내 모습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엉망진창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설거지는 쌓여 있고, 음식물을 썩어 냄새가 나고 벌레가 생길 때까지 방치되곤 했다. 무엇보다 이럴 때면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끊임 없이 생각하면서 우울에 잡아먹혔다. 결혼 후에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는데, 30분 이상 샤워를 하는 것. 남편에게 내 기분을 들키지 않으려는 나름의 방법이었다. 부정적인 에너지가 남편에게 전염처럼 퍼져 나갈까 봐 일부러 샤워 시간을 늘렸던 것이다.
이런 나의 특정 행동들은 놓칠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는 ‘신호’를 주고 나 자신을 ‘대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나는 일년이 하루라는 작은 조각에서 쌓이는 것처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별거 아니고 싶은 감정들이 쌓여 일상을 위태롭게 할 수 있음을 안다. 무엇보다 어떠한 기분, 감정이 드는 것은 ‘잘못’처럼 느끼지 않게 되서 좋다. 무조건적인 긍정을하지 않아도 되서 좋고, 스스로의 감정을, 일상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점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감정 관리가 잘 안되도, 나를 크게 미워하지 않고 그 때의 나의 대처법에 대해 생각을 기울이게 된다. 나를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의미 속에는 내 감정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이렇게 느끼고 알게 된 것과는 별개로 앞으로도 겪지 못한 수많은 상황과 인간 관계로 인해 내 일상과 감정을 요동을 칠 것이다. 그 때마다 또 나의 일상의 균형은 다양한 방식으로 깨질 것이고 또 수습하는 과정 중에 새로운 균형을 찾게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