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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토리 Apr 11. 2024

내가 보지 않는 것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안해 그리고 정말 애썼어”


마비됐던 나의 왼쪽 팔을 붙잡고 했던 말이다. 난생처음 내게 애썼다는 말을 했다.
어색했고, 코 끝이 찡해왔다. 이 한마디를 내게 하기까지 2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린 시절, 아빠는 종종 내게 왜 자신감이 없냐고 물었다. 아빠의 물음에 답하는 것 대신 '넌 왜 자신감이 없냐며' 같은 질문을 스스로 되물었다. 무엇 하나 똑 부러지게 하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를 보는 남의 나의 시선과 나를 보는 나의 시선을 구분해서 보았다. 그리고 나를 대하는 태도가 곧 남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될 수 있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14살 때의 생각이니,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조숙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끝없이 다이어리에 써나갔다.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내게 당연했다. 노력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까지도 나를 하찮게 여길 것만 같았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행동으로 자신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말이 아닌 최대한 행동으로, 못하더라도 끝까지 해보는 것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라고 생각했다. 이 무기는 ‘생존’해야 하는 스타트업 신에서 죽지 않고 버티는데 큰 힘이 되었다. 일하며 부족한 것이 생겨도, 쓴소리를 들어도 일은 그저 배우면 된다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멘탈 약하다는 소리는 견디기 어려웠다. 이는 나의 자존심을 구겨버리는 일이었다.


야근을 좋아했던 대표 밑에서 일하며 몸이 매일 혹사되고 있었을 때 일이다.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하는 삶이 일상이었다. 어떻게든 성과를 내보려 애쓰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일의 속도는 나지 않았고 대표의 성질과 조급함은 더해져 갔다. 하지만 성과만 내면, 목표를 이루면 태도가 바뀔 것을 알기에 버텼다. 안돼도 끝까지 하는 게 나의 장기 아니냐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결국 목표는 이뤘지만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이 휩싸였다. 무기력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았지만 무언가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슬프지 않았지만 슬퍼야만 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나자 회의 도중 왼쪽 팔이 마비되었다. 이제 다 괜찮아진 타이밍인데 왜 팔이 움직이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팔은 빨리 회복되지 않았고 그렇게 퇴사를 했다.

‘번아웃’이었다. 뇌를 속여 멘탈을 어떻게든 버틴 것 같았으나, 몸이 망가졌다. 제발 쉬라고 보내는 신호였다. 하지만 나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멘탈이 약해서 생긴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냥 감기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빨리 나아서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마음과 달리 생각보다 마비는 풀리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왼쪽 팔을 보며 물었다.


‘ 너 많이 아프니’?


대답 대신 눈물만 흘렀다. 그리곤 다시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너 많이 아프구나, 미안해’

‘너 그동안 많이 애썼구나. 몰라줘서 미안해’


스스로에게 하찮지 않다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기 위해 애썼던 수많은 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이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지만, 내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저 더 나아지는 것의 나의 권리이자 의무인 것 마냥 굴었다. ‘더 나아지고 싶은 나’만 알았지 ‘더 나아지기 위해 애쓰는 나’를 알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프고 나서야 애썼던 내 모습이 보였다. 무조건 버티는 것이 나를 인정하는 방식이 아님을, 나를 진정 사랑하는 방식이 아님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바보였다. 남이 아닌 자신과 경쟁해야 하는 것은 알았지만, 자신과의 경쟁을 어떻게 할 줄 몰랐던 것이다. 나와의 경쟁에서의 승패를 떠나 내가 했던 모든 생각과 행동들에 대한 감사가 필요하다. 나의 애씀을 자신이 알아줘야만 계속 달릴 수 있고, 달려야만 실패든 성공이든 더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안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지 않아도, 더 나은 내가 되려는 나의 애씀을 알아주는 한 나는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음을.


오늘도 이 글을 쓰는 나의 애씀에 감사를 표한다.

오늘 당신은 자신을 위한 어떤 애씀을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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