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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Jan 20. 2023

06_대표님의 자작극

홍 편집


(tumblr.com)



주간 편집회의

(죽 둘러앉아 있음. 홍 편집, 장 디잔, 이 팀장 등)     


[김 대표] “매출 떨어지고 다들 심란한 거 알아.”

[일동] “...”     


[대표] 

“출판계가 단군 이래 최대 위기라지만

출판계가 언제는 호황이었나 뭐?

그리고 이럴 때가 오히려 기회 아니겠어?

살아남을 놈들만 살아남는 거야.

오히려 시장이 정리되는 효과가 있어.”     


[일동, 같은 생각] 

‘우리도 정리될 수 있다는 말?’     


[대표] 

“문턱이 어느 정도 돼야 어중이떠중이 못 덤비지, 안 그래?”     


[일동, 같은 생각] 

‘우리가 어중이떠중이라는 말?’     


[대표]

“기획과 제작은 현실이야.

실험적인 책은 안 돼. 하려면 실험비 내고 해.

시장을 읽어. 자기 혼자 땡기는 책은 자비 출판 해.”     


[일동, 같은 생각]

‘연봉 인상은 꿈도 꾸지 말라는 얘기.’     


[대표]

“이럴 때일수록 회사 분위기도 중요해. 

근태 신경 쓰고 자중자애 해.

충성심까진 안 바래. 최소한의 애사심은 보여줘.”     


[일동, 같은 생각]

‘말이라고 다 하는구나.’     


[홍 편집, 생각]

‘자중자애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슬슬 멍 때리기에 진입.     


[장디잔, 생각]

‘자중자애 했으면 내가 여기에 있지 않다.’ 

지루한 표정으로 귀를 후빈다.     


[대표]

“그리고 팀들은 협력관계가 아니야. 경쟁관계지. 

팀끼리 사이좋으면 밥이 나와, 떡이 나와.

회사에 친목 하러 나와? 치열하게 경쟁해도 모자랄 판에.”     


[일동, 같은 생각]

‘우리가 행복한 게 싫으면 싫다고 하세요.’     


[대표]

“패션에만 TPO가 있는 게 아냐. 

조직생활에도 때와 장소와 상황이 있는 거야.

그런 팀 있더라? 

다른 팀 야근할 때 칼퇴하고

야근할 거 몰아서 특근하고 수당 챙기고

쉬는 날 다 쉬고

눈치 없이 연차 쓰고

네 일 내 일 가리고 

자기 분야만 챙기고...”     


[관자놀이가 묘하게 땅기는 느낌.]

[홍 생각] ‘뭐지, 이건?’     


[대표]

“하지만 분야가 어딨어? 

세상은 무한 경쟁이야.”     


[대표]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뭘 알아? 대표실에 갇혀 있는 내가?

그런 투서가 날아들었다는 얘기야. 내 이메일로. 

여기서 읽을 수도 있지만 차마 그건 경우가 아니잖아? 

대충만 말할게. 어느 한 팀이 전체 분위기 흐리고 있다고...

보고 있자니 속상하다고...

나도 정말 깜짝 놀랐어. 

이런 말을 해야 하나 정말 망설였어.      


그동안 내가 모두를 믿고 너무 갇혀 지냈나...”     


[장 디잔 생각]

‘누가 믿을까 겁나는 얘기.’     


[홍, 생각, 떨리는 눈꺼풀. 뻣뻣해지는 정수리]

누가 들어도 우리 팀 얘기. 

(홍에게 쏠린 눈들)     


[입을 악물고 사람들을 차례로 노려보는 홍]

누구야.

눈 희번덕.

날 도발해? 반드시 색출할 거야.      


(멀뚱히 앉아 있는 장 디잔)

[홍 생각] ‘아니야. 저 인간이 성질은 더러워도 이런 식으로 똥물 튀길 인간은 아니야.’     


(눈을 내리깔고 있는 이 팀장. 어딘지 찔리는 데가 있어 보이는 이 팀장. 유죄 인간.)

[홍 생각] ‘그래, 저 인간이야. 그런 말종 짓을 할 인간은 저 인간밖에 없지.’     


사건 일주일 전.

[이 팀장, 자리에 앉은 채로 기웃대며] “어머~ 그 팀은 어쩜 그래? 다들 얼마나 유능하면 항상 칼퇴야~~?”

[홍, 똥 씹은 표정] "오늘 할 일 다 했으면 가는 거지, 그럼 여기 살아요?" 


사건 이틀 전.

[이 팀장, 홍 뒤로 지나가다가 어깨너머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어머~ 또 특근수당 올려? 이 팀은 야근은 안 하면서 특근은 하더라~?”

[홍, 똥 씹은 표정] “마감하느라 인쇄소에서 주말 다 보냈어요.”

[이 팀장] “어머~ 마감은 왜 꼭 주말에 한대?”     

[홍, 가방 챙기며 생각] 

‘이런 시벨리우스. 

니네는 지켜는 봤냐, 마감?

날마다 야근한답시고 전기 축내지나 마.’      


사건 하루 전.

(정수기에서)

[이 팀장] “대표가 우리 팀에만 이 일 저 일 던지는데 미치겠어.”

[홍, 정수기 물 받으며 생각] ‘니네 팀에만?’

[이 팀장] “그 팀은 좋겠어~ 대표가 안 건드리잖아.”

[홍, 물마시며 생각] ‘남의 기획 채가지나 마.’      


다시 현재.

[자리로 돌아와 앉는 홍.]

어제의 일도, 그제의 일도, 지난주 일도 다 생각난다. 

들고 있던 다이어리를 팽개친다.

(끓어오르는 분노)     

[장미] “팀장님, 또 얼굴 터질 것 같아요.”     


[머리를 움켜잡는 홍. 뚜껑 열리는 홍] 

우아아아! 부셔버릴 거야! 갈아 마실 거야! 

평화는 끝이야.      


홍은 

그렇게

대표의

미끼를

물어버렸다.      

근거 없는 미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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