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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란 Oct 21. 2020

20살, 내가 대학이 아닌 세계여행을 선택한 이유(1)

도전과 두려움, 성공과 실패, 그리고 결과가 아닌 과정

일단 결과만 미리 말하자면 난 세계여행을 가지 못했다. 

내가 세계여행을 가려고 계획했던 건 대략 2020년 5월경이었고, 이미 1월부터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한 2월경에 상황을 보고 세계여행을 못 갈거라 대략 예상했었다.

그럼 세계여행을 간 것도 아니면서 왜 제목에 세계여행을 선택했다고 적었냐 물으신다면 어쨌든 내가 가기로 선택했던 건 맞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세계여행을 가기 위해서 노력했던 1년의 과정이 어쩌면 그 결과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여행을 통해서 이루려던 목적을 다 이뤘기 때문이다.


여행을 안 가려고 했던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일단 그건 다음에 얘기하도록 하고, 이번 글에서는 내가 세계여행을 가려고 했던 이유와 결과적으로 가진 못했지만 그걸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을 써보고자 한다. 

(이 글을 읽기 전에 내가 쓴 브런치 첫 글인 "한국을 너무 싫어서 떠나고 싶은 사람들에게"를 먼저 읽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세계여행을 가려고 했던 이유. 정말 별거 없다. 대학을 가기가 싫었다. 왜 가야 하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한국의 60만 명이 넘는 고등학생들이 단 하나의 시험을 위해서 길게는 몇 년 이상을 노력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학을 가면 뭐가 좋냐는 나의 물음에 아무도 나에게 진짜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가야 하는 거였다. 무조건. 그나마 답을 해주던 사람들은 대학을 가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던가, 대학을 가면 더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다던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대체 무슨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어떤 경험들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사람들이 다양하다는 건지 정확히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지겨웠다. 내가 봤을 땐 어차피 대학에 가봤자 지금과 똑같을 것 같았다. 똑같은 한국 사람,  똑같은 한국 교육. 대학을 가면 학점을 열심히 따야겠지. 그러고 나면 취업을 준비해야겠지. 또 그러고 나면 취업을 하고 회사를 다니며 살겠지. 정말 진심으로 지긋지긋했다. 나는 그런 쳇바퀴 같은 삶을 살기 싫었다. 물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건 아니다. 비교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그게 나와는 맞지 않는 삶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지겨운 수능 공부에, 내신 성적에 정말 질릴 대로 질렸다. 매일 밤까지 자습하고 또 학교에 가서 재미없는 수업을 듣는 삶에 정말 지쳤다.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다. 수업시간에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시는 걸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받아 적고 그렇고 달달 외우고 관련 문제집을 또 달달 풀어서 점수 잘 맞는 삶. 나는 죽어도 더 이상은 못하겠더라. 이런 삶을 한 번만 더 살라고 하면 차라리 죽는 걸 택할 것 같았다. 


그래서 틀을 벗어나고 싶었다. 내 앞에 놓인 정해진 길을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 나를 가두고 있는 이 숨이 막히도록 답답한 박스를 부수고 나오고 싶었다.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대학을 가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고? 아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내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도 모르는데 내 앞에 무슨 선택할 것이 있단 말인가. 무엇을 선택할지조차 모르는데 좁아질 폭은 어디 있는지.

설령 나중에 그 길이 좁아지더라도 나는 다른 길을 택하면 그만이다.


다양한 경험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근데 대학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차피 지금과 다를 것 없을 것 같았다. 대학에 가는 건 그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 받아서 가는 지금 내 주위에 있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 친구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는 그냥 뭐가 다양하고 새로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과 똑같을 텐데. 근데 그런 경험들은 대학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대학 밖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런 삶이 나와는 맞지 않았다. 나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더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싶었다. 더 다양한 선택지를 원했고 더 새로운 도전을 원했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나를 노출시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알을 깨고 나와야 했다. 모든 걸 바꾸고 싶었다. 지금보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내가 두렵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야 했다. 세계여행은 그중 하나였다. 전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분들은 딱 두 분이었다. 이미 호주 워홀을 갔다 세계여행을 다녀오신 분, 호주 워홀을 하며 경비를 모으고 계신 분. 전례를 들먹이면서 열심히 부모님을 설득했다. 이미 이렇게 한 사람들도 있다고, 그러니까 나도 할 수 있다고. 영어도 계속 공부했었고, 해외 나가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잘할 수 있다고. 향후 10년 계획까지 말씀드리며 열심히 부모님을 설득했다. 국내여행 한번 혼자 다녀본 적 없는 내가 세계여행을 간다는 것. 그리고 무려 수능도 안 보고, 대학도 안 가고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엄마는 완전히 미쳤다고 하셨고, 아빠는 외지에 딸을 혼자 보내는 것을 걱정하셨다. 당연하다. 나 같아도 내 딸이 그렇게 한다고 하면 걱정했을 것이다. 사실 이건 완곡하게 표현한 거고 정말 우울했던 그때의 나는 수능을 한 번 더 보라고 하면 자살할 거라며 부모님을 협박(?)했다. 지금에서 돌아보면 참 나도 부모님께 큰 상처를 드렸구나 싶지만 그때는 정말로 죽을 것 같았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이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을 못 빠져나갈 것 같아서 나도 정말 간절했다. 지금도 자식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는 부모님의 마음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그때보단 조금 알 것 같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엔 부모님이 두 손 두 발 다 드셨다. 처음에는 반대도 하시고 말려도 보셨지만 이미 결정을 내린 나를 믿고 응원해주신 부모님께 지금은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떨어져 있으면 더 돈독해진다고 결과적으로 보면 부모님과 나의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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