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아니한가>과 <Crazy, Stupid, Love>의 평행이론
누군가 '인생 영화'가 무엇인지 물어볼 때마다 나는 한 가지만 고를 수는 없다는 말을 하고서 결국은 <좋지 아니한가>(2007)와 <Crazy, Stupid, Love>(2011)를 꼽는다. 영화가 재미있었는지, 재미없었는지를 나누는 기준은 수십 가지지만 내가 인생 영화를 선택할 때 가장 비중을 두는 기준은 '작품 속의 캐릭터들이 얼마나 개성 있는지'이다. 아무리 스토리나 연출이 좋아도 긴 러닝타임을 이끌어 가는 캐릭터들에게 매력 없다면 그 영화는 '볼만 했지만 한번 더 보지는 않을 것 같은 영화'로 남게 된다.
(부디 본인이 해당 영화들의 포스터 디자인 담당이었다면 조용히 뒤로 가기를 누르길 권장한다.)
이쯤 되면 영화 관계자들이 포스터 디자이너에게 책임을 물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좋지 아니한가>를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이 포스터는 영화 자체가 가진 엉뚱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전혀 담지 못했다. 이는 가족을 소재로 한 '시트콤' 포스터처럼 보인다. <Crazy, Stupid, Love>의 포스터는 마치 제작비 부족으로 미처 디자이너를 고용하지 못해 급하게 휴대폰에 탑재된 사진 콜라주 기능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억측을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가 얼마나 Crazy 하고 Stupid 한 지를 보여주는데 집중했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스티븐 카렐, 줄리안 무어, 라이언 고슬링, 엠마 스톤 그리고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할리우드의 잡식성 배우로 유명한 케빈 베이컨까지. 지금은 시상식이 아니고서야 한 자리에서 보기 힘든 할리우드의 주역들이 <Crazy, Stupid, Love>에서는 떼로 나와 사랑도 하고 싸움도 하고 이것저것 다 한다. 특히 국내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던 '라라 랜드'의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 커플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영화라는 점에서도 눈여겨 볼만 하다.
<Crazy, Stupid, Love>에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이 있다면, <좋지 아니한가>에는 유아인과 정유미가 있다. 베이비파우더향이 날 것만 같은 이 커플의 풋풋한 신인 시절을 보고 있자 하면 그들이 아무리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뿐만 아니라 김혜수, 박해일, 천호진 등 내로라하는 국내 배우들의 10년 전 모습이 궁금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충분해진다.
'Cancel(취소)'라는 단어를 'Cancer(암)'으로 착각하고 하루아침에 시한부가 돼버린 엄마(문희경), 위험에 처한 여학생을 구하려다 불미스러운 일에 누명을 쓰게 된 아빠(천호진), 엉뚱하기 짝이 없는 4차원 아들(유아인)과 딸(황보라) 그리고 무협작가를 꿈꾸는 백수 이모(김혜수)까지. 심씨네 가족들은 하나같이 어설프고 부족하다. <Crazy, Stupid, Love>의 칼 위버(스티브 카렐)의 가족들도 만만치 않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이들은 모두 사랑에 미쳤다. 칼 위버가 이혼하자는 아내의 말이 듣기 싫어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과 얽히고설킨 관계의 사람들이 결국은 한 자리에 모여 말 그대로 개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언제 봐도 웃음을 자아낸다. 두 영화 모두 장르가 '드라마/코미디'인 만큼 영화가 끝나고도 두고두고 생각나는 재미있는 대사와 장면들이 상당하다.
<좋지 아니한가>의 심씨네 가족들과 <Crazy, Stupid, Love>의 위버 패밀리의 가장 큰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찌질하지만 사랑스럽다'라는 점이다. 빈틈 투성이에 상처 투성이이지만 결국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보듬는 그들, 함께하니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