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요일, 가장 한적한 시간대에 영화 <주디>와 <1917>을 보러 갔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이면 문화의 날을 핑계 삼아 보고 싶었던 영화 네 편을 예매해서 하루 종일 영화관에 붙어있곤 했지만 최근에는 코로나 때문에 무엇 하나 마음 편히 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날 영화관에는 나와 내 친구, 딱 두 명의 관객이 전부였다.
제목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했듯이 영화 <주디>는 기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딱 예상한 만큼 적적했고, 예상한 만큼 쓸쓸했다. 아마도 나에게는 그 시절 할리우드와 주디 갈란드에 대한 향수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배경 지식이 너무 없어 영화 직전에 '주디 갈란드'에 대해 검색해보기 전까지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왔던 마리아역을 한 배우가 주디 갈란드인가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그녀가 맡았던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역과 헷갈렸었나 보다.
MGM이라는 유명 영화사와 어릴 때부터 전속 계약을 맺고 휴식기도 없이 활동했던 어린 소녀는 행복과 희망 등 그녀가 노래했던 것들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된다. 수면제와 각종 약물이 없으면 정상적인 생활이나 사고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유일한 삶의 이유였던 자식들마저 곁을 떠난다.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았지만 그녀 옆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울 뿐이다. 점점 피폐해져 가는 주디 갈란드의 삶을 대변하는 듯 전체적인 스토리는 어둡고 느린 템포로 진행된다. 지루할 법도 하지만 중간중간에 삽입된 공연 장면이나 과거를 회상하는 시퀀스가 이야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디가 극 중에서 무대 앞의 대중들과 멀어질수록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과는 점점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누구보다도 무지개 너머의 세상을 꿈꿨던 그녀는 끝도 없는 먹구름 속을 헤집고 다녔고 결국은 무지개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누군지도 몰랐던 '주디 갈란드'라는 인물에 대한 감정 이입으로 어느새 내 머릿속은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외로웠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관객들이 주디의 시선에 다다르기까지는 '주디 갈란드'역을 맡은 배우 르네 젤위거의 역할이 매우 컸다. 영화 <주디>는 골든 글로브, 아카데미 등 총 7개의 영화제에 의상상, 분장상, 여우주연상 후보로 12개에 노미네이트 되었는데 수상한 6회는 모두 르네 젤위거의 여우주연상이었다. 실제로 평점 4점 이상의 관람평을 보면 대부분이 르네 젤위거의 연기에 대한 극찬이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는 차치하고 연출이나 전체적인 구성을 놓고 본다면 사실 모든 게 너무 뻔했다. 완벽에 가까웠던 그녀의 연기력에 이견을 내놓을 생각은 없지만 영화 자체보다 배우가 더 주목받는 그림이 아쉬움을 주었다.
혹평은 혹평일 뿐. 개중에는 아직까지도 여운이 남아있는 장면들이 있다. 주디 갈란드가 오랜 팬들의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 장면과 런던 공연 관계자들과의 식사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케이크를 맛보는 장면은 오히려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보다 내게 더 큰 울림을 주었다. 무대 아래에서는 그저 평범한 소녀이자, 여자이자, 부모이고 싶었던 주디의 순수함이 가장 잘 묻어났기 때문이다. 부디 하늘에서는 할리우드의 영원한 도로시가 아닌 주디 갈란드 자신으로 사랑받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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