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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뷰어 Mar 12. 2020

영화 <결혼 이야기> 혹은 이혼 이야기

I'm so happy for you.

  너무 몰입이 잘 돼서 보기가 힘든 영화가 있다. 이성적인 코멘트를 남기고 싶어도 자꾸만 감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영화가 있다. 슬픈데 희한하게 눈물이 안나는 영화가 있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가장 최근 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결혼 이야기>가 나에게는 그랬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넌 이 인생에 만족했었어, 니가 싫어하기로 마음먹기 전까지는."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의 유월 일일, 여동생의 생일이기도 한 그 날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혼이 법적으로 승인됐다. 이혼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이 정말 길었다. 약 10년 정도 하루가 멀다 하고 언쟁이 계속됐고, 결국은 한 사람이 먼저 나가떨어졌다. 둘은 서로가 눈에 보일 때도 싸웠고, 보이지 않을 때도 싸웠다. 오래된 기억 속에서 내 작은 두 손을 잡고 팔 그네를 태워주던 두 사람은 어느 지점부턴가 그저 기억 속에만 머물렀다. 이혼하는 당사자도 아닌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으로도 완전히 질려버렸다. 부모님의 친한 친구분께서는 날더러 두 분을 말려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그분은 되려 나에게 설득당하셨다. 당시 연극반 생활에 푹 빠져 배우를 꿈꿨던 나는 때때로 현실이 연극인지 연극이 현실인지 헷갈렸다. 영화 속에서 찰리(애덤 드라이버)는 부인 니콜(스칼렛 요한슨)과의 말다툼 중에 아들이 괜찮다는 보장만 있으면 당신이 차에 치여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한다. 실제로 이혼하는 부부들은 그보다 더한 말도 한다. 아름다운 이별은 있어도 아름다운 이혼은 없다.

"죽은 줄 알았던 나의 일부는 죽은게 아니라 잠들어 있던거였어요."

  마침내 니콜은 뉴욕을 떠나 아이와 함께 친정식구들이 있는 고향인 LA로 돌아간다. 니콜이 자신의 이혼 담당 변호사와 나누는 대화 중에는 "조지 해리슨에 관한 다큐를 봤는데 현모양처인 그의 부인을 보면서 자신도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그 부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한 때는 주목받는 할리우드 신예였던 그녀지만 찰리와의 결혼 이후 그의 실험적인 연극 무대에만 오르면서 대중들로부터 점점 잊혀 간다. 니콜은 찰리에게 잠깐이라도 좋으니 LA에서 살아보자는 제안을 수도 없이 했는데 찰리는 왜 단 한순간도 그녀를 위해주지 못했을까. 평생 꿈꿔왔던 일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는 그의 입장에서는 손에 쥔 것을 놓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목이 터져라 소리쳤지만 그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냥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법과 제도 아래에서 서로의 관계를 맹세한 두 사람이다. 그 맹세를 어기기 전까지 둘은 울어도 보고 참아도 보고 할 말 못 할 말 내질러도 봤을 것이다. 사랑했던 감정은 돈으로 매길 수 없지만 결혼 생활은 제삼자에 의해 돈으로 매겨지고 나누어진다. 이혼은 나쁜 게 아니다. 슬픈 거다. 적어도 지켜보는 다 큰 자식 입장에서는 그렇더라.

"나 혼자만의 세상이었어."
"당신은 그 여자와 내가 자서가 아니라 함께 웃었다는 것에 화를 내야해."

  아이러니하다. 나는 <결혼 이야기>를 보면서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 극단적인 예지만 중요한 시험에 떨어져도, 길을 가다 소매치기를 당해도, 주변 사람이 상을 당해도 빠르면 몇 시간, 며칠 내에 우리에게는 아주 아주 작은 사소한 일이라도 웃을 거리가 생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이혼 소송 과정에서 니콜과 찰리는 변호사들과 함께 잡담을 하다 서로를 보며 실소를 터뜨린다. 니콜과 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단지 자기 자신보다 사랑하지 않을 뿐이다. 이혼 후 우연히 찰리는 아들 헨리에 의해 니콜이 자신의 좋은 점 대해 쓴 글을 읽게 된다. "I'll never stop loving him, even though It doesn't make sense anymore.", 니콜이 쓴 글의 마지막 문구다. 그녀는 방 문 앞에서 부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두 사람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히고, 찰리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지만 그녀의 말처럼 이제는 소용없는 일이다.

영화 <결혼 이야기> 중 뮤지컬 Company의 넘버 'Being Alive'의 가사 일부분.

  찰리는 극장 단원들과의 술자리에서 신세한탄을 하다가 'Being Alive'라는 곡을 부르는데 이 장면은 라이브로 녹음됐음에도 불구하고 원테이크만에 촬영이 끝났다고 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유튜브로 이 장면을 대체 몇 번이나 반복 재생했는지 모르겠다. 영화 <라라 랜드>에서 라이언 고슬링이 스타가 되어 이미 결혼까지 한 엠마 스톤을 바라보면서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했다. <결혼 이야기>에서의 애덤 드라이버는 노아 바움백의 또 다른 작품인 <위 아 영>에서 봤을 때랑은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투박하고 선 굵은 외모에 비해 참 섬세하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느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신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토크쇼 도중 'Being Alive'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자 그 자리를 떴다고 한다. 연기를 이렇게 해놓고도 본인에게서 계속해서 부족한 점을 찾아내는 걸 보면 배우로서의 그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결혼 이야기>

  감독인 노아 바움백은 그레타 거윅을 만나기 전 자신의 실제 이혼 과정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주연 배우인 스칼렛 요한슨 역시 이혼을 경험 한 바 있으며, 애덤 드라이버도 유년 시절 이혼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연기할 때에 좀 더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현실보다 현실적인 묘사와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영화 <결혼 이야기>, 개인적으로 작년에 개봉한 영화 중에서는 가장 완성도 있는 영화 중에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니콜과 찰리는 둘 중 어느 한 명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찰리가 니콜이 쓴 글을 이혼 후에 읽었기 때문에 조건 없이 받았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으며, 니콜은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서포트해줄 새로운 짝을 만났다. 찰리와 니콜이 재결합해야만 해피 엔딩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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