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번 더 보고 싶거든요.
영화 <레이디 버드>로 감독 데뷔를 치렀던 배우 그레타 거윅이 2년 만에 <작은 아씨들>로 돌아왔다. 시얼샤 로넌과 티모시 샬라메는 이번 영화를 통해 그레타 거윅과 한번 더 합을 맞추게 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윅은 시얼샤와 티모시가 각각 <작은 아씨들>의 '조'와 '로렌'으로서 호흡을 맞추는 첫 리허설을 보다가 지나치게 완벽한 둘의 케미에 리허설을 중단시켰을 정도였다고 한다. 정말 그 정도였냐고? 아니다. 내가 감독이었다면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토록 사랑스러운 투샷을 담아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쁘고 뿌듯해서 며칠 밤잠을 설쳤을 것 같은 정도다.
영화 <작은 아씨들>은 루이자 메이 알콧의 소설 <작은 아씨들>을 원작으로 하며 지금까지 총 9회에 걸쳐 리메이크됐다. 한번 쓰인 소재를 또다시 써서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들로부터 신선한 반응을 기대하기가 어려우며, 직접적으로 비교할 대상을 쥐어주고 시작하는 일이기에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소설의 경우에는 이미 캐릭터와 줄거리가 짜여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특히 감독의 역량이 중요해진다. 한두 번도 아니고 무려 9회에 걸쳐 리메이크가 됐다는 것은 전작품들이 대중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거나 해도 해도 더 들려줄 이야기가 남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두 가지 이유에서라면 나는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이 전자와 후자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하고 9회 말에 홈런을 치며 긴 리메이크 레이스를 종료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전작들이 소설의 줄거리처럼 시간 순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면 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주인공들이 모두 성인이 되어서 벌어지는 현재의 이야기로 영화를 시작한다. 그리고는 별다른 언질도 없이 현재와 미래를 마음대로 오간다. 의상과 헤어스타일, 장소, 그리고 빛과 색감으로 벌어진 시간의 차이를 표현한다. 인물들이 과거의 유년시절로 돌아가면 스크린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황금기를 표현하는 듯한 따뜻한 빛이 든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스크린은 차갑지 않을 정도로 환해진다. 눈썰미가 부족한 사람이라면 이야기 전개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전개 방식을 통해서 그레타 거윅이 얼마나 똑똑한 감독인지 그녀가 왜 이렇게 각광받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는 고전 소설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역이용하면 어떨까. 알고 있는 이야기 사이에 거윅은 원작자인 루이자 메이 알콧의 개인 편지나 그녀가 쓴 다른 작품들을 참고하여 관객들이 몰랐던 이야기를 집어넣고는 타임라인을 섞어버린다. 이에 관객들은 배경지식에 기반한 예측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시공간에 따라 변하는 인물들의 호흡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데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1세기 <작은 아씨들> 이전에는 1995년 개봉한 질리언 암스트롱의 <작은 아씨들>이 있었다. 이 작품에서 '조' 역할을 맡은 배우 위노나 라이더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지명되기도 했는데 그만큼 역할이 참 잘 어울렸다. 그녀가 가진 중성적인 매력과 장난기 넘치는 표정이 배역을 소화하는 데에 제 몫을 톡톡히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거의 대부분의 포커스가 '조' 캐릭터에만 맞춰져서 '메그', '베스', '에이미'와 같은 다른 자매들의 이야기는 조명을 받지 못했기에 공감하기조차 쉽지가 않았다. 특히 막내인 '에이미'는 특별한 이유 없이 얄밉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반면, 거윅은 모든 캐릭터가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전작들과는 또 다른 차이점을 만들어낸다. '조' 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 자매들, 어머니, 아버지, 고모 그리고 로리와 그의 가족들까지 모든 인물들이 입체적이다. 다르게 말하면 능력 있는 감독과 배우들은 죽은 캐릭터도 살려낸다. 철부지로만 느껴졌던 막내 '에이미'는 플로렌스 퓨에 의해 야망 있고 똑 부러진 여성으로 재탄생했으며, 전작에서 있는 듯 없는 듯했던 '베스' 역할 역시 로렌스 씨와의 돈독한 관계 형성 과정을 보여주면서 스토리와 인물에 개연성을 더했다. 포커스가 여러 캐릭터들에게 골고루 나눠지고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많다 보니 오히려 전작에서 그나마 비중이 있었던 '메그'역할은 무난하게 묻혀가는 느낌까지 받았다.
부족한 점이 딱히 떠오르지도, 굳이 찾고 싶지도 않았던 감독 그레타 거윅의 두 번째 작품 <작은 아씨들>이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요리한 고전 소설에 <레이디 버드>에서 보여줬던 그레타 거윅식의 유쾌함과 사랑스러움을 솔솔 첨가했다. 엉뚱하고 재밌는 줄로만 알았더니 섬세하고 감성적인 면도 있더라. 그녀가 본인만의 레시피를 완벽하게 터득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음 작품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어졌다. 오늘도 또 한 편의 영화가 지친 내 마음을 꼭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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