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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혜진 작가 Jun 22. 2023

3개월 차 워킹맘의 기록

내가 일을 때려치우던지 해야지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공방 사장님이 된 지 3개월 되었다. 직장인은 아니지만, 워킹맘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일상의 틈이 하나둘 벌어지기 시작했다. 안 하던 일이 추가된 상황에서 하던 일들은 구멍 없게 유지하려는 애씀이 결국 화를 불러왔다.

"내가 일을 때려치우던지 해야지"


아침이면 아이들을 깨워 밥을 먹이면서 나도 출근할 준비를 한다. 예전 같으면 내 옷은 대충 입고 선크림만 바르고 나서도 충분했지만 지금은 나도 일터를 가는 사람이라 그럴 수는 없다. 8살은 아침 일정을 그나마 혼자 해내지만, 6살은 여전히 손이 가는 일이 많다. 누나의 등교 시간에 맞춰 일어나느라 아직 눈도 못 뜨고 식탁에 앉히는 날이 많고, 그런 아이를 굶기고 보낼 수는 없어 옆에 앉아 어떻게든 밥을 떠먹인다. 밥 먹고 양치하고 옷 갈아입는 일이 이렇게나 오래 걸릴 일인지 이렇게나 힘든 여정인지 일하기 전에는 몰랐다. 아니, 그때도 알았지만 이 시간에 대한 워킹맘들의 체감 온도를 이제야 안다고 해야 할까. 그 틈에 나를 위한 약간의 변신의 시간도 필요하다. 화장을 하고 옷을 입는, 출근을 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행위들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집에서 나서야 하는 시간은 8시 15분. 오늘의 1차 스케줄이 끝난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기 전, 해야 할 일이 또 기다리고 있다. 아침에 쌓아두고 온 설거지 그릇,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 쌓인 빨래, 빨랫줄에 가득 널린 마른 옷, 거실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 저녁밥은 또 뭘 먹나 매일 이 고민의 굴레다. 눈 뜬 순간부터 눈을 감는 시간까지 나와 엄마라는 이름 안에서 1초의 낭비도 없이 채워야 한다는 사실에 숨이 막히고 신경에 날을 세우게 된다. 


공방에 예약된 클래스 또는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마치면 집으로 간다. 그러고는 아침에 치우지 못한 집을 정리하고 반찬을 한두 가지 해두고 아이들을 데리러 다시 집을 나선다. 아이들을 다시 만난 오후, 하루가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다. 셋이서 움직일 때면 늘 시간에 쫓겨 외출복을 입고 밥을 먹는 일은 다반사이다. 자기 전 씻을 때가 되어서야 옷을 갈아입기도 한다. 하루가 분명 24시간인데... 체감상으로는 5시간쯤밖에 안 되는 느낌은 분명 기분 탓이다.


워킹맘이 되고 하루가 빠듯해진 건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리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작한 일이어도 시간과 마음에 여유가 없어질 수밖에 없기에 하루가 타이트해졌다. 더구나 하필 지난달과 이번달 남편은 매일 야근을 할 정도로 회사일이 바빠졌다. 아이들이 자는 시간 9시가 되어서야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 평소처럼 땡 하면 퇴근해서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씻기거나 내 이야기라도 들어주면 좋으련만...


 혼자 놀고 늦게 들어오는 게 아니라 수고했다는 말로 하고 싶은 말을 덮어버렸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아이들과 함께 잠이 들다 보니 나와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남편과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었다. 혼자 사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그 사람을 보며 하루, 이틀 지나자 불만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기 일보직전. 나는 일도 하고, 아이들도 케어하고, 집 청소, 빨래, 밥... 하는 일은 끝도 없다는 사실이 더욱 크게 느껴면서 왜 여자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억울함까지 밀려왔다.

그 마음을 누르고 눌렀다. 넘기고 넘겼다. 



"아빠는 언제 와? 오늘도 늦어?"

"아빠 보고 싶다"

"아빠가 제일 좋아"


왜 여자만 이렇게 엄마로 아내로 나로 3가지 역할을 하느라 진이 빠지는지-

왜 나도 일을 하는데 기존에 하는 역할은 그대로 나에게만 있는지-

왜 이 일들을 도와주지 못하는 아빠만 애들이 찾는지-


아이들은 한 공간에 있지만 집안일에 바쁜 엄마보다 잘 놀아주는 아빠를 매일 기다렸다. 둘이서 잘 꽁냥 거리다가도 잘 시간이 되면 아빠가 언제 오냐고 물었다. "올 때 되면 오겠지" 아이들의 물음에 툭하며 대답했다. 그러다 나 혼자 너희를 보는데 아이들이 아빠를 보고 싶어서 찾는 게 어느 순간 귀에 거슬렸다. 옆에 있는 엄마에게는 고맙다고 하지 않고, 왜 집에 없는 아빠만 찾는지. 남편에게 불만이 쌓이자 그런 남편을 찾는 아이들에게 불똥이 튀고 말았다. 치사하게. 


바쁜 와중에 하루는 회식을 한다며 12시가 되도록 들어오지 않는 남편에게 끝내 뚜껑이 열렸다. 

나도 모르게 나온 말.

"내가 일을 때려치우던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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