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9시, 공방에 나와 불을 켜도 이젤 앞에 앉았다.
오늘은 누구랑 작업 파트너를 할까-
나의 오빠들 지오디 노래로 작업을 시작했다.
20대 때 야작하던 생각이 솔솔 났다.
어느 분야에서든 10년쯤 몸 담고 있으면 전문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주어진 일만 할 뿐 알아서 알아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세월이 가도 그 자리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품을 들여 일을 했다면 10년의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있을 것이다.
"10년쯤 후면 나도 내 그림으로 갤러리를 가득 채울 수 있겠지?"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냥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서, 그러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3년째 이어오고 있는 취미이자 직업이다. 그림을 전공으로 하지 않았기에 이 분야에서는 뭐랄까, 더 천천히 무언가를 해내도 좋겠다 싶었다. 내 그림을 보며 '누군가 전공을 하지 않았으니 이 정도 그리지...', '전공도 안 했는데 우와-'이 중에 후자의 반응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까.
운이 좋게도 재작년부터 그림 작가들의 틈에 껴 공동전시에 참여하고 있다. 누구의 그림이 좋은지 잘 그렸는지 그런 평가 없이 그저 자신의 그림에 정성을 쏟아 전시 당일에 하얀 벽에 걸어둔다. 붓은 놓는 순간까지 그림이 좀 초라한가 싶은 아쉬운 듯한 마음도 갤러리에 그림을 걸어 핀 조명을 비추면 어느새 혼자만의 탄성이 나온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작품이기에 더할 수 없이 마음이 채워진다.
아직 나만의 그림체도 시그니쳐도 없지만 그래도 그리는 일이 좋다. 이제 완성이다! 깔끔하게 마감을 정하는 시점에는 늘 미련이 남지만 그 과정에서 작은 부분 하나라도 마음에 들면 그저 뿌듯함으로 남는다.
우연히 보게 된 갤러리 주민작가 선정 공고에 나도 모르게 신청을 했다. 아직 그려놓은 그림도 없고 전시 일정이 정해져 있어 그때까지 시간은 1달 남짓이라 힘든 일정이 되겠지만, 그래도 장소를 제공해 준다 하니 욕심을 내볼까 싶었다.
큰 갤러리도 아니고 이 동네에 있는 작은 갤러리라 경쟁률이 치열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과연 내가 선택이 될까-하고 싶은 마음 반, 아직은 아니지 싶은 마음 반으로 지원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탈락하면 당연한 거고 붙으면 또 한 번의 도전이겠네 하면서 말이다. 이게 돼야 좋은 건지 안 돼야 되는 건지 헷갈려하며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혜진 님의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
또 한 번의 '일단 고' 정신으로 스스로 큰 산을 만들어냈다. 기뻐하는 시간도 잠시.. 주민 작가로 선정이 되고 전시일까지는 6주의 시간이 있다. 그러니까 나는 그 기간 동안 10점 이상의 작품을 그려야 한다. 그걸 소화해 내려면 1주에 2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정말로 빠듯한 일정이 남았다. 공방에서 클래스도 진행하고 저녁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고, 1주일에 한 번 외부 출강도 있는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든 시간을 더 만들어내 그림을 그려야 한다. 정말 해내고 나면 뿌듯하고 대견할 것만 같은 스케줄이다.
토요일 오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슬금슬금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번주에 2 작품을 그려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초조한 생각이 들었다. 저녁 9시, 고맙게도 아이들은 일찍 잠이 들었고 나는 공방으로 나왔다. 시간을 낼 수 있는 만큼 모두 써야 1달 뒤 후회가 없을 것만 같아서, 만족스럽게 작품을 완성하지는 못해도 최선은 다해야 하니까 말이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채워야 하는 6월, 지오디 오빠들을 자주 만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