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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Dec 23. 2020

수몰된 관계는 어디서 호흡하는가

우리의 바다에는 무엇이 떠다닐까?

최근에 메모장에 글이 많아졌다. 주로 나의 메모장에는 짧은 단어가 나열되어 있거나, 세 문장 이내의 짧은 글들이 대부분이다. 감정을 표출하는 데 있어서 글만큼 좋은 것도 없어서 나는 자주 나의 감정을 글로 옮겨두었다. 수많은 메모를 넘기다 새벽녘에 기록된 메모 하나에 시선이 떠나질 않는다.








나는 때때로 상식적인 것이 좋다. 1+1이 2가 되는 상식. 밤이 되면 자야 하고, 아침이 되면 일어나야 하는 상식.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며, 독서를 하면 좋다는 상식. 우리가 나눈 말이 주고받은 대화라는 상식. 좋은 사람과 함께 할 때 나도 좋은 사람이 된다는 상식. 대단한 논리를 따져 드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에게도 통용될 수 있는 단순한 코드. 나는 그런 것들에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적어도 기반을 다지는 재료인 것이다.



이러한 상식을 벗어났을 때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굉장히 드물다. 바로 머리로 떠오르는 몇 개의 이벤트를 제외하면 비상식적인 일들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아니, 부정적이었다기보다는 부정적이라고 판단하기도 애매한, 이해불가의 영역이었다. '도대체 왜?'라는 물음표가 끊이질 않고, 표적은 대답이 없다. 한순간의 우리 사이를 비집고 온 차가운 바닷물은 우리의 관계를 수몰시켰다.










너를 보며 나눈 대화들을 곱씹어 본다. 너의 잘못을 찾기보다, 나 스스로에게 손가락질을 해본다. 내가 행여나 실수를 했는지, 나의 작은 실수들이 우리 관계를 함몰시킨 건지, 나의 언행이 불편할 수도 있었는지, 이제야 너의 입장을 생각해본다. 나는 좋았는데, 나는 너무 좋았는데. 골똘히 생각하나 이내 나만 좋았던 것이었구나 하며 고개가 떨궈진다. 




비상식적인 상황에 대답이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그냥 차라리 욕을 하고 숨어버리지 따위의 푸념을 하다가도 우리가 좋았던 공간이 생각나고, 우리가 나눈 의미들이 생각나고, 서로의 미래를 응원했던 시간들이 생각나서 그냥 떠오르는 얼굴을 잡아두고만 싶다.








시간이 지나 우리의 바다에는 무엇이 떠다닐까? 바닷속 깊숙이 떠내려갔던 우리의 시간들이 떠오를지, 서로 풀지 못한 고리들이 뒤엉켜 바다 위를 표류할지. 아니면 여전히 우리는 수몰되어 있을지. 그렇다면 나는 언제까지 숨을 참아야 하며, 나의 호흡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너는 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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