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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Jul 17. 2022

편집자에서 프리랜서로,
그리고 그다음

내가 수많은 경계를 넘는 이유 (2)


집에는 늘 책이 많았다. 학교에서 일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는데, 덕분에 책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그렇다고 어렸을 때부터 다독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림을 그리거나 글쓰기, 아니 밖에 나가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를 자주 느꼈다. 손으로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이나, 고유의 향 같은 것은 다른 사물로는 느끼기 힘든 안정감을 주었다. 


대학생이 되고 공격적인 독서를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는 것이 딱 좋은 표현인데, 독서의 시간이 어느 정도 채워지니 다른 시선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신기했다. 이를테면 책 한 권을 구성하는 목차, 폰트의 종류나 크기, 문장과 문단 사이의 의도적인 간격, 레이아웃을 통해 주는 메시지 같은 것들이 흥미로웠다. 


비슷한 시기에 문서 편집에 대해서도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경영학과 교직이수를 같이 하면서 매일 쏟아지는 과제는 상당했고, 자연스레 다양한 문서들을 편집하게 되었다. 특히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편집 툴을 많이 배웠다. 평소에도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성격이 방대한 문서와 편집 툴을 만나니 찰떡이었던 것. 그럼에도 전공 이외의 분야의 일을 한다는 것은 내 인생 계획에 없었다. 작디작은 스물네 살의 생각이었다. 






퇴직 후, 새롭게 인생의 판을 짜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 가보지 않았던 공간, 듣지 않았던 이야기,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다. 20대를 바친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0에서 시작한다는 것에는 의외로 담담했다. 오히려 뭐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만큼 나는 많이 회복되어 있었고, 의욕적이었다. 


오랫동안 머물던 곳을 떠나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집과 가까운 곳에는 출판단지가 있었고, 그곳은 20대에 이따금 찾던 아지트였다. 처음엔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한 출판사 건물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고, 하늘을 가리는 것이 없어 좋았다. 작은 소도시가 주는 여유로움이 좋아서, 또 필요해서 왕왕 가는 곳이었다. 그렇게 찾던 곳을 직장으로 다녀도 괜찮을까? 너무 이른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쨌든, 나는 이번에도 경계를 넘었다. 






편집일 자체는 무탈했다. 문제는 그것만 무탈했다.



경력직 신입은 이런 걸까. 한껏 사회생활에 절여져 있다가 다시 시작하는 사회생활은 꽤 재밌었다. 새로운 공간에 입성함으로 인해 벌어지는 연쇄적인 기쁨은 내 안에 무언가가 충족되는 느낌이 들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동기를 만났고, 잊고 살았던 친구를 만났다. 가까이 사는 사람들과의 공감대 형성도 좋았다. 같은 결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나를 더 근사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나는 이 사실을 자주 상기했다. 학교에서의 업무가 워낙 고강도였기에 사실 편집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퇴근 후에 내 삶으로의 온, 오프가 확실해지는 회사생활이 신기했다. 나쁘지 않은 것들이 계속될 때를 조심해야 한다. 나쁜 것이 갑자기 오기 때문이다.



본인의 무능함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 게으름과 이기심으로 굳혀진 사람, 감사하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 책임이라는 것을 모르는 비겁한 사람, 부정을 넘어 음해한 사람.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생각보다 같이 하는 사람들이 중요하구나, 일의 의미나 가치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의미가 더 중요하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다수의 사람들이 주는 행복보다 소수의 사람들이 주는 스트레스가 더 컸다. 처음 겪어보는 스트레스의 종류였다. 이번에는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시금 찾아온 무소속의 시간. 


정확히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계획 없이 무작정 퇴사했다. 아니, 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구체적이지 않았고 왜인지 모르게 자신감이 없었다. 불안감을 기본값으로 설정해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그것은 어떤 조직에 속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차라리 내가 만들고 말지, 누군가의 아래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끔찍하기까지 했다. 반대로 조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정적인 소득을 포기하겠다는 것. 그럼 나는 무엇으로 돈을 벌어야 할까? 당장 수익이 되지 않는 것들만이 나를 조급하게 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다시 한번 물어본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것은 어떤 삶을 살고 싶냐는 것. 유한한 시간 끝에 마주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어야 할까. 이제는 떠다니는 생각을 손으로 잡아야 할 때가 왔다. 



떠다니는 생각을 시각화하면 결연한 의지가 생긴다.



용기 내어 이야기하자면, 나의 모든 경계의 교집합이자 합집합은 교육이다. 교육을 위해 수많은 경계를 넘어왔다. 교육을 위해 교직에 있었고, 퇴직을 했다. 교육을 위해 아팠고, 회복했으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교육을 위해 이질 적인 것에 나를 던졌고, 이해하려 애썼다. 그 어느 것 하나도 무의미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오히려 교육을 위한 나의 노력이 끝끝내 빛을 발할 것이라는 것에 의심이 없다.


교육가 뒤에는 자본가가 있다. 자본이 있어야 교육이 있을 수 있다. 자본이 있어야 교육의 질이 달라진다. 현장에서 너무 많이 보고 느꼈다. 교육에 자본은 필수다. 지금 나는 교육의 필수 조건을 위한 제반을 다지고 있다 생각한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내 안의 그림은 뚜렷하다. 앞으로 만들어갈 교육의 공간, 그 안에 채워질 다양한 매체들과 사람들. 뚜렷한 꿈을 더 미루지 않고 부지런히 경계를 넘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의 최선이다. 






이따금 생각해본다. 교육자로서의 내 모습, 가르치는 자로서의 내 모습, 그 기쁨을 누리는 내 모습. 그때는 스스로를 조금 인정해줄까? 그때는 내 이름에 붙는 수식어에 민망해하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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