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을 대하는 자세
늘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사이를 자처했다. 어디 한쪽에 치우친 삶은 왠지 피곤해 보였다. 인사이더들은 어딘가 불안했고 아웃사이더들은 대체로 매정했다. 자칭 미들사이더로, 인사이더 곁에서 ‘분위기를 유연하게 하는 법’을 터득했다면 아웃사이더에게 ‘나만의 분위기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유행을 대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유행 타지 않는 클래식한 옷을 다양한 조합으로 입는 걸 좋아한다. 유행만 냅다 좇는 가벼운 느낌도 싫지만 센스 없이 아무 옷이나 주워 입기도 싫으니까. 클래식은 대체로 오래 가고, 흑역사를 덜 만든다고 믿는 편이다. 한국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심화하는 현상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집단주의적 정서가 강하게 존재한다고 본다. 그 정서는 간혹 다양성이 몰각하는 문화로 이어지는데, 예컨대 자신만의 취향이 확고한 사람을 유별나다고 규정한다. 지하철에 딱 봐도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탔을 때 흘끔거리는 시선들이 대신 말해준다. 무난하게 대세를 따르길 선호하는 굵은 물결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겠다. 그러다 보니 패션, 노래, 언어, 심지어 주식 투자까지 ‘다들 그렇게 하니까’ 하면서 별생각 없이 파도를 따라 휩쓸린다. 어느날 갑자기 지하철에 범고래들이 출몰한 것처럼.
이건 그중에서도 노래에 관한 이야기다. 한 번은 NGO 인턴 당시에 선배와 외근 가는 길이었다. 차 안에서 정적이 익숙해질 무렵 선배는 어떤 가수가 신곡을 냈다면서 노래를 틀었다. 그 가수는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서 나 역시 살짝 기대하는 마음으로 듣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내 실망했다. 첫 소절부터 가사는 둘째치고 멜로디도 와닿지 않았다. 후렴이 어딘지는 찾지도 못했다. 그 가수가 그동안 어떤 음악 철학을 선보이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는지 떠올린다면 이번에는 그 기대를 산산이 무너뜨린, 거의 배반에 가깝다고 과감히 외칠 수 있는 정도였다.
다른 사람 앞이었다면 여과 없이 "별론데?"라고 내뱉었을 테지만 평소 그 가수의 견고한 팬임을 내비치던 선배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자동으로 재생된 다음 노래의 중간을 지나기 전까지 우린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짐작컨대 둘 다 입장이 곤란했다. 내겐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문제였고 선배에겐 냉정한 팬이 되는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음원 차트 1위 할 노래니까 계속 듣다 보면 좋아지겠죠" 선배가 적막을 깨고 말했다. "사람들이 다 그런 생각으로 이 노래를 꾸역꾸역 듣겠죠?" 하고 새침하게 반박했다. 꾸역꾸역. 나는 늘 빠른 유행이 조장하는 왜곡된 소비문화와 이를 따르지 않는 자가 소외되는 현상에 불만이 가득했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스페이스 패딩 앞에서 갈등하던 푸른이 시절에 대한 연민이기도 했다.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연민만큼 강한 감정도 없으니까. 콘서트장에서 앞자리 사람이 일어나면 모두 일어나서 볼 수밖에 없듯이 분별없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모습은 아직도 경계한다. 정말 좋아서 좋은 건지, 남들이 좋아해서 좋은 건지.
사실 깊은 관계가 아니면 세간의 유행이 주로 대화 소재가 된다. 그때 한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난리였다. 공-사나 온-오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프로그램마다 '오징어 게임'이 오마주로 활용되는 파급력을 신나게 설명하는 선배 옆에서 나는 산통을 깨고 '오징어 게임' 로고가 비영리 마케팅까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폐해를 비판했다.
아까처럼 우리는 한동안 할 말이 없었다. 선배는 계속 창을 들이대고 나는 계속 방패를 내밀었던 대화는 허무하게 끝났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소신만 고집할 문제는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중간에 서 있는 이유는 주류의 언어로 비주류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비주류에 가깝지만, 설득은 다른 차원이니까. 우리의 목적은 흑이냐 백이냐 따지는 게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대화로 한결 알아가는 것이었다.
흑과 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넓힐 순 없을까 늘 고민한다. 그러기 위해 지나치게 주관만 펼치기보다 흐름을 감지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것도 필요하다. 나만의 대체 불가한 색깔을 유지하면서 어떤 이야기도 즐겁게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른 길을 걷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편하게 놀 수 있는 비무장지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흑과 백만 있는 세계가 아니라 흑과 백이 어우러지는 회색지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