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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우산 Jan 14. 2024

미국에서 흥정한다는 것 (3편: 우여곡절의 끝판)

(하루는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다. 그 잘 나가던 JL이 근무하는 딜러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다. (아니, 왜?) JL이 있는데 한 사람을 더 추가로 뽑는다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JL이 그만두었는지...? 암튼 일단 지원을 해 보았다. 나 말고도, 기존 한인 세일즈맨들도 여럿 지원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경력이 가장 짧은 내가 선택된 것은 정말로 기적이었다. 다른 딜러들에 비해서 한국일보에 광고비를 쥐꼬리만큼 내면서, 마치 황금 송아지라도 내주는냥 생색을 내는,  Bronx의 딜러는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다. (이것 놓으슈... 난 가야 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는 한이 있어도, 이 둘도 없는 기회를 놓치랴 싶어,  마음 단단히 먹고 야멸차게 뿌리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왜 이민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JL이 갑자기 그만두게 되었느냐였는데, General Manager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만했다. 어느 딜러라도 용서 못할 일이었지만, 그의 품격에 관한 사항이니, 굳이 여기서 그 얘기까진 꺼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지 나와 관련된 얘기만 해보자. 암튼, JL이 그동안 닦아놓은 그 탄탄대로 위에 이 풋내기가 그냥 올라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실상 딜러에 들어가서 내막을 들여다보니, 소문처럼 JL이 그 딜러에서 Top Salesman은 아니었다. Manager 게시판에는 세일즈맨들의 실적표가 걸려있는데, 히스패닉 세일즈맨이 줄곳 Top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일등을 하는 사람에게 시상을 하는 모양이다. 상품은 부부 동반 버뮤다 호화 여행 티켓이었다. 비행기 편에, 그리고 양쪽 해변을 끼고 있는 최고급 호텔, 매 끼니마다 다른 고급 식당, 게다가 쇼 관람까지... 사실 난, 애당초 별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내가 오기 벌써 전부터 시작된 레이스에 나중에 참가한들, 게다가 난, 초보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은 한인들이 플러싱, 그리고 나중에는 뉴저지 등으로 주거지를 옮겨갔지만, 그 당시 이민 초기에는 많은 한인들, 게다가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은 우드사이드에 집을 장만하고, 인근의 한인 교회도 많은 신도를 갖고 있을 때였다. 거기에다 이 딜러에서는 한국 신문에 광고도 제일 많이 한다. 당연히 한인 고객들이 줄을 이었다. 원래는 오는 고객마다 인종에 상관없이 세일즈 맨들이 순번으로 맞이하게 되어 있는데, 그래서 난, 미국인 고객들도 차례로 맞았는데, 한인들은 기다리는 한이 있어도, 굳이 한인 세일즈맨인 나만 찾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진 풍경이, 다른 세일즈맨들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며, 빈둥빈둥 놀고 있는데, 나 혼자만 여러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바빴다. 자연히 그 여행 상품 경주의 판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늦게 출발했던 내가, 드디어 그 결승점에서, 가까스로 일등을 함으로써, 버뮤다 호화 여행을 갓 이민 온 우리 부부가 가게 되었다. 미국은 참으로 좋은 나라이고, 이민오길 잘했다 싶었다. 게다가 마눌님한테 칭찬받아보긴 또 난생 첨?이다. 한 동료 세일즈맨은 내가 여행 다녀온 나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는 샘이 났던지 자기 돈으로 버뮤다를 여행 갔다가 자동차 사고가 나고 말았다. 버뮤다는 영국령이어서, 오토바이 운전 시 좌측 통행해야 하는데, 그 친구는 달리면서 잠시 착각하는 바람에 사고가 난 것이다. 또 다른 여행 상품을 내건 경주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캐리비안의 바하마로 가는 부부동반 호화 관광 티켓이었다. 물론 그것 역시 큰 차이로 내 차지가 되었다. 그런데 맨날 그렇게 여행만 다닐 것도 아닌 듯하여, 현금으로 달라고 해서, 그 돈으로 집 구입하는데, 다운페이로 사용하면서 집 장만하고 그렇게 뉴욕에 정착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당연히 모두 내 차례가 될 것 같은지라, 딜러 측에서는 아예 그런 경합을 걷어치웠다. 계속 나는 밥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혼자 바빴다. 그래서, 딜러 측에 새로운 제안을 하나 해보았다.


나를 보좌해 줄 비서를 두자고 했다. 그 비서의 임금은 딜러 측에서 절반을 대고 나머지 반은 내가 내기로... 딜러 측에선 반대 안 하고 흔퀘히 승낙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에 나 혼자 40여 대를 팔았다. 딜러가 유지되려면 월 40여 대만 팔면 된다. 어떤 경우(연휴 기간 직전)에는 한 주에 20여 대를 출고도 했다. 20여 대를 출고하려면, 계약 건수만 30여 대가 되어야 한다. 한 주에 30여 대 계약하고 20여 대 출고하려면, Helper 없이 나 혼자서는 정말 무리인 것이다.


얼마 전 뉴저지에서 발행되는 월간 잡지의 표지 모델로 어느 유명 한인 정치가의 부인이 실렸다. 그 사모님도 그때 나를 도와주었던 비서였는데 그 당시에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하고 무척 똑똑한 학생이었다. 세월이 지나 이제는 그녀도 이민 사회에서 성공한 것을 보니, 나도 뿌듯했다. 비서가 도와주는 일은, 나를 찾는 손님이 오면 먼저 비서가 맞으며, 그 손님의 신상을 기록해 놓고, 원하는 자동차를 찾아 놓는다. 그리고 나에게 넘겨주면, 나는 손님과 가격 흥정을 하고, 흥정이 끝나면 다시 비서한테 넘겨주고, 비서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난 그 위에 Sign을 하고, 그리곤 비서는 곧 Loan 신청서를 손님과 마주 앉아 작성을 한다. 만일 영어가 부족한 손님은 Business Manager 만날 때, 비서가 들어가서 통역을 해드렸다. 차량 출고 시에는, 내가 먼저 손님과 마주 앉아 나머지 잔금도 받고, 모든 서류에 Sign 받고, 비서에게 손님을 넘겨드리면, 비서가 차량에 대해 설명하고, 차 번호판 붙여주고, 열쇠를 넘겨주었다. 그래야 그 많은 차량을 소화할 수가 있었다. 암튼, 그렇게 바쁘게 난리 부르스를 추는데, 사탄 마귀는 내가 꼭 그렇게 잘 나가는 꼴을 못 보는 모양이다.


나 이전에 쫓겨났던 (내가 쫓아낸 것이 아니라...) 그 JL이 내가 잘 나가는 것을 보곤 배가 아팠을 것이다. 그가 복귀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Salesman은 별 문제만 없으면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는데 반해, Manager들은 수명이 짧다. 딜러 측에 고용될 때, 실적에 대해 약속? 같은 것을 하기 마련인데, 딜러 측으로 보아서 항상 만족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해서 수시로 General Manager와 Sales Manager, 그리고 Business Manager들은 바뀐다. 그러다 보니, JL을 해고시켰던 당시의 Manager들이 아닌, 여러 번 바뀌고 난 다음의 다른 Manager들이 자리하고 있으니 그들은 JL이 왜 잘렸는지 그 사유를 알 턱이 없다. 게다가...

나도 자동차를 많이 팔다 보면, 딜러 측으로 보아서 늘 흡족스러운 것만은 아닐 터, 경우에 따라서는 손님 편에 서며, Manager들과 특히 Business Manager와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한인 사회에서 자동차 광고도 제일 많이 하고, 차를 많이 팔다 보니, 한인 대형 교회의 목사님들이 대부분 나한테 와서 차를 구매하였다. 굳이 목사님이라서가 아니라, 그분들의 말 한마디가 한인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매우 큰 만큼, 나는 좋은 가격에, 그리고 좋은 이자로, 또 여타 Service를 제공하길 원했다. 게다가 그런 목사님이 오실 때는 항상 기라성 같은 장로님들도 함께 따라오는지라, 더욱 그렇다. 그런데...


Manager들은 전혀 아니다. 언제 딜러 측으로부터 잘릴지도 모르는 처지이다 보니, 지금 당장의 거래와 그로부터 나오는 수입이 중요한 것이지, 훗날을 위해 오늘을 희생할 생각은 없는 것이다. 당연히 나와는 부딪치기 마련인데, 그 틈을 JL이 비집고 들어왔다. Salesman 중에 고참격인 독일계 F가 있었는데, 그도 나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을까? 그는 나보담 JL을 좋아했는지, 암튼 내가 쉬는 날 JL과 F는 Manager들을 설득해 가며, 복귀를 시도했다. 그때까지는 나와 JL은 한 번도 직접 대면을 한 적도 없었고, 피차 미디어를 통해서나 서로를 알고 있었던 관계였었는데, 암튼 그런 JL과 자연히 철천지 원수지간이 되어갔다.


나는 처음에는 비서만 두고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Asian Market을 따로 만들어서 내가 Manager로서 중국인과 한국인의 Salesman을 뽑아서 교육을 시켰다. 그 와중에 내가 키운 J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영국에 유학을 갔다가 도중에 포기하고, 뉴욕에 와서 Job을 구한던 중, 나에게 발탁되어서, 내가 세일즈맨으로 교육시켜서 키워낸 인물이었다. 처음 그가 계약을 했던 건은, 어느 한인 목사님과의 계약이었는데, 차를 직접 보며 고르겠다고 먼 곳에 떨어진 자동차 차고에까지 가서 차를 골랐다며, 계약을 하고자 했다. 그래서 손님이랑 같이 차를 직접 보고 계약한다니, 나도 믿거니 하고 Sign을 해주었다. 그런데....


출고하는 날, 자동차는 2 Door차로 완전무결하게 준비가 다 되어있는데.... 목사님은 '왜 2 Door냐?'는 것이다. (네?) 4 Door를 원하셨다는 것이다. (Oh My God!) 그 초짜인 J가 잘못 착각을 한 것이다. 큰 문제다. J도 문제고, Manager 인 나도 큰 문제가 될 판이다. 그 곤란한 점을 헤아리신 목사님께서는 감사하게도 원치도 않으시는 2 Door짜리 자동차를 그냥 가져가셨다. 그랬던 그가 업무를 좀 알아가기 시작하더니, 금방 나를 배신하고는, 인근의 다른 딜러로 옮겨갔다. 한번 배신하는 사람은 또 배신한다더니만... 또 조금 후에는 또 다른 딜러에 가서 나처럼 Asian Market를 차리고 Manager 노릇을 하면서, 나를 밟아야 자기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나에 대한 헛소문을 퍼트리며 음해하는 것이다. 그는 나에겐 계속 칼끝을 겨누는 점에서 JL과 궁합이 잘 맞았던 모양이다. 그런 상황의 절정은...


당시 우리 한인 사회에서는 자동차를 팔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던지, 한인 Salesman들이 많이 생겼고, 따라서 여러 딜러들이 한인 신문에 광고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경쟁은 심해지고, 따라서 신문사들은 광고비를 올리며 배짱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에 협회를 만들어 대처를 해보자는 의견이 있어 내가 주동이 되어 협회를 만들었다. 신문지상을 통해 이민 사회에서 가끔 어떤 협회는 협회 내에서 자리다툼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기사를 보아왔다. 내가 협회 회장으로 있을 때, JL과 J는 여느 한인 협회처럼 작당을 하고선 분란을 일으켰다. 당시 나와 집행진은 우연히 모두 기독교 신자라서 우리는 회의 시작 전에 기도로 시작했고, 그중의 한 명은 러시아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떠나기도 했었다. 그런데, JL과 J는 노래방과 술집을 전전하면서 세를 모으며 나를 몰아낼 궁리를 했었던 모양이다. 


암튼 그래서 JL과 J의 당치도 않은 거짓말, 악담과 루머를 동원한 공격에, 나는 다투지 않고 회장 자리에서 그냥 물러나주었다. 나라를 구하는 일도 아니고, 그런 자들과 싸워봤자 남보기에 볼썽 사나운 꼴만 만들고, 나도 똑같은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물러나고 나니, JL이 자기가 회장을 맡겠다고 나섰다. 결국엔 신문 기자들 불러 모아 놓고 총회를 하면서 다른 회원과 싸움이 벌어져 협회는 완전히 공중분해 되고 말았다. 암튼 그렇게 JL과 J는 집요하게 딜러에서건, 협회에서건, 자동차 업계에서 내가 가는 곳마다 음해하고, 훼방하며 못살게 굴었다. 


GM에서는 자동차 성능에 문제가 발생(특히 후륜구동에서 전륜구동으로 바뀌며...)하며, 올즈모빌의 판매가 전과 같지 않게 부진해지면서 딜러 Owner의 Dealership 자체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혼란한 와중에 집요하게 복귀하려는 JL과 나는 밀려나갔다가 다시 복귀하며 엎치락뒤치락하기까지 했다. 웬수가 정말로 따로 없다. JL과, 그리고 또 J와의 그런 이전투구의 상황에서 나랑 같이 일하자고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었다. Potamkin Leasing의 H와 m이었다. 그 둘은 모두 1.5세대이고 LA에서 왔다. 


당시 자동차 시장은, GM의 판매가 부진해지며, 반면에 일제차가 많이 팔리기 시작했고, 한편으론 Leasing 회사들이 뜨기 시작했다. Leasing회사에서는 꼭 Leasing만 하는 것은 아니고, 사실은 판매도 한다. Dealership이 없어도 정식 딜러에서 차를 들여와 Leasing과 판매를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것이 딜러로부터는 Wholesale 가격으로 들여오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여러 Dealership을 갖고 있는, Potamkin이나 Difeo는 자기네의 자동차를 가지고 자체의 Leasing 회사에서 영업하는 것이니, 가격 경쟁면에서도 전혀 어려움이 없고, 게다가 여러 차종을 함께 취급할 수 있으니 더 유리한 측면도 있다.


LA에서 한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딜러(GM의 Pontiac)를 운영했던 사람은 M이었다. 그 M이 딜러를 운영할 때 직원으로 데리고 있었던 H가 먼저 LA를 떠나 뉴욕으로 왔다. 그는 LA에 있을 때, 한국의 유명 여배우랑 결혼해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고, Sales에 관한 한 내가 보기엔 유능한 사람이다. 그리곤 Potamkin에다 Asian Market을 만들고 한인 사회 최초로 자동차 광고를  전면 광고로, 그것도 아주 많이 엄청나게 하며 한인과 중국인 고객을 빨아드렸다. M이 LA에서 딜러를 잃어버리게 되는 상황이 생기자, H가 뉴욕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곤 그들은 뉴욕 자동차 업계의 간판스타 같은 사람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H와 M, 그리고 나, 이렇게 삼두마차로 Potamkin의 Asian Market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H와 M은 뉴욕으로 옮겨오면서 서로의 상하 관계가 뒤바뀌게 된 것이다 암튼, 우리 셋은 주간 신문에 표지 모델로도 나오며  뉴욕의 자동차 업계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버렸다. 따라서 나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는데...


H가 좀 과하게 욕심을 냈다. Potamkin의 여러 딜러들은 모두 맨해튼 11번가의 서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동쪽 York Ave에 새로 매장을 차리려고 했다. 퀸즈가 가깝기 때문에 한인과 중국인들의 접근성을 생각해서였다. 근데, 그곳은 내가 집사람을 통해 Laundromat을 운영하고 있어서 잘 아는 지역인데, 그곳은 결코 마땅한 장소가 아니다. 내가 극구 만류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H는 특유의 뚝심으로 M만 데리고 기어이 매장 문을 열었다. 나는 혼자 남아, 절반의 Salesman들을 데리고 원래의 서쪽 매장을 책임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결국에는 동쪽 매장에서는 죽을 쒔다. 할 수 없이 H와 M은 철수해서 다시 서쪽 매장으로 돌아오며, 전에 없이 내가 불편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독립을 해서 나갔다. Potamkin보다 Dealership이 더 많은, 제일 큰 딜러 Group인 Difeo에 Asian Market을 만들었다. 그런데... Group은 크고 거의 모든 차종의 딜러를 갖고 있지만, 문제는 한인과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과 멀어서 기대만큼 큰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광고비 지출 문제로 딜러 측과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갑자기 Potamkin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곳에 있었던 H와 M이 갑자기 떠나게 되었단다.  (엉? 왜?) 암튼 그 둘이 급작스레 떠나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데리고 있던 Salesman들까지도 모두 떠난단다. Potamkin에서는 나더러 와서 General Manager 자리를 맡아 달란다. 그러면서 내가 데리고 있는 Salesman들도 모두 함께 오길 바랐다. Potamkin의 General Manager라는 자리는 내가 딜러가 아니더라도 딜러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그런 자리다. 당연히 나는 흔퀘히 수락하고 Salesman들 불러서 회의를 하며 발표했다. Difeo 측에도 통보했고, 짐도 쌌다. 내일이면. 우리 팀 모두 Potamkin으로 출근하게 되어있었는데...


Potamkin에서 연락이 왔다. 그간의 많은 얘기를 다 해 줄 수는 없겠고, 암튼 없던 일로 하잔다. (엉!) 난 이미 Difeo 본사에 통보도 해놓았으니, 그렇다고 내가 그냥 없던 일로 하고 다시 주저앉을 수도 없는 처지다. Potamkin의 General Manager 자리 아니면 더 이상 더 나은 곳, 더 높은 자리로 갈 데도 없는 상황이다. (Potamkin으로서는 라이벌 관계에 있는 Difeo의 Asian Market을 한 번에 날려버린 작업을 한 것일까?) 암튼 그래서...


그 일로 난, 아예 자동차 업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J를 비롯해서, 그리고 내가 Potamkin에서 데리고 있었던 DK가 연합해서 내가 들어가기로 되어있던 바로 그 자리를 꿰찬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내막이야 내가 다 어찌 알겠는가만은, 암튼 내가 호랑이 새끼들을 키웠나 보다. 분명한 것은 J의 그동안의 행적으로 보아 그가 또 내 뒤에서 음해하고 공작을 벌였으리라 짐작만 갔다. 암튼 그래서, 


나는 이민 오면서부터 13년간 몸 담았던, 자동차 업계를 떠나며, 아니, 아예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JL과 J에 대해서는 아예 잊어버리자고 작정을 했고, 또 그렇게 완전히 잊고 살았다. 그런데, 그 JL이 갑자기 우리 교회에, 그것도 내 장로 장립식에 나타났으니,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이다. 사실은 창피한 얘기지만, 장로가 그래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저 자만큼은 제발 우리 교회에 안 나와주었으면...' 했다. 게다가 나는 당시 교회에서 안내와 새 신자 영접에 관한 사역을 맡고 있었으니, 불신자(JL은 분명 불신자일 것이다)가 온다면 버선발로 달려가서 쌍수로 환영해야 하는 것이거늘, 누구한테도 얘기 못하고 그저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도대체 우리 교회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가를 조용히? 알아보았다. K 집사가 안수집사로 임직(장로 장립할 때, 안수집사의 임직도 함께 거행)하는데 축하해 주기 위해서 왔단다. 교인의 특성상, 믿지 않는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당연할진대, K 집사도 불신자인 JL를 전도하려고 벼르던 중에 교회 행사를 빌미로 데리고 온 모양이다. 게다가, 골프를 좋아하시는 우리 목사님(지금은 원로 목사님이 되셨지만)과는 JL은 대학 선후배로 함께 골프도 자주 친다니, 그야말로 우리 교회로 출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정말 큰일 아닌가? '저 JL이 만일 우리 교회에 들어오면 또 어떡하지?' 하며 혼자 걱정을 하고 있었다. 장립식 후, 약 2주쯤 지났을까? 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냥 지나가는 말로, K집사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요즘 JL 잘 지내냐?'라고... 그랬더니만, 깜짝 놀랄 말을 해주는 것 아닌가?


그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엉? 아니, 갑자기 왜? 건강해 보였는데?' 수영장에서 수영하다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을 했고,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장례까지 치렀단다. (Oh my God!) 그 놀라운 이야기를 교회 예배 시간에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라는 말씀과 그리고 불신자에 대한 전도와, 나의 회개에 관한 이야기를 간증으로(여기선 간증의 내용은 생략키로 하자) 했다. 마침 교회의 Y 집사(Paragon에서 Asian Market Manager로 있는)가 내 간증을 듣고는, 더 기절 초풍할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J는 벌써 전에 딜러를 나와서 그동안에는 퀸즈에다 홀로 Leasing 사무실을 차리고 운영을 해왔단다. 그런데, 날짜도 아마 그때쯤(JL의 사망 시기)이란다. 집에 안 들아와서, 그 다음날 아침에 찾아보니 (심장마비로) 사무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단다. Y 집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난 머릿속이 하얘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 이어서 미국에서 흥정한다는 것 (4편: 문제는 심리야!)를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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