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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우산 Jan 10. 2024

미국에서 흥정한다는 것 (2편: 판매의 초입)

(신출내기의 자리 잡기)

미국에 이민 오면서 나는 대학의 전공이었고, 한국에서 해 왔던 일의 연장으로 무역업에 종사하고 싶었지만, 한국과 다르게 미국에서는 무역이라는 것이 단지 국내 영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봉급도 또한 기대만큼 그리 높지도 않았다. 텔레비전을 보니, 한국과 다르게 (지금은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는 한국에 비해 유독 자동차 광고가 많았다. 그래서 자동차 업계에 한번 뛰어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자동차 업계에 뛰어들게 된 또 다른 계기가 있었다.


교회에서 장로 장립식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교회로서도 큰 행사다. 축하해 주기 위해 친지나 지인들도 많이 참석한다. 나의 장로 장립식에 그가 찾아왔다. 그를 보는 순간 난, Frozen 되고 말았다. 가슴이 마구 쿵쾅거렸다. (저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내 친구들도 나를 축하해 주기 위해 왔었지만, 내 머릿속엔 온통 그에 대해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도 나를 보는 순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선, 시무 장로가 되면서 나 혼자 고민에 빠졌다. 누구한테도 이야기할 수도 없었고...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공항에 누가 데리러 나오느냐에 따라서 직업이 결정된다고 한다. 즉, 그 사회를 전혀 모르고,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미 정착해서 살고 있으면서 Pickup 나온 사람의 직업을 어쩔 수 없이 따라가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처남이, 그리고 뉴욕에서는 동생이 공항으로 나와주었는데, 컴퓨터 관련 공부해서 미국 컴퓨터 회사에 다니고 있거나, 또는 박사학위 과정에 있었으니, 내 진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미국 이민오는 비행기 안에서 누구를 만나긴 만났었다. 그가 내 미국 이민 정착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렇다고 비행기 안에서 그 사람을 내가 직접 만난 것은 아니고, 책을 통해서였다. 김포 공항(당시는 그랬었다)에서 비행기 탑승 전에, 비행기 안에서 읽을 책이나 구입할까 하고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미국 이민 가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주는 책자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비행기 타고 오면서 읽어보니, 이민자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 이민 와서 성공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특히 내 관심을 끌었다. 한국과는 다른 사회 분위기고, 그래서 처음 부딪치는 일이겠지만, 어차피 이민 가는 마당이니, 새로운 일도 도전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읽어 내려갔다. 게 중에는, 큰 트레일러를 끌고 대륙 횡단을 하면 금세 자기 트레일러 살 돈도 생긴다는 이야기며, 여러 자영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 몸으로는 힘을 많이 쓰는 일은 어려울 것 같고, 또 빈손으로 온 처지 인지라, 자영업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나도 이 정도면 한번 해볼 만하겠단 것이 내 눈길을 끌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 JL에 관한 것인데, 말하자면 그는 김태희 같은 사람이었다. 김태희가 다녔던 대학, 그것도 그는 상대에 다니며 대학 시절, 영화배우 그것도 주인공으로 (그 영화는 크게 성공하진 못 했지만) 발탁되어, 한 때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졸업 후, 은행에 다니다가 미국에 이민 와서 자동차 세일즈 맨으로 크게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지역도 뉴욕이란다. 


뉴욕에 와서 보니 그는 과연 성공한 사람으로 보였다. 중앙일보의 미주판 월간 잡지에 실린 그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장의 화려한 칼러 사진과 함께 실렸다. 영화의 주연 배우로 발탁될 정도였으니, 얼마나 잘 생겼겠는가. 일간 신문을 보니, 한국일보와 중앙일보에 그것도 일주일에 세 번씩 앞면에 큰 사진과 함께 광고에 나온다. 부럽기는 하지만, 난 바라볼 수도 없는 별과 같은 존재였다. 


암튼 미국 신문에 자동차 딜러들 마다 사람을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해 보았다. 그런데 한 군데도 연락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비행기에 갓 내린 초기 이민자를 누가 뽑아주겠는가? 게다가 난, (내 학력과 경력 정도면, 적어도 Manager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Manager로만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경험이 하나도 없는 사람을? 게다가 Manager로? 그것은 어림 반품어치도 없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중에는 낮추어서, 세일즈맨으로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인 신문을 보니, 한인들은 올즈모빌(GM)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퀸즈의 플러싱, 그 JL이 있는 우드사이드, 그리고 브루클린, 뉴저지 등 이미 여러 곳의 올즈모빌 딜러마다 한인 세일즈맨을 내세워 광고를 하고 있었다.  마침 한인 세일즈맨이 없는 브롱스에 있는 한 올즈모빌 딜러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구인광고가 미국 신문에 나왔다. 그래서 지원을 했는데도 연락이 없더니만, 한참 지나서야, 연락이 왔다. 아마, 그 딜러에서는 날 뽑을지 말지를 두고 오래 고심한 모양이다. 다른 사람은 나보다 훨씬 벌써 전부터 출근을 했었단다. 


나의 출근 첫날, 드디어 나에게도 손님이 배당되었다. 갓 이민 온 내가 미국 손님에게 감히 차를 팔겠다고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며, 손님이 나에게 차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왔다. 그렇지만, 내가 뭐 아는 것이 있어야지... 고작 카탈로그 한번 읽어본 것밖엔 없는 얄팍한 실력인지라, 솔직히 그 손님에게 털어놓았다. 난, 잘 모른다고... 내가 이제 막 미국에 도착해서의 첫 직장이고 당신이 나의 첫 손님이라고... 그랬더니, 그 손님이 나에게 질문한 내용을 거꾸로 나에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곤 계약을 하잔다. 그 손님이 매우 솔직했던 나를 신뢰한 모양이다. 딜러 측에선 저런 초짜를 계속 써야 할지 말 지를 고심하는 눈치였는데, 깜짝 놀라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얼마 후에 또 나에게 배당된, 다른 손님은 흑인 노인이었다. 그런데 이야기하다 보니, 목사님이시란다. 그래서 그런지 우린 서로 이야기가 통했다. 흑인의 특유한 발음만 빼고는... Option이며 색갈이며, 차를 고르고서는, 차 값이 얼마냐고 물어오셨다. 그래서 일단 차에 붙어있는 윈도 스티커 프라이스인, MSRP를 이야기해 놓고, 머릿속으론 (얼마를 더 깎아드려야 차를 팔 수 있을꼬?) 하며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는데, 그 목사님이, 갑자기 '그럼 계약합시다'라고 하는 것 아닌가? 난 화들짝 놀랐다. 


(아니, 이 목사님,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신다. 아~ 목사님, 좀 더 깎아달라고 그러셔야죠...)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론 그 말이 안 나왔다. 나도 크리스천으로서 목사님에게는 특별히 싸게 드리고 싶었지만, 또 한편으론 이 딜러에 내가 제대로 정착하느냐 못하느냐 절체절명의 내 처지와, 돈도 필요한 나에게 들어 올 수입에 대한 기대가 교차하며 나 혼자 착잡했다. 


한인 이민 초기에 대부분의 한인들은, 세일즈맨을 딜러라고 착각했었다. 그래서 세일즈맨이 모든 것을 다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원래 딜러란, 판매대리점인 회사나 사주를 지칭한다. 세일즈 맨은 사실 손님 앞에 내세운 마리오넷(꼭두각시)에 불과할 뿐이다. 뒤에선 그 마리오넷의 줄을 쥐고 움직이는 Manager가 항상 버티고 있다. 해서, 손님이 어떤 가격을 제시하든, 즉시 Manager에게 보고하게 되어있다. 안타깝지만, 그 목사님은 그 교회의 교인들이 어렵게 낸 헌금으로 마련한 돈으로 차를 구입하는 것일 텐데... 뒤에 있는 Manager는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고, 좋아 죽는다. 암튼 초창기 이민 생활을 그렇게 적응을 해 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큰일이 터졌다. 


내가 일 시작할 무렵에는 보통 이자율이 15%~18% 정도였었고, 크레딧이 나쁜 사람은 20%도 훌쩍 넘는 그런 때였었다. GM에서 운영하는 금융기관인 GMAC에서 갑자기 6.9%라는 획기적인 이자율을 광고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비자들이 '웬일이여?...' 하면서 너도 나도 차를 사러 몰려나오는 바람에 자동차가 갑자기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 점점 재고는 줄고, 그러다 보니, 위에선 매일 새로운 지시가 떨어졌다. 최소한 이 정도의 수익은 남기라는 것이다. 얼마 후에는 MSRP 아니면 팔지도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손님이 꼭 원하는 차량이라면, 드디어 프리미엄까지도 얹어서까지 팔게 되었다. 그러니, 내가 얼마 전에 MSRP에 몇천 불의 프리미엄을 붙여서 샀다고 해서 배 아파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초기 이민자인 나에게는 수입이 제법 생기기 시작했다. 


그럴 즈음에 고교와 대학(같은 학과) 모두 선배이신 L 선배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LA로 와서 자기 일을 도와달라는 것이다. LA에서 뉴욕 올 때는 꼭 뉴욕에 정착하러 온 것은 아니었고, 만일 자리를 못 잡으면,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리라고 작정하고 왔기 때문이다. 선배님과 임금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당시 벌어들이는 수입을 이야기했더니 선배님이 깜짝 놀라셨다. 미국에는 초기 이민자에겐 그만한 일자리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냥 그 일 계속하라 신다. 


그렇게 이민 초기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무렵, 하루는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 3편 (정점, 그리고 갈등)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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