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모든 물건은 정찰제로 구매한다. 그런데 그런 정찰제가 통하지 않는 것이 딱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주택 구입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동차 구입이다. 주택이야 매도인인 집주인 마음대로이니까 그렇다 치면, 자동차야말로 미국에서 유일하게 흥정해서 사는 물품인 것이다. 사실 정찰 가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MSRP (Manufacturer's Suggested Retail Price) 또는 윈도 스티커 프라이스라고 자동차 생산회사 측에서 이 값에 매매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는 가격인데,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같은 차종 가지고 대리점끼리도 머리 터지게 싸우고 또 물론 다른 차종과도 경쟁해야 하므로, 자동차 매매에는 많은 변수와 우여곡절이 생긴다. 자동차 매매에 관한 한 나도 전문가?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나도 정작 내 차를 구입할 때는 사실 골치가 지끈지끈 아프다. 판매하는 쪽에서야 한 푼이라도 더 올려서 팔고 싶은 것이고, 고객 입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더 싸게 사고 싶기에, 치열한 싱갱이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서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자동차 구매이기도 하다.
그 자동차 구매 때문에 자동차 딜러에 들렸다. 꼭 구매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일단 자동차 재고가 있는지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들어 내가 사려고 하는 Toyota의 Mini Van인 Sienna가 인기 차종이라서 자동차 재고가 없단다. 내가 조만간 은퇴하게 되면, 그동안 못했던, 여행을 여기저기 많이 다니고 싶었다. Sienna는 경우에 따라 차박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라서 꼭 이 차를 사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RV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집사람이 운전하기에는 너무 커서, 맨날 나 혼자만 운전해야 하니까 피곤할 것이다. 가끔은 마나님도 운전시켜 먹으려면, Sienna가 딱 제격이다. 재고가 없는 이유는, 컴퓨터 집 같은 부품이 부족해서 차량 생산을 많이 못 한단다. 그래서 벌써 전부터 이 딜러에도 여러 번 전화해 보았지만, 전혀 답신도 안 해 주어서, 재고 여부만 직접 알아보려고 들렸다.
어느 특정 세일즈맨과 약속하고 온 것도 아니고 해서 쇼룸에 들어가서 둘러보는데, 아무도 나에게 접근을 안 해온다? 여기도 배짱 장사를 하려는가 싶었다. 예전하고는 전혀 딴판의 풍경이다. 예전 같았으면 쇼룸에 들어서는 순간, 득달같이 다가오곤 했었는데... 그래서 둘러보다가, 한국 사람 같아 보이는 직원한테, 내가 먼저 말을 걸어 보았다. 그래서, 상담이 시작되었는데, 그 세일즈맨과 이야기가 잘 되어서, 계약까지 가게 되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단계에서 내 이름을 알려주었다. 영어 이름으로... 그랬더니...?
나더러 혹시 '최윤수 씨'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나 그리고 나랑 같이 갔었던 우리 식구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나를 아세요? 어떻게 아세요?' (난 이 세일즈맨을 전에 만난 적도 없는데?... 그렇다고 같은 교회 교인도 아니고,... 혹시 나의 전직 때문에...?) 그는, 나를 신문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신문?)
그래... 예전엔 내가 신문엔 많이 나오긴 했었다. 직업상, 주요 일간 신문에는 일주일에 세 번씩이나 그것도 맨 앞면에 얼굴도 크게 그렇게 실렸다. 옛날 이민 초기엔 대개 그렇게들 광고했댔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 매스컴도 타게 되었다. 때론 신문 기사에도 나오고, 주간지 표지에도 실리고, 라디오, 그리고 TV까지도 나갔다. 미국 신문에는 한 번 광고하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 데 비해, 한인 신문은 아주 저렴한 편이다. 회사 측에선, 얼마 안 되는 비용으로 많은 한인 고객을 유치할 수 있었으니, 가성비?가 아주 좋은 것이다. 그 덕에 내 얼굴이 많이 실렸었다. 뉴욕의 광고는 먼 지역까지도 가는지, 언젠가는 소식도 끊겼던 친구나 지인이 미국의 어느 지방 도시에서, 또는 캐나다에서까지도 내 광고를 보고, 연락을 해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벌써 아주 옛날얘기인데...? 도대체 나를 어떻게 알아보는 것일까...?
그는 내가 요즘 글을 써서 올리는 지역 신문인 버겐 뉴스에서 보았단다. 내 글에 조그맣게 사진도 함께 올리는데, 어떻게 그렇게 용케도 나를 알아보았다. 그러면서 내가 쓴 글을 읽기 위해 버겐 뉴스를 찾는다는 것이다. 내가 신문에 올리는 글에 대한 댓글은 확인할 길은 없다. 단지 페북이나 네이버 같은 SNS에 올린 것에 대한 댓글만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내 글을 일부러 찾아서 읽어준다는 분을 만나니 그렇게 고맙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Off Line에서 열렬 독자를 직접 만난 것이다. 암튼 그래서 그랬을까? 끌고 당기기도 별로 없이 그냥 수월하게 계약서를 썼다.
일단은 그렇게 쉽게 계약하게는 되었는데, 사실 나로서는 난생처음으로 제일 비싼 가격으로 자동차를 구입한 꼴이 되었다. MSRP에다 몇천 불의 프리미엄을 더 주고 계약했지만, 왠지 기분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가격 같은 숫자가 아니라 심리적인 것이 더 중해서 그랬을까? 그렇다고 내가 꼭 나의 독자분을 만나서가 아니라, 사실은 숫자도 다소 영향은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계약 이전에도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 세일즈 하시는 양반, 이야기하기를 무척 좋아하신다. 이야기하는 도중에, 자기 신상에 관해, 그러니까 한국인으로 미국 자동차 딜러에서 근무하면서 느끼는 개인적인 심경에 관해서까지 이야기가 발전되었다. 특히나 그는 바로 건너편에 있는 LG에서 근무하다가 이 딜러에서 자동차 세일즈를 하게 되었단다. 같은 한국인으로 비슷한 인생 경로를 겪은 나로서는 동병상련을 느꼈다. 나도 예전엔 종합 무역상사에서 근무하다가 미국으로 이민 와서 미국 회사에서 직장 생활하며 내가 느꼈던 바로 똑같은 그런 심경을 잘 이야기해 주는 듯해서였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정작 더 깊은 측면에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던 것에 대해서는 내가 시치미를 떼고 표를 안 냈다. 나이 탓일까? 예전처럼 안답시고 나불대거나 촐랑거림 없이 그냥 빙그레 웃어만 주었다.
암튼 이야기가 잘 되어서, 지금은 재고가 없지만, 몇 달 뒤에 도착 예정인 차를 어느 정도의 수익을 더 얹어준다면, 자동차를 잡아줄 수 있겠다는 말이 나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도 큰 욕심 안 내고 약간의 흥정 끝에 금방 계약했다. 계약 금액은? 나로서는 최대한 싸다고 생각하는 선과, 차가 없어서 못 파는 차를, 놓치지는 않을 정도의 높은 가격이 만나는 교차점으로 되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자동차 사면서 MSRP에서 깎기는커녕 처음으로 MSRP에다 프리미엄까지 얹어서 사는 것이 되었지만, 자동차가 없다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이번 계약이 처음은 아니다. 제일 먼저는 내가 퀸즈에 있는 딜러에 들려보았었다. 그곳은 또 내가 한 때 일을 했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직원들은 친절하지도, 팔겠다는 의지도 없어 보였다. 살 테면 프리미엄 주고 사든가, 말 테면 말라는 식이었다. 이 후배들은 나를 모를 것이다. 예전에 General Manager로 있었던 모로코 사람인 사장의 아들만 빼고는, 아는 직원이라곤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은 그 아들이 사장으로 되어있었다. 한국인은 안 보이고, 주로 중국인, 필리핀, 히스패닉 직원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마침 재고가 한 대가 있긴 있었다. 그런데... 헉!
만 달러의 프리미엄을 더 달란다. 돈도 돈이지만, 직원들의 태도가 사뭇 볼썽사납다. 아무리 자동차의 재고가 없어도 그렇지, 저렇게 손님을 대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오만하게 대한다. 그래서, 암튼 하도 어이가 없어서, 퀸즈의 또 다른 딜러로 가 보았다.
신문을 통해 한번 본 적도 있는 한국 분이 있었다. 나이가 다소 있으신 듯하여 혹시 예전의 나를 알아볼 수도 있겠다 싶어, 내 전직을 처음부터 밝히고, Deal을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분은 나한테 윈도 스티거 프라이스인, MSRP에 주겠노라고 하시는 것이다. 금세 만 불을 번 기분이다. 그래서 두말 하지 않고 얼씨구나 하고 계약금을 걸고 계약했다. 물론 현재 갖고 있는 재고는 없지만, 내가 원하는 스펙으로 주문 생산하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추가 계약 조건으로는 계약금은 절대 돌려받지 못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래도 괜찮다. 만 불이 어디냐. 그러고는 몇 달이 되도록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퀸즈에 갈 일이 있어서, 가는 길에 주문했던 자동차가 언제 도착할는지 알아보려고 들렸는데... '헉!'
자동차는 아직 도착을 안 했다. 그런데?... 계약 조건을 변경하자는 것이다. 변경을? 왜? 프리미엄을 5천 불을 더 얹자는 것이다. 'Oh My God!' '그런 법이 어디 있소? 그럴 거면 계약은 왜 하셨수?' 세일즈맨인 자기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고, 딜러의 방침이란다. 그러면서, 계약금은 원래는 돌려주지 않는다는 조건이었지만, 원한다면 돌려주겠단다. 이럴 경우, 계약금을 돌려받는 것은 물론이겠지만, 계약 금액만큼의 위약금도 받아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 아닐까? 하지만. 난 그냥 계약금만 돌려받고 조용히 덮고 넘어가기로 했다. 딜러의 성격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쇼룸을 나오면서, '원래의 계약 조건대로 하겠다면, 나에게 다시 연락하라'라고 했지만, 아직도 연락이 없는 상황이니, 나로서는 새로운 다른 딜러를 찾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내가 이 업계에서 현업으로 일할 때, 나야 늘 딜러 측에서 제공해 주는 차를 타고 다녔고, 집안 식구들이 별도로 사용하는 개인 자동차는 최소한의 이익만을 얹어서 내가 나랑 계약서를 직접 작성하며 처리했었다. 이 업계를 떠난 후론, 동종업에 있는, 그러면서 나를 잘 아는 사람에게, 또는 그도 없으면, Manager와 직접 담판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완전히 상황이 다르다.
즉, 차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니, 가격 흥정의 환경 자체가 바뀌고 말았다. 암튼 그래서, 프리미엄을 더 내고서라도 계약하자는 말에 순순히 응했다. 이번에 구입하는 차량은 어쩌면 내 생애의 마지막 차량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 곧 은퇴도 할 터이니, 재정적인 부담감을 줄이려고, 다운페이도 많이 하면서 차를 뽑았다. 요즘 이자가 올라가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우리 집안에선 한 달 전에도 차 한 대를 뽑았는데 (그때도 내가 별로 참견 안 했는데도) 좋은 가격에, 이자율도 낮게 잘 받아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차를 가져가기 직전에 Business Manager 앞에서 서류에 Sign 하게 될 때, 이번에는 비싼 가격으로 사주는 것인 만큼 굳이 내가 Business Manager와 담판 안 하더라도 집사람과 딸내미가 들어가도 될 듯싶었다. 그런데, '헉!'
막판에 한 방 얻어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예상했던 이자율보다 훨씬 높은 이자율로 해 버린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Manager한테 아예 처음부터 까놓고 이야기를 시작했었을 것이다. 내가 주로 일했던 곳은, Paragon, Potamkin, 그리고 Difeo (Hudson)처럼 이름만 대면 금방 아는, 뉴욕, 뉴저지에서는 제일 큰 Dealer에서 근무했었다. 그것도 Asian Market의 Sales Manager나 General Sales Manager까지 했었기에, '우리 같은 선수끼리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끝내지!' 하며, 잘 마무리하곤 했었다. 만일 내가 원하는 대로 끌려오지 않는다면? 막판에 판을 확 뒤집어 버릴 수도 있다. 딜러 측으로서는 아예 못 팔고 마는 것보다, 수익을 줄여서 한 대라도 더 파는 것이 유익하니까. 그런데...
내가 만일 이 판을 엎는다면? 그렇지 않아도 자동차가 없어서, 내 뒤로도 많은 사람이 사겠다고 줄을 서 있는 상황인지라, 자칫 차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수도 있을 것이다. 계약금과 Down Pay 한 것이야 되찾을 수는 있겠지만, 그동안의 절차와 시간이 또 필요로 할 것이고... 장군 멍군하다가 잠시 한눈판 사이, 외통수에 걸리고 말았다. 그렇담....
어쩔 수 없다. 일단 그냥 차를 가져가고, 여유가 되는대로 자동차 Payment를 빨리 내면서, 이자에 대한 부담을 줄여나갈 수밖에 없다. 물론 처음에는 이자를 먼저 많이 내게 되는 금융의 특성상 실효성이 많이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만일 내가 내 거래 은행에서 직접 융자받아서, 딜러 측에는 전액을 지불하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딜러의 특성상, 차 팔며 돈도 벌지만, 이자율을 올리며 추가 수익을 내야만 하는 생태인바, 재고가 부족하다는 차량의 차례가 나에게 돌아올 확률은 그만큼 떨어질 것이다.
차를 인도받으며, 이 세일즈맨은 또 너무도 친절하게 여러 가지 설명을 잘해 준다. 옛날의 나보다 훨씬 잘하는 것 같다. 특히나 요즘 나오는 자동차는 옛날 차에 비해 마치 전자기기처럼, 셀폰이나 컴퓨터 같은 것을 잘 알아야 하는 그런 면도 많다. 그런 세세한 것까지 아주 친절하게 다 설명을 잘해주었다. 예전엔 나를 잘 아는 동종업에 있던 사람들에게 차를 살 때는, Key만 덜렁 던져주었다. '당신도 차를 많이 팔아보았으니, 내가 굳이 다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난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순진, 청승 떨며 얌전하게 굴었다. 그랬더니 자동차 구입에 관해 초짜인 줄 알고 그랬을까? 꼭 그래서만은 아닌 것 같고, 원래 품성이 그러신 것 같다. 암튼 이 세일즈 하시는 양반, 끝까지 친절하고 정성껏 설명을 잘해주었다. 이렇게만 하면, 분명 성공하실 것 같다. 게다가 자동차도 썩 마음에 드니, 그러면 됐다. 그런데....
이 새 차는 집사람이 자기 명의로 하잔다. 그러다 보니, 집에 여러 대의 차 중에, 제일 오래되고 헌 차만 달랑 내 차가 되었다. 우리 부모님 때는 안 그랬구먼, 시대가 변해서 그럴까? 요즘엔 다른 집에서도 모두 다들 그러고 사실까?
- 제2편(판매)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