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홍 Jul 06. 2020

단순함과 거리를 둔 삶

simple is best라고 하던데 제 삶은 어떻게 단순하게 만들죠?


그리고 좆된 건 말이죠. 제가 안다는 거예요.

그녀가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진짜 원하는 것, 점점 더 원하게 되는 것은 

바로 단순함임을 깨달을 거란 사실을요.

그리고 근육질 남자요. 이름은 뭐, 찰리고요.

성격은 점수로 치면 'B마이너스'정도고요.

그녀는 문화적으로 이성애 자니까  제 성격이 'A플러스'라도 상관없죠.

그 찰리라는 남자는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 넷플릭스 <필 굿>



드라마 <필 굿>의 주인공 메이 마틴은 스탠딩 코미디언이고 레즈비언이다. 이 드라마는 동성애 드라마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축축한 분위기나 뽀얀 화면, 청춘, 우울한 결말, 집안의 반대나 사회적 편견 같은 것을 묘사하기보단 그냥 가볍게 보기 좋은 로맨틱 코미디물에 가깝다.

이성애자 로맨틱 코미디 장르 영화로 생각해보면 <500일의 썸머>나 <어바웃 타임> 정도의 느낌일까. 그만큼 사랑에 빠지는 과정도 간략하고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도 코미디 느낌이 짙게 터치하며 지나간다. 가족의 반대로 헤어지거나 직장을 잃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거나 그런 장면도 없다. 정말로 코미디와 로맨틱에만 집중을 한 퀴어 드라마인 만큼 간만에 백 프로의 즐거움만 가지고 깔깔 웃으면서 아내와 함께 보았다.


가볍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수준이니 <필 굿>은 추천합니다. 아마 제가 이성애자 로코물을 볼 때 느끼는 이해는 좀 어렵지만 재미있네, 라는 감상을 비슷하게 느끼실지도요.



그렇지만 문득 메이 마틴의 저 대사, 코미디 무대에 올라 자학하듯 말한 더 대사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녀가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진짜 원하는 것은 바로 '단순함'임을 깨달을 거란 사실을요."


내 성격에 대해 잠깐 써보자면 나는 무척 단순한 사람이다.

아니다, 이렇게 써버리면 너무 얄팍하게 설명하는 것 같다. 그러니 조금 부연설명을 하자면 나는 복잡하게 생각을 하지만 게으른 사람이다. 어느 정도로 게으른가 하면 주변에 널려있는 사람들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을 만큼 게으르다. 관계가 깊고 얕고를 떠나서 나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 지 관심이 전혀 없을 리야 만무하지만 그저 상대가 가진 관심사나 삶에 대한 생각, 아니면 어제 먹었던 저녁 반찬 같은 것들을 설명해도 집에 가면 깡그리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관심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나는 어떤 불특정 타인과의 관계가 복잡성을 띄기 시작하면 금방 포기한다.

선을 긋고 좋아, 이 정도의 간격이면 더 고민해가며 너를 만날 필요는 없겠구나, 생각하는 부류인 만큼 나는 타인에게 무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무례하게 굴면 괜한 대화를 길게 이어가야 할 수 있으나 지나친 다정이 무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예의를 갖춰 대화하면 상대와 감정적 교감이 일어날 경우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걸 알아서 그렇다.


이렇게 길게 나에 대해 설명한 이유는 내가 '단순함'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리기 위한 초석이다.

내가 얼마나 게으른지. 내가 얼마나 복잡한 관계, 상황에 대해 생각하기 싫어하는지.


그럼에도 안타깝게도 지금의 내 삶은 단순함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어떻게든 단순하게 풀어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 꼬여버리는 실타래는 삶을 꾸준히 걸어가는 것 외에 재주가 없는 나를 피로하게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아주 우스운 문제를 가지고도 내 삶 속에선 아주 복잡하게 꼬인 문제로 만들 수 있다.

'아내의 어머니가 나에게 장모님인가, 시어머니인가.'

아, 물론 웃자고 쓴 것이다. 나는 농담을 잘 하진 못하지만 그냥 생각하니 우습잖아. 저런 문제는 일반적인 결혼에서는 문젯거리로도 발생하지 않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 사회가 나서서 아예 정해놓았고 어릴 때부터 훈련이 되어 있으며 의례 나에겐 시어머니(또는 장모님)가 생기는구나 생각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넌센스 퀴즈 같은 문장 속에서도 나의 삶은 단순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아내의 어머님'또는 '어머님' 정도로 퉁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퉁치기로 한 것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무엇보다 평등하고 공평한 호칭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더 복잡한 문제는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며 생긴다.

"결혼 생각 없어?"

이런 질문은 너무 초보적인 장애물이라 내 연차가 한 자릿수일 때 어떻게 대답해야 분위기 깨지 않고 잘 넘어가게 되는지 몸에 익었다. 그래서 그런 질문은 곤란하지 않다.


오히려 직장 속 사회생활에서 일반적으로 오고 가는 스몰 토크에서 더 긴장할 일이 태반이다. 실수를 해서 말의 앞뒤가 맞지 않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남자 친구가 있다고 둘러대면 어디서 데이트했는지, 남자 친구 집에서 멀지는 않았는지, 남자 친구 어디 사는지 이런 정보들이 순식간에 오고 가는 것이 그런 가벼운 수다이다. 그런 만큼 남자 친구가 사는 곳이나 다니는 직장, 사람들이 주말에 많이 가지 않았을 법한 동네에서 데이트했다고 둘러대는 것 등 어떤 질문에도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자 친구가 없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편한데 그럴 경우 '왜 소개팅을 안 받는지'에 대한 적절한 이유를 만들어야 하고(실연당해서 지금은 생각 없어요, 하는 것도 서너 달일 테니.) 어디를 여행 갈 때마다 "혼자 가요."라던가 "친구랑 가요."라고 말하고 다녀온 뒤에 어느 쪽으로 답했던지 헷갈리면 안 된다. 


쓰고 보니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거짓을 입 밖에 낼 때마다 내가 아까 저 사람하고 얘기할 땐 이 사람하고 얘기하는 것과 똑같이 말했던가 되돌아보며 머릿속이 뒤엉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 질문에 뭐 성의 있게 대답해. 가볍게 대답하면 되는 것 아니야?


그렇게 '가볍게 대답할 수 있는' 단순함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거짓을 말할 필요도 대부분 없거니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가지고 있는 편견과 통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편리함을 부여한다. 슬슬 결혼하겠네, 아 돈을 좀 더 모아서 하려고요, 남자 친구는 어디 사는데? 직장은 여기고 집은 여긴데 결혼하면 여기쯤 살면 둘 다 출퇴근 괜찮을 것 같고요, 내년쯤으로 결혼 생각해요. 

이런 대화는 지나고 나면 서로의 머릿속에 조금도 남지 않는다. 정해진 질의응답처럼 무척 단순한 대화이기 때문이다. 길을 벗어나지 않고 큰길을 따라서 슝슝 달리는 자동차들처럼 막힘없고 거침없이 오고 가는 그런 대화가 나는 가끔 무척 부럽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애자로 살고 남자랑 결혼을 하고 그러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온 사회가 나서서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전부 어떤 이미지화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 이미지를 공유하고 질문과 답안이 다 정해져 있을 만큼 익숙한 것이 어떤 기분일지 그런 것이 부럽다는 뜻이다. 우리도 언젠가 그렇게 된다면 좋을 텐데.



물론, 각오한대로 나는 단순함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앞으로도 꾸준하게 살게 될 것이다.

모든 문제에 명쾌한 해답이 없는 삶 앞에서 나는 가끔 피로함을 호소한다. 가족문제이며 직장문제이며, 아내에게 사망보험금 하나 남겨주려고 해도 그 또한 명확한 확신이 없는 이 사회 속에서 부부로 살며 단순해지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낀다.


정말로 단순한 사회는 그냥 서로가 서로에게 신경을 끄는 것 아닐까.

조금 과격한 마무리가 된 이유는 어쩌면 조금 짜증스러워서인지도 모른다. 이다지도 복잡하다니. 앞으로도 이런 복잡한 문제가 무덤에 누울 때까지 계속해서 파도처럼 밀려올 것이 뻔하다니.


이렇게라도 결혼해서 함께 끝까지 가보자 마음먹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뭐람.





 






작가의 이전글 6월은 나의 달, 나의 프라이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