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홍 Sep 28. 2021

가끔 책 리뷰 : 왜 굳이 반전을?

<홍학의 자리>에 대한 작은 감상

* 이 기록은 <홍학의 자리>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주의해주세요.


사실 이렇게 글까지 쓸 생각은 없었지만 역시 이건 감상을 좀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쓰기로 했다.


책을 무더기로 주문해서 쌓아두고 한 권씩 뽀개고 방 안에 탑을 쌓은 종이책들을 보고 곤란해 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나는 그 날도 어김없이 인터넷 서점 메인부터 훑고 있었다. 읽을 것이 없다는 것은 내게 기쁜 일이다. 책을 살 명목이 되니까.


그러던 중 이 문구가 떡 하니 내 눈앞에 뛰어드는 것이다.


한국 미스터리 사상 전무후무한 반전!
네이버에서 책을 검색하면 나오는 설명에도 들어간 저 문장. 공식 마케팅 문구였던 모양입니다.


나는 미스터리, 특히 반전물에 늘 목 마르다.

진심으로 날 놀라게 해줄 미스터리 작가 분들이 정말 그득해졌으면 하는 꿈이 있다. 심지어 중학교 시절부터 한결같은 나의 꿈은 돈 많은 사람이 되어서 엄청 신박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작가를 후원해서 제일 먼저 읽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었으니. (스스로 쓸 재능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정말 잠을 못 이루고 다시 처음부터 읽은 반전물들도 있었는데 이런 책들은 끝에 다다르며 책장을 넘기는 손이 너무 빠른 것조차 아쉽게 만드는 몰입감을 선사하곤 했다. 이 책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 길게 풀어보고 싶다.


일단 사족이 길었고 당장은 이 <홍학의 자리>라는 책으로 돌아오면 '전무후무한 반전'이라는 마케팅 문구는 상당히 공격적으로 느껴졌기에 그만큼 기대가 되어 원 픽으로 장바구니에 담아 배송 온 첫 날 높은 책의 탑 중 가장 첫번째로 펼쳐 들었다.


사실 다 읽고 난 감상이 그다지 좋진 않았다.

(좋았으면 이렇게 급박하게 기록을 남길 생각까진 안했겠지.)


좋지 않다는 표현은 순화된 것이고 사실은 책을 펼치자마자 불쾌함이 몰려왔는데 그 이유는 장르적 허용이란 말로 인정할 수 없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바로 미성년자 제자와 성인 교사(그것도 유부남!)의 성행위 장면.


일단 그루밍 성범죄라는 단어를 떠나서 이 장면의 불쾌함은 제자가 교사에게 성적인 추파를 던지는 것에서 극대화됐다. 심지어 책을 펴고 한두장 쯤 읽었을 때 조우한 장면이라 나는 심히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캐릭터 빌딩이라고 어떻게든 눈 감고 반전을 위한 스토리만 본다고 생각하자고 마음을 먹고 있던 나는 약 삼중에 걸쳐 이어지는 반전을 읽은 순간 당혹감을 숨기질 못했다.


우선 반전물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가 느끼는 기쁨은 작가의 두뇌회전 그 자체에 놀라는 경우와 내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음에도 두 손 들고 항복할 수 밖에 없는 스토리 빌딩에서 오곤 했다.


세상에! 서술 트릭으로 여기까지 끌고 왔었구나, 하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작가가 심어놓은 트랩들을 다시 되짚으며 2회차 독서를 할 때의 기쁨이나 캐릭터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가 뒤통수를 세게 후려맞고도 개운한 마음 같은 것.


그러나 저 강력한 마케팅 문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삼중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반전(그러나 읽다보면 대충 예측은 가능한)에서 그동안 끌고오던 스토리를 다 뭉쳐다가 짓이겨 틀에 끼워 맞췄다. 그러니까 반전이 주는 의미가 스토리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니, 별로가 아니고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그 반전이 없는 상황이었다면 이 모든 난장판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그렇게 되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반전이 있든 없든 이 스토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공이 반전으로 인해 받는 충격은 독자인 내겐 전혀 무관한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일단 삼중 반전 중 첫번째 반전은 미스터리 좀 읽었다 하시는 분들이라면 책 중반쯤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반전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반전은 중반쯤 뚜껑 열고 바로 내보인다.


1번 반전: 이미 죽은 줄 알았지만 사실 죽지 않은 상태였고 네가 죽인 것이다.


이런 반전은 사실 이제 반전으로 치기도 조금 열악하다. 모든 소설과 영화, 드라마까지 막론하고 한번쯤은 스치듯 넣어주는 장면이며 주인공에게 충격을 줘서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소재로도 쉽게 사용되는 재료. 그러나 주인공은 이 반전에 놀라기만 할 뿐 그로 인해 다른 문제가 엮이거나 심리 상태가 크게 변화하거나 하지는 않아서 그냥 밍숭하게 흩어진다.


2번 반전: 살해인 줄 알았는데 자살.


이 반전도 1번 반전처럼 책을 쭉 따라가다 보면 답은 하나밖에 없기에 별로 놀랍지 않다. 범인으로 충분히 냄새를 피우는 등장인물도 없고 동기는 얄팍하고 트릭이나 의심스러운 정황 같은 건 그냥 쭉 서술은 되지만 별로 주의를 끌진 못한다. 미스터리한 느낌이나 으스스한 느낌 조차 없는 살해 의심에서 어떤 반전이 드러날지는 너무 쉽게 예상이 되어 버렸다.


3번 반전 : ??????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이 3번 반전인데.

어쩌면 1번, 2번이 위에 쓴 것처럼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미스터리물에서 저런 반전들이 흔한 건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마지막에서 "자! 이게 진짜야! 전무후무하지? 어서 놀라!"하는 태도로 들이미는 반전이 내겐 정말로 하나도 놀랍지 않았고,


심지어 불쾌했다.


이 불쾌함은 첫 장면에서 내가 느낀 불쾌함과 연결이 된다.

그렇기에 내 대답은 "그래서 뭐? 이게 왜 놀랄 일이야? 이게 반전이라서 뭐가 바뀌는데?"라는 소리밖엔 나올 수 없었다.


위풍당당하게 터뜨린 최후의 반전이 사실 교사랑 잤던 학생이 여자가 아니고 남자라는 것이라니.


1. 그래서 미성년자(그것도 본인이 담임인 반 제자)와 성관계를 했던 사실이 사라지는가? 아님

2. 그래서 이 비극적 상황에 대해 무언가 감상이 바뀔 여지가 있는가? 아님.

3. 그럼 놀라야 하는 이유가? 없지 않나.


네,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이 책의 반전은 "내가 이름하고 성적인 묘사만 넣었지 여자애라곤 안 했잖아? 편견과 서술트릭으로 만든 반전입니다."라는 것인가보죠.


그것이 반전이라는 사실엔 조금 놀란 것도 같습니다. 유일하게 딱 한 번.

(음? 이게 정말 마지막 장이 맞아? 하고요.)



★☆☆☆☆


작가의 이전글 물속에 사는 선인장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