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 책의 내용을 서술하며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난 외톨이야. 완전히 외톨이야...
무시무시한 고요.... 지독한 외로움...
가여운 조앤 스쿠다모어.... 멍청이, 헛똑똑이, 가식 덩어리 조앤 스쿠다모어....
사막에 혼자 있네
(본문 중)
여러 번 읽을 정도로 소중하게 아끼는 책은 감상을 쓰기가 한결 어렵다. 그런 책들이 있다. 너무 좋아해서 그것에 대한 생각을 남기는 것이 오히려 불필요하고 사족같은 책들. 그러나 기억은 나약하고 기록은 확실하다 생각하는 만큼 사족을 달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내가 느꼈던 가장 첫번째 감정은 '생생한 공포'였다.
<봄에 나는 없었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추리소설의 거장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심리소설이다. 살인도 없고 살인범도 없고 살해현장도 없다.
말 그대로 등장인물의 심리에 집중한 서술이 일품인 책이라 과연 거장은 다르구나 생각하며 읽었다.
그러나 이 리뷰는 책의 완성도와 별개로 내가 느낀 공포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이 공포스러워서 좋아하고 그렇기에 자주 읽으며 공포를 되새기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원래도 심리를 다루는 장르물을 좋아하지만 이 소설만큼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공포를 기품있게 다루는 컨텐츠는 활자, 영상을 막론하고 아직 만나지 못했다. (내 견식이 짧은 탓도 있겠지만.)
소설의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던 조앤 스쿠다모어는 자상하고 유능한 변호사 남편과 번듯하게 키워낸 아이들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주부이다. 그녀는 결혼하고 다른 나라에 사는 딸의 병간호를 마치고 바그다드에서 런던으로 돌아가던 길에 폭우로 교통이 끊겨 사막의 어느 기차역 숙소(중간 지점 쯤 되는 것 같다.)에서 머물게 된다.
숙소는 적당하게 아름답고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 없이 훌륭한 직원의 접대를 받고 있지만 사막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는 것밖엔 없다. 길이 뚫릴때까지 무한정 숙소에서 기다려야 하는 조앤에게 과거의 일들이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신경줄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내용상으로는 크게 대단하지 않은 이 소설이 독자에게 그토록 공포를 느끼게 하는 이유가 뭘까? 다른 독자들의 감상은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 조앤의 정신이 과거의 파편들로 인해 뒤흔들리는 과정을 문장을 통해 간접 경험하는 것은 결국 나의 자아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았기 떄문이다.
가끔 녹음되어 있는 내 목소리를 들을때 약간 불쾌할 정도로 낯선 기분을 느끼는 것과 비슷했다. 타인이 보는 나를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다는 것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니 내가 나에 대한 평가를 아주 가혹하게 하더라도 사실 기만일 뿐이다. 나에 대한 진실은 자기분석을 할수록 고통을 수반한다. 기만으로 덮어놓은 뚜껑을 하나하나 열수록 비위가 상하는 나에 대한 진실을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심리를 간접 경험하다보면 조앤을 동정하게 되지만 끝으로 갈수록 느껴지는 것은 극한의 공포다. 읽는동안 조앤과 공감하고 조앤에게 나를 비춰서 서술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이다.
'남편은 왜 내가 탄 기차가 움직이자마자 마치 기쁜 사람처럼 뒤돌아 사라진걸까.'
'딸은 왜 자기 병명조차 숨겼을까?'
'변호사를 그만두고 농부가 되고 싶어했던 남편은 왜 내게 그런 표정을 짓고 그 일을 포기했지?'
'딸은 내게 왜 엄마는 아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하고 되물었지?'
이 모든 의문들은 조앤의 머릿속에서 기억의 일화들로 찬찬히 보여진다.
남편은 나를 사랑해, 내 남편은 더할나위 없어, 그는 지역사회에 완전히 자리잡았지. 농부가 되겠다니. 남자들은 정말 바보같은 생각을 한단 말이야. 내가 없었다면 그는 이렇게 유능한 변호사가 되지 못했을거야. 그럼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냔 말이야.
그러니 내 가족은 나를 사랑하고 있어.
이런 생각을 하던 조앤의 머릿속에 기억이 악마처럼 몇가지 단편적인 기억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내놓는 것이다. 이건 어때? 하는 식으로.
그렇다면 너의 남편은 왜 딸의 병간호를 하는 네가 탄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기차역을 떠나는 뒷모습을 보여줬지? 기차를 향해 손 흔드는 무수한 사람 중 네 남편은 없었어. 그의 뒷모습... 기뻐보였던 것 같지? 어때?
타오르는 햇빛과 사막을 거니는 사이 이런 생각을 오고가는 조앤의 신경은 광기와 안정을 오고가며 그녀는 완전히 지쳐 버린다.
가여운 조앤 스쿠다모어.. 네가 지금까지 일생을 살며 봐온 것은 진실이 아니야.
기만이 눈을 가린 보기 좋은 환상일 뿐이지.
이 장면들은 읽으며 불쾌할 정도의 공포를 자극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알고있는 타인의 시선은? 내가 타인에게 상냥하게 대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사이 놓치고 있던 작은 실마리가 있을지도 몰라.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이라 생가했지만 사실 그게 아닌지도 몰라.
나는 사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도 그걸 눈감고 잊었는지도 몰라.
그런 공포가 몰려오며 소설은 클라이맥스를 지나 결말을 향해 급행열차처럼 속도를 낸다.
결국 조앤이 탔던 기차는 다시 달려 목적지인 런던에 무사히 도착한다. 사막에서 체류한 기간 그녀는 끔찍한 진실을 목도했고 자기 혐오에 빠졌다가 결국 자신을 반추하며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런던에 도착한 조앤은 런던을 떠나기 전의 조앤과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야 옳을 것이다. 결말에 대해서는 혹시라도 이 리뷰를 읽고 이 책에 관심이 생긴 분들이 읽을 수 있도록 서술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위의 내용을 알아도 심리 소설인만큼 정말 재미있으니 이런 장르를 좋아하시면 무조건 추천을 하게 되는 책이니.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남편 시점의 서술과 남편의 말이다.
내가 읽었던 공포, 추리, 심리소설 대부분을 통틀어 내 개인적인 소름돋는 버튼을 가장 잔인하게 눌러버린 결말이었기에 이 부분까지 꼭 읽어 보시길 바랄 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자꾸 여러 심리검사의 유형같은 것을 들이민다. 그러나 사막에 떨궈져 나 자신만을 탐구하는 과정을 간접체험하니 저 질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그리고 타인에게 응당 사랑받아야 할 만한 사람도 아니었기에.
기억의 파편에서 나 역시 조앤처럼 그 진실을 목도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