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바 Apr 28. 2018

터키에서 한국 여자가 인기 있는 이유

사실을 알면 놀랄 이야기

이스탄불에 한 달이나 있을 예정은 아니었다. 마이애미에서 룸메이트로 지냈던 친구의 결혼 소식에 냉큼 '갈게' 했던 것은 과로로 인한 대상포진 때문이었다. 왕복의 비행시간을 포함한 일주일 정도면 이스탄불을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데는 짧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친구의 결혼식이 끝나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다녔다. 발걸음을 떼는 관광지 마다 터키의 남자들은 말을 붙였다.


"홍차 한잔 할래?"


처음에는 그런 추파를 온몸으로 느끼며 한국 여자들이 이스탄불에서 인기가 많다는 풍문을 되새겼다.  어깨가 올라가고 걸음도 느려지고 빳빳해졌다. 길거리에서 햇볕을 받으며 호리병을 잘라 놓은 것 같은 유리잔에 담긴 뜨거운 홍차 잔을 다루는 법에도 익숙해졌다. 유유자적 걷다가 발길이 닫는 대로 명소에 들르기로 했으니 시간은 많고 이스탄불을 골목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블루 모스크, 모스크의 기도소리에 깨어나지 않는데 걸린 시간은 3일.

블루모스크 앞의 광장에서는 혼자 열 걸음을 떼기 버거를 정도로 남자들이 말을 걸었다. 홍차도 지겹고 한국말을 한다며 서투른 '안녕하세요?'에 대꾸하는 것도 지쳐갔다. 이쯤이면 되었으니 진짜 혼자 걸으며 좁은 골목을 기웃거리고 싶었다.


한 번은 쫓아온 남자를 떼어낼 심산으로 화장실에 들어가 십 분이 넘게 있다가 나왔지만 따라왔던 남자는 이 정도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화장실 문 앞에서 나를 반겼다. 탁심 광장을 지나 백 년도 넘은 천주교 성당 맞은편에 있는 루프탑 바에서 만난 남자는 변호사였는데 고상하게 국제법에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되자고 하더니 마지막 말은 느닷없이 '어쨌거나 우리 집에 가서 자자'였다. 손을 잡기는커녕 눈빛 한번 제대로 주고받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런 반복이 3주쯤 지속되자 ‘제발 나 좀 혼자로 놔둬!’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어졌다. 이때 한국에서 6개월간 한국말을 배웠다는 터키의 여자 아이를 알게 되었다.


"터키 남자들이 너무 추근거려. 원래 이래?"


"아니 언니, 그건 언니가 외국인이라서 그래요."


한국인이 인기가 많다더니 그게 아니고 단지 터키여자가 아니어서란다. 터키도 다른 여타의 무슬림 국가보다 자유롭지만 잘못 추근덕 거리다가 일을 치루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말을 이었다.


"너한테는 그러지 않는다는 이야기지?"


"예를 들어줄게요. 외국인이라서 쉬운 거예요. 특히나 같은 터키인끼리는 결혼 전에 섹스를 하기 힘드니까 외국인에게 붙는 거라고요. "


"아무한테나?"


"그렇지는 않지만 소문 날 염려도 없고 열명 스무 명한테 작업 걸다 보면 한 명은 걸린다는 마음 같은 거예요. 실제로도 그렇고요."


그리고 한국여자 사이에 한국여자가 인기 많다는 소문처럼 러시아나 미국의 여자들 사이에서도 그런 소문은 잦다고 했다.


이스탄불은 세계적인 관광지여서 많은 여자들이 오고 그 여자들에게 남자들은 끊이없이 말을 걸기 때문이다. 걸다가 망신을 당해도 대부분은 떠나가고 그리고 새 여자 관광객들은 쉴새없이 들어온다.


"언니는 좀 오래 있었으니까 급한 마음이 없잖아요. 그런데 짧게 있을 수록 운명의 사랑에 빠졌다는 느낌을 받을거에요. 그 남자들은 안내자가 되어 줄꺼고 말동무가 되어 주고 예쁘다고 눈을 마주쳐 주니까. 관광객 여자에게 있는여행지에서의 로맨스가 짜잔 하고 나타나는 것 같겠죠."


"그런 느낌이 있었어. 따라붙더라도 어느 저도 선이 있거든. 처음에는 나한테 반한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건 분명 아니야."


"해볼만큼만 해보고 접어요. 어차피 이스탄불에 오는 여자 관광객은 많으니까."


" 내 말이 그 말이야."


 그 아이도 한국에 있는 동안 내가 이스탄불에서 겪은 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일을 몇 번 겼었다고 했다. 친절한 안내자를 자청하던 한국 남자가 갑자기 모텔에 가자고 하는 것 같은 일이다. 몇몇의 남자들은 집 앞까지 술 한잔 하자며 쫓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이야기 말미에 이런 말도 덧붙였다.


 "나도 금발처럼 보이잖아요. 금발의 서양인. 한 번쯤 자보고 싶고 만만했던 거예요. 나도 떠날 사람이니까."


지겹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거리를 혼자 누비지 못하는 일은 싱겁게 끝이 났다. 그녀의 조언대로 긴 바지를 입고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후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자 기적과 같이 말을 붙이는 남자들이 사라졌다. 보수적인 터키 여자들과 비슷한 옷차림.

 그리고 나는 그 자유를 석양이 질 때면 유럽 파트의 이스탄불에서 아시아 파트를 이스탄불을 건너는 페리를 타며 누렸다.

탁심 광장과 전철역을 잇는 트램. 낭만이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터키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수는 있다. 익숙하지 않은 많은 추파 사이에서 진심과 도끼질을 구분해내는 안목이 있다면. 내가 한 달 동안 이스탄불에서 지내는 동안 로맨스는 찾아오지 않았다. 한 달이나 있었는데 데이트가 없었다니. 어쩌면 나는 아름다운 이스탄불의 거리를, 유적지를 혼자 걷는 것에 너무 심취했는지 모른다.


귀국을 앞둔 이틀 전에 전철에서 만난 레바논 사람 파이는 거리 곳곳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친구였다. 이스탄불에는 20번도 넘게 왔다 했다.  그와 왕궁이 문을 닫기 전 마지막 입장에 맞추기 위해 손을 잡고 뛴 것이 나의 이스탄불 로맨스의 전부이다. 레바논에 놀러 오면 진짜 총을 쏘게 해준다더니 지금은 두바이에서 일하고 있다. 요즘은 기독교인으로 두바이에 사는 것에 대한 불평을 가끔 전해온다.

그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이스탄불에 간다면 어깨가 으쓱해지는 느낌만은 꼭 느껴 봤으면 좋겠다. 지겹다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그며칠은 단순히 그것만으로도 이스탄불이 더욱더 반짝 거렸던 것도 사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걸어서 국경을 넘는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