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아 둔 카펫트 대용 이불 위에 누웠다. 누웠다기보다 반 접힌 이불의 한 면이 되어 얇게 바닥에 붙어버렸다. 몸이 심하게 이완된다. 팔을 기준으로 어깨와 약간의 몸통이 모든 힘을 뺀다. 요가하며 의도해도 잘 되지 않았던 상태가 이렇게 찾아오다니, 반가워 눈을 감았다. 기억에 남을만한 많은 꿈이 오가지 않을 잠을 잤다.
해야할 일들이 눈 앞에 지나간다. 최대한 외면하고싶어 오지 않는 잠을 더 잤다. 하루쯤 지났으려나.
스르르 눈꺼풀이 올라간다. 약간, 시간에 대한 죄책감에 최소한의 긴장을 되돌린다. 실에 감긴 목각 인형처럼 일어나 말아둔 캔버스를 펼쳤다. 드디어? 효율적이고 합리적이고 능률적인 세상사 약속들과 멀어져간다. 지난번 그렸던 그림에 깊숙이 머리를 박는다. 가치있는 시간? 그런 게 다 뭐람? 좁지도 넓지도 않은 내 작업실 만큼 한정된 고요함을 얻는다.
세수하지 않은채로 얼굴을 봤다. 피부는 이틀가량 시간이 흐르지 않아보인다. 그새 그림을 두 개 정도 건졌는데, 다음주 있을 전시에 새로운 작품을 걸 수 있을 것같다. 엉망진창의 만족스런 강박 내려놓기 시차적응을 마친다. 어찌보면 아무 일도 아닌 50시간을 별일로 만들어 준 강박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마음 한 켠에 ‘그냥 있음’을 만끽하고 싶다는 부드러움이 들어있다. 민들레 홀씨 날아가듯 아무런 시간 없는 바람에 실려 날아가고 싶다. 모든 시간은 모든 강박을 내포하고 있다. 모든 강박은 모든 자유를 내포하고 있다. 자유라는 개념조차 없는 민들레 홀씨를 동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