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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wonder Aug 28. 2020

체험! 카페의 현장

래퍼에서 시인이된 카페인 이야기

아이스아메리카노세잔에한잔은반샷만넣어주시고요아인슈페너아이스흑임자라떼따뜻한거하나랑말차라떼차갑게한잔하고요수박쥬스는시럽빼고두잔망고바나나는애기들먹일거라컵두개에나눠담아주실수있나요


 이것은 랩이 아니다. 이것은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고객님의 주문내역이며, 내머리에 주문을 거는 주문이기도 했다. 뇌를 멈추게하는 주문.


 일년 전 서울과 가평사이 남양주 인근에 친구가 차린 더하이브 카페는 2000평이 넘는 큰 숲속에 고즈넉히 자리 잡고있다. 카페보다 공원에 가까운 숲속 카페에 반해버린 나머지 짬나는 주말이면 그곳에 가서 커피도 먹고 빵도 먹고 멍도 때리고 낮잠도 자고 쉬기를 즐겨했다.


 지난 5월 연휴, 친구가 알바비를 챙겨줄테니 카페에 와서 바쁠때 잠깐씩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직장생활 십여년의 짬으로 일머리 하나는 자부했기에 흔쾌히 콜을 외쳤다. 카페 알바를 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 보건증도 미리 발급 받고 '체험! 삶의 현장'에 나서는 너낌으로 단정한 카페 알바룩의 의상도 준비했다. 1일1카페는 일상이고 이따금 1일3카페까지 달성해 내는 성실한 카페人으로 살아온 바,  왠지 모르게 카페 안에서 돌아가는 일들에 대해서는 묘한 자신감이 있었다. 카페에서 어떤일을 맡게되던 30년된 서당개마냥 능숙하게 해낼거라는 근자감을 탑재한채 카페 알바로 출근한 첫날 계산대앞에 서게 된것이다.  


 평생 주문만 넣던 손님으로 살다가 계산대 반대편으로 넘어가 처음 만져보는 포스기는 낯설기 그지 없었다. 예상외로 엉성해 보이는 포스기 화면에는 스무개가 넘는 음료 메뉴명이 네모 버튼으로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고 해당 메뉴를 펜이나 손으로 눌러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주문을 처리하는 순서는, 우선 주문이 들어온 메뉴를 찾아 메뉴명을 누르고 수량을 조절한다. 주문을 모두 넣고 손님이 주는 신용카드를 방향에 맞게 카드리더기에 꽂으면 1,2초후 삐리삐리삐 결제음과 함께 계산이 빠르게 완료된다. 현금일 경우 현금계산을 누르면 툭하고 돈통이 열리고 돈을 넣고 거스름 돈을 내어줘야 한다. 이어 화면에 진동벨 번호를 입력한 후 그 번호에 해당하는 진동벨을 카드와 함께 손님에게 드린다. 주문내역이 출력되면 뽑아 내순서대로 음료 파트로 넘기면 다음주문을 받을수있다.


 ‘올 생각보다 간단한데?’  카페 오픈 전에 간단하게 배운 주문 입력 방법을 상기하며 순서를 익혔다. 아직 메뉴명을 다 외우지 못했기에 주문을 듣고 메뉴별 버튼 위치를 빠르게 찾는것과 i 라는 문자 하나로 구분 되어있는 아이스와 핫메뉴를 혼돈하지 않는 것, 손님이 고른 빵의 이름을 기억해 빵 주문을 입력하는것 정도를 주문 업무의 핵심으로 파악하고 그 부분을 신경쓰면 큰 문제없겠다 싶었다.


 내게 첫 주문을 넣은 손님은 오픈 시간에 맞춰 카페를 찾은 커플 손님들이었다. 아아두잔, 아라두잔, 주문 메뉴마저 사랑스러운 커플 고객님들의 오더는 스무스하게 접수되었다. 뿌듯함을 담은 진동벨을 공손하게 건네드리며 감사의 눈빛까지 쏠 여유가 있었다. 자신감이 생겨버린 나머지 옆에서 지켜봐주던 친구에게 "나 쫌잘하는것애. 혼자할수 있으니깐 너는 너할일 가서 해" 라며 호기까지부렸는데, 웃을수 있는시간은 딱 여기까지였다.


 커플 손님 이후부터 무섭게 들이닥치는 가족 단위, 대가족 단위, 사돈의 팔촌단위,  동창회인가 회사워크샵인가 애견동호회인가 주말에 왜때문에 이렇게 모여다니시나 싶은 10인 이상 떼단위의 단체손님 주문을 연달아 접수하면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불행한 예감도 함께 접수했다.


 쇼미더주문커피메뉴명빨리말하기랩배틀에 참가하기 위한 단체손님들의 줄이 길어지면서 손님이 말한 메뉴를 지체없이 포스기에 입력해야 하는 나의 뇌작동에 심한 버퍼링이 시작 되었다. 10여잔의 주문내역을 담은 속사포 랩을 끝낸 손님은 이미 자리에 돌아갈 태세로 신용카드를 내밀고 있는데, 내 손은 겨우 두번째 언급한 메뉴의 수량을 포스기에 찍고 있는 식이었다.  번번히“저죄송한데, 흑임자다음에뭐라고하셨죠? ^^;”  두번 세번 리바이벌을 요청해야했고, 언성을 높이거나 한숨을 쉬는 식의 언짢은 고객님의 피드백을 입력받은 뇌는 버퍼링이 더 심해졌다. 이 상황을 고스란히 목도하며 주문 순서를 기다린 다음 고객님도 자비없이 속사포 주문을 이어갔고, 옆에서 보기에 주문을 받는건지 울고 있는건지 헤깔리는 상황이 계속됐다. 설상가상으로 주변온도가 급상승하고 카드를 받고 주는 손끝에 손떨림이 티나게 전해지면서 스스로 민구함이 깊어지니 이것이야 말로 공황장애가 아닌가 말로만 듣던 공황장애를 내가 여기서 얻는구나 싶어 마음이 더욱 심난해졌다.

 

 주문을 받는 일에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가 지속되자 급기야 손님이 계산하려고 골라온 빵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 카페에서 파는 빵이란 빵은 다 먹어본 빵순이인데, 손님이 가져온 빵의 이름이 포스기 메뉴에서 보이질 않는것이다. 누렇고 네모진 이 빵이 산딸기 바게뜨인지 앙버터 바게뜨인지 빵에 빵이름은 왜안써놓았는지(?) 극도로 머릿속이 혼란한 상황에 빵을 골라온 손님에게  “혹시이빵이름이뭔지아세요?” 라고 묻는 황당 시츄에이션을 연출하고야말았다. 카페에서 파는 빵 이름을 손님에게 묻는 내자신을 용서할수 없어 당장 친구를 불러계산대를 맡기고 빠져 나왔다. 호기롭게 시작한 카페 계산대 한 시간만에  나는 도대체뭐하는 인간인가 지금껏 회사에서 월급은 어떻게 받고 살았나 생계인으로서의 본원적 질문까지 이르게 된것이다.  


 근자감으로 겪어낸 초단기 알바자리에서 업의 면면과 그 일로 느낄수 있는 기쁨과 슬픔을 맛보았다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내가 겪은 경험은 그일에 작은 단면을 볼수 있는 사소한 사건에 불과했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마주보는 수많은 순간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건졌다. 누군가와 마주보고 대화하는 수많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쪽에서의 경험만을 전부로 살아가고 나조차도 그 경험만으로 그일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것을 짐작하고 살고있다. 하지만 반대편의 경험을 통해 그 짐작은 실제와 다른 경우가 훨씬 많으며, 짐작을 확실시 할 경우 피치 못할 오류와 편견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이다.


 포스기 너머의 경험만을 가지고 포스기 안쪽의 일에 대해 쉽게 예단하고 들이댔던 ‘계산대 트라우마' 이후 다행히 새로운 재능을 발견했다. 카페 리턴 섹션에 들어온 빈컵 분리수거에 적성을 찾았고, 가끔 다시 카페에 놀러가면 분리수거 섹션에 잠입해 밀린 쓰레기들을 정리하며 그날 주문 대참사로 인한 마음의 빚을 갚고있다. 이후 카페에서 주문을 넣을때는 유심히 메뉴를 탐색하고 주문을 넣을때는 래퍼보다는 시인의 마음으로 우아하게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굼띠게 주문하는 손님으로 인해 성질급한 카페 점원은 속이 터질수도 있겠지만, 주문을 하는 순간부터 빈 커피잔을 내놓을 때까지 그 과정을 모두 천천히 음미하는 음유 카페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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