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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wonder Aug 28. 2020

밥 같이 먹어요

밥약속에 담긴 온기에 대해


해방촌 꼭대기에서 진행된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빠져나와 바로 보이는 용산02번 마을버스를 잡아탔다. 집앞 정류장에 자주 보이던 노선이라 종점이라는 표지판만 보고 급작스럽게 잡아탄 버스였다. 수업에서 얻은 작은 향상심을 안고 창가자리에 앉아 창밖을 구경하려는데, 아차.

‘밥 몇시에 먹을지 물어본다는걸... 그냥나왔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제 역할을 못 해내는 기억력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처음 참여한 글쓰기 수업 쉬는 시간에 붙임성 좋아 보이는 친구가 다른 학생들에게 밥 먹자는 제안을 했다.

“여기까지 온것도 아까운데, 다음주에 시간 되시는 분들 밥 같이 먹는건 어때요?”

질문은 허공에 던져졌고, 마침 주변에 가보고싶어 벼르고 있던 식당이 있었기에 정보를 나누었다. 자연스레대화의 주제는 보광동 맛집으로 이어지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공유하는 네트워킹의 시간으로 마무리 되었다. 가고 싶었던 식당이 수업이 있는 화요일마다 휴무인지라 다른 식당을 찾아보겠노라고 수업 마치면 밥먹자는 회답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수업 끝나자마자 스윽 빠져나와서는 홀라당 버스를 타버린것이다.


‘나오는 길에 명함이라도 주고 나올 걸...’

소름끼치게 아재같은 생각까지 해가며 안타까워한 이유는 얼마전 인스타그램 어플을 삭제해버린 탓에 간편하게 연락할 기회도 놓쳐버린 탓이었다.


종국에는 글쓰기 선생님께 연락해서 그녀의 연락처를 수소문하는 밥스토커가 되는 상상까지 했다가 밥 못먹어서 안달이 난 이상한 언니가 될 수 있겠다 싶어 또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때마침 집 앞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려야 했기에 다음 주에 만나면 회답해주기로 밥약속 생각의 꼬리를 고이 접어두었다.


회사나 사석에서 아는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언제밥먹어야지”, “식사한번해요”, 라는 말이 쉽게 오가지만 그 말들은 대체로 힘이없다. 왜 더 오래봤고 자주보는 그들의 말보다 수업에서 처음 만난이의 말에 회답을 하고 싶었을까. 그 이유는 말 속에 들어 있는 ‘온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는 사람이 가진 온도, 정서와 분위기에 따라 그 말이 가진 에너지가 달라진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이의말은 쉽게 휘발되지만 어떤이들의 말은 마음 속에 들어와 오래 굴러다닌다. 그런 온기를 가진말들은 내 마음을 데우고 뜨듯해진 마음이 내말에 온기를 더 채워주는 느낌이다. 내 마음에 들어와 오래 굴러다닌 그말에 내온기를 더해답을전해주어야겠다.


좋아요. 밥 같이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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