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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wonder Nov 03. 2020

울면 다 죽는거야. 눈물끼 쏙 빼고 웃으며 보내줄게..

베프를 위한 결혼식 축사


열흘전, 베프가 결혼했다. 같은 학교, 같은 회사를 다녔고, 같은 집에 살며 두번 정도 절교할 뻔한 20년지기 친구의 결혼식 축사를 부탁받았을 때 호기롭게 수락했다. 처음의 패기와는 달리 막상 결혼식 날짜가 다가올 수록 가슴이 떨리고 혹시나 경사스런 날을 망칠까봐 걱정이 앞섰다.


처음 축사를 쓸때는 무족권 웃기고 싶었다. 원래 진담보다 농담의 비율이 높은 친구와의 평소 대화처럼 미친듯이 웃다 보니 왠지 찡한 그런 느낌의 축사를 하고 싶었다. 막상 키보드 앞에 앉아 미주알 고주알 써내려가니 검은머리 파뿌리를 타이핑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축사를 쓰면서도 문득문득 울컥울컥 안구가 습해져 이게 기뻐서 우는건가 슬퍼서 우는건가 벌써 갱년기인건가 의심스러웠다. 생각해보니 한참 먼 남의 결혼식 가서도 눈물짓는 날이 많았더랬는데 베프의 결혼식에 축사라니... 눈물이 한번 터지면 끅끅 거리느라 말을 못이을정도로 오열해버리는 나로써는 절대절대 안될 일이었다.


드립력을 최강으로 끌어올린 축사를 1차 완성한 후 시뮬레이션 낭송을 해보는데 불현듯 하객들이 떠올랐다. 같이 아는 친구들만 참석한다면 드립으로 시작해 드립으로 끝냈겠지만 (시)아버님 (시)어머님 언니1,2 형부1,2 누나 매형 조카그룹 고모님 이모할머님 등 촌수를 짐작키 어려운 어르신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아찔했다. 드립은 줄이고 진지한 이야기들을 섞어 중간정도의 톤을 완성했다.


아래는 결혼식에서 읽어낸 축사의 전문이다. 처음 써놓은 원고에서 날씨와 분위기를 고려한 애드립을 쳐보았으나, 축사는 그냥 써놓은 대로 읽는 것을 추천한다. 읽기만 해도 손이 덜덜 떨릴만큼 긴장되기 때문이다.


신랑신부는 나에게 양껏 고마워 했지만 반평생을 함께 보내온 친구의 인생에 큰 변곡점에서 작은 마음, 떨리는 목소리를 전할 수 있어 내가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결혼'과 '함께하는 인생'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본 계기가 되어 뜻깊었다.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얼굴을  본 나와 신부의 공통분모 친구들은 하나같이 내 심경에 많은 걱정과 응원을 보내주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걱정의 마음은 일도 들지 않고 친구의 행복과 평안을 바라는 마음만이 결혼식이 끝난 지금까지 가득하다.  이 부부가 앞으로 보낼 많은 시간들에 그날의 이벤트가 애틋하고 예쁘게 기억되기를, 결혼이 모든것을 바꾸지 못하지만 하나의 계기가 되어 더욱더 충만한 삶이 펼쳐지기를, 검은머리 파뿌리 될때까지 지켜보겠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신부의 친구입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죠? 어제까지 한파로 엄청 추웠던 탓에 오늘 야외 결혼식 날씨에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 거짓말같이 완벽한 바람과 햇빛을 보고 나니 '이 신랑신부 참 복이 많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복많은 신랑 신부 옆에 꼭붙어서 지금처럼 그 복을 좀 나눠 먹어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우리 신부와 저는 근 20년을 지지고 볶고 지낸 절친이구요. 신부를 보고 축사를 한다면 아마 시작도 하기전에  오열할게 뻔하고, 눈물바다 대참사를 막기위해 파격적으로다가 신랑신부를 등지고 앞을 보고 축사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둘중 먼저 우는 사람이 한강물에 뛰어들기로 약속을 했기때문에 혹시 우리 신부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목격하신다면 가차없이 한강물로 밀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알아서 입수를 하겠습니다.


찐 절친답게, 저는 이 둘이 함께 처음 만나는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2018년 말 겨울 한라산을 함께 오르기로 하고 준비차 만난 모임에서 이 둘은 하라는 산행 준비는 하지 않고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산행준비는 저만했더라구요. 그리고 한달 뒤 한라산을 올라갈때 쯤엔 이미 둘은 사랑에 빠진상태였습니다. 솔직히 가고싶지 않았지만 절친이었기에 하는수 없이 커플여행에 낀모양새로 따라나서게되었습니다.


한라산에서도 재기발랄한 우리 신부는 올라갈때는 온갖 앓는 소리를 내며 입으로 올라갔고 내려올때는 거의 엉덩이로 내려왔습니다. 겨울산 느낌 아실텐데요. 8시간의 고된 등반 과정에서 신부의 손과 발이 되어준건 예상하셨겠지만 우리 신랑이었습니다. 혼자 몸 가누기도 힘든 눈길 등반에서 신랑은 무슨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개고생을 하나 안타깝고 고마웠습니다. 저는 신부를 포기할뻔 했꺼든요. 그날 베프를 잃을뻔했습니다.

 

그뒤로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때를 회상해보면 그날 등산이 무탈하고 온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우리 신부의 에너지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릎까지 푹푹 파이는 눈길을 따라 하산하면서 너무 지친나머지 말도없이 내려오던 그때 서로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안물안궁 유년시절 하나 하나 물어가며 쉴새없이 대화를 하며 웃던 이 커플을 기억합니다. 지치고 힘든 순간에도 서로를 배려하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에너지. 겨울 한라산을 내려오며 제가 느꼈던 신부의 에너지와 신랑의 배려를 기억하기에 오늘 이들의 약속에 주저함 없이 축하와 축복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많은 날들에도 서로에게 서로가 큰 힘과 위로가 되었던 그 순간을 잊지 말고 살아가기를 바래봅니다.  그리고 연애를 하면서 겪게되는 수많은 변수들,  오르막과 내리막을 만날때마다 신부를 든든히 감싸안고 끝까지 고된 등반을 멋지게 완주한 우리 신랑에게 여기 모인 신부의 친구들을 마음을 모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를 아시는 많은 분들은 시집도 못간게 결혼식 축사로 할말이 이렇게 많나 하실거같은데요. 사실 할말이 일도 없을줄 알았지만 막상 하려고보니 방언이 터진것 같습니다.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저도 놀랐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 커플이 지금처럼 유머를 잃지 않고 품위있고 근사하게 잘살 수 있도록 옆에서 힘이되고 보탬이 되는 친구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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