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트렌드를 이끄는 힘
2017.07 어느날에 만난 김도훈 작곡가
작곡가 김도훈은 히트곡 제조기다. 19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20년 넘게 꾸준히 본인이 만든 곡을 히트곡으로 만들 수 있는 작곡가가 되기란 쉽지 않다.
김도훈 작곡가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히트곡만 나열해도 대한민국 K팝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을 정도다. S.E.S의 '저스트 어 필링'부터 거미의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SG워너비의 '죄와 벌' 소유와 정기고가 부른 '썸' 씨앤블루의 '외톨이야' 백지영의 '잊지말아요' 등 장르도 다양하고 가수의 성향과 캐릭터도 다채롭다. 그만큼 김도훈 작곡가의 스펙트럼은 넓다.
김도훈의 작곡가의 눈썰미가 최근 다시 부각되는 것은 그룹 마마무 덕분이다. 데뷔곡 'Mr.애매모호'로 혜성처럼 나타난 마마무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퍼포먼스로 그야말로 가요계를 접수했다. 이후 마마무는 김도훈 작곡가가 만든 곡 '음오아예' '넌 is 뭔들' '데칼코마니' 등 최근 곡 '나로 말할 것 같으면'으로 줄줄이 히트시켰다.
김도훈이 공동대표로 있는 RBW는 마마무와 시작을 함께한 기획사. 김도훈 작곡가의 창작 공간이 마마무와 원어스, 브로맨스 등 아티스트들이 포진되어 있는 곳이다.
RBW는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위치, 흔히 엔터테인먼트가 포진되어 있는 곳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1층과 지하 1층에 마련된 RBW 내부로 들어가면 깔끔하고 최신식 설비로 기대 이상의 화려함이 눈길을 끌었다.
김도훈 대표의 방에는 마마무가 휩쓴 각종 방송사의 트로피와 김도훈 작곡가가 수상한 상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손을 뻗는 곳에 닿을 수 있는 각종 악기들은 음악이 곧 삶인 그의 일상을 가늠케 했다.
다음은 김도훈 대표와의 일문일답.
-이 방에서의 일과는 어떻게 되나.
"회사 다니는 친구들처럼 일찍 오지는 않는다. 오후 1시~2시쯤 와서 새벽 1시~2시까지 있는다.(웃음) 음악 작업이 밀려있을 때는 새벽에 집에 들렸다가 다시 와서 작업할 때도 있다. 집에 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오는거다. 낮에는 직원들이 와서 컨펌 받으러 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작업에 몰두하기가 쉽지 않다. 집중하고 싶을 때는 문을 잠그고 작업하기도 한다. 이 방에서 많은 것들이 이뤄진다. 회의도 하고, 특히 마마무의 녹음은 모두 이 작업실에서 내가 직접 디렉팅을 한다."
-RBW는 2015년 정식으로 생겨났다. 이전엔 레인보우 브릿지라는 가수 트레이닝 에이전시 프로듀서에서 제작을 하는 엔터테인먼트의 공동대표가 되고자 한 계기가 있나.
"나는 경영은 잘 모른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전혀 아니다. 다만 난 음악을 만들고 가수를 키우고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할 수 있다. 사실 제작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레인보우브릿지라는 회사에서 제작을 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다보니 '한 번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주변의 권유로 고민 끝에 하게 됐다."
-RBW는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신념이나 목표의식이 뚜렷해보인다.
"내 신념은 항상 똑같다. 행복하자는 것이다. 이건 정말 중요한 거다. 가수들한테도 항상 이야기한다. '1등을 목표로 하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라고. 1등이라는 것에 집착하고 누군가를 이기고자 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면 그때부터는 재미가 없어진다. 일은 모두가 즐겁게 할 때 가장 큰 시너지가 난다. 회사 구성원들과 가수들이 항상 즐거운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그런 신념을 갖게 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나도 1등 자리에 오랜 기간 있던 적이 있다. 작곡가로서 큰 영예를 누리고 히트곡을 줄줄이 냈다. 그런데 1등을 하고나서 생각보다 기쁘지 않더라.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일만 하는 나를 발견했다. 1년에 50곡을 쓰던 시절이었다. 일주일에 한 곡씩 냈다. 그땐 그게 됐다. 불과 3~4년 전이다. 2006~2007년도부터 2012년까지 미친듯이 곡을 썼었고 순차적으로 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명예를 얻었는데 행복하진 않았다. 오히려 나는 뭘 하면서 살았지? 일 밖에 안했구나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때 한 대 맞은 것처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 내 삶을 즐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 지점이 살짝만 바뀌면 똑같은 것을 얻으도 훨씬 즐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도훈 작곡가의 곡들을 보면 댄스부터 발라드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작곡가별로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는데, 김도훈 작곡가에게 정형화된 스타일은 없는 것 같다.
"대중적인 관심이 많은 덕이다.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것 같다. 대중적인 히트곡을 쓰는 것과 음악을 잘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음식과 비슷하다. 분식집이지만 맛있어서 몰리는 것도 있고 깊이있는 음식을 잘 만들어서 인기있는 집이 있는 것처럼. 나같은 경우에는 대중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잘 짚는 재능이 있는 거다. 연구도 많이 한다. 지금 트렌드는 무엇인가하고. 그러나 절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고민하지는 않는다. 트렌드를 연구하고 고민하는 일이 나에게는 즐거운 일이다."
-다른 회사와 다른 한 가지가 있다면.
"'우리 회사는 이렇게 달라요' 하고 내세울 정도는 아니다. 경영을 10년 넘게 한 것도 아니지 않나. 사실 작곡가는 혼자 작업하는 것인데 경영은 정말 많은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이더라. 개인적으로 큰 기업들의 경영 방식을 보고 공부를 많이 했다. 다함께 즐겁게 일하고 싶을뿐이다."
-방송에 유독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방송을 좀 나가보기도 했다. 오래 나온적은 없지만 조금씩 나가봤는데 너무 안맞더라.(웃음) 카메라가 돌아갈 때 눈을 어디다 둬야될지 모르겠고 카메라에 나온 내 모습을 보기 싫다. 너무 어색하다. 불편하다. 누가 잘못해서가 아니다. 스스로가 정말 안맞는다. 그냥 안나오는게 낫겠다 싶더라. 민폐끼치는 것 같아서. 방송은 보통 시청률이 잘 나와야 하는데 나는 잘 못하다보니까 폐끼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잘 하려고 노력하고 싶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 노잼의 3박자다.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다. 얼굴을 남들이 알아보는게 싫다.(웃음)"
-마마무의 콘셉트는 확실하다.
"보통 괜찮은 아이들을 뽑은 뒤 그룹을 결성하고 콘셉트도 구상하지 않나. 우리는 마마무라는 끼 많고 재능 있는 퍼포먼스형 아이돌을 염두에 두고 거기에 맞는 인원을 뽑았다. 나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그 편이 더 쉬웠다. 마마무 멤버들이 연습생이던 시절, 곡 '시스루'를 들려주고 안무도 직접 짜고, 파트도 나누고 화음도 넣어 무대를 만들어오라는 숙제를 내줬다. 의상 콘셉트도 생각해보라고 했다. 마마무가 완벽하게 무대를 만들어왔다. '잘 노는 팀'을 만들고 싶었다. 음악적으로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뽑고 싶었다."
-마마무는 실패가 없다. RBW의 좋은 전략과 트레닝이 마마무의 이같은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평가가 많다.
"우리 회사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부분도 확실히 있었지만, 가수가 뜨는 것은 '대중이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떤 가수가 다시 보고 싶은 이유는 많다. 정말 예뻐서 혹은 노래를 잘해서, 또는 재미있어서다. 기분이 좋든 마음이 짠하든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성공하는거다. 마마무는 다시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과 힘이 있는 가수다."
-RBW의 색깔은 무엇인가.
"공연형 가수들이 포진된 회사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라이브에 강한 회사.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잘하는 사람들을 뽑았더니 이렇게 모아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