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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복 Jun 03. 2020

'공대 출신' 조영수 작곡가, 저작권료 1위되기까지

"대학가요제서 대상 받은 것이 계기"


2018년 3월, 작업실에서 만난

조영수 작곡가


 생명공학과를 전공한 평범한 학생은 2000년대 발라드 르네상스를 이끄는 유명 작곡가가 됐다. 음악을 업으로 삼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공대에 진학한 것. 결국 음악은 취미로만 가져야 했다. 이후 1996년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팀을 결성해 '대학가요제'에 출전했고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것이 작곡가 조영수(42)가 음악을 업으로 삼게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조영수는 엄청난 다작의 소유자다. 히트곡 비율도 상당하다. 2003년 본격적으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해 SG워너비, 씨야, 이기찬, 다비치, 박정현, 홍진영 등과 작업해 셀 수 없이 많은 히트곡을 만들었다. 대표적으로는 SG워너비의 '내사람' '라라라' '광' '사랑했어요'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 '산다는 건' 이수영의 '이 죽일 놈의 사랑' 씨야의 '여인의 향기' '미워요' 이기찬의 '미인' 등이 있다. 



조영수는 정통 발라드를 '잘' 만드는 작곡가로 정평이 나 있다. 그 덕에 2000년대 많은 발라드 가수들이 조영수에게 곡을 의뢰했고 그는 밤낮 없이 작업실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 덕에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연속 저작권료 수입 1위, 2016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선정 대중음악 작곡과 편곡 부문 저작권료 1위의 영예를 안았다. 



조영수는 최근 홍진영의 곡 '잘가라'를 작곡한 것은 물론이고 성황리에 마무리한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시상식 음악감독을 맡아 계속해서 다양한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최근 조영수의 작업실을 찾았다. 벨을 누르니 낯선이가 환하게 맞았다. 무려 20kg을 감량한 조영수 작곡가였다. 불규칙한 생활습관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졌다는 그는 최근 몇년간 술과 담배를 모두 끊고 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그는 "예전에는 귀엽다는 소리도 조금 들었는데, 오히려 인기가 떨어졌어요"라며 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작업실에는 얼마나 머무나.



"최근에는 많이 줄어들었다. 일부러 많이 줄이려고 한다. 원래는 하루에 대부분을 작업실에만 있었던 적도 있다. 이제는 딱 일할때만 있으려고 노력 중이다. 요즘에는 거의 작업할 때 하루에 4~5시간 정도만 있는 것 같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



"작곡가 10년 이상 하면서 곡을 많이 발표했는데 주위에서 건강을 많이 챙기라는 말을 들었다. 작업실에만 머물다보니 3~4년 전부터 급격하게 몸이 안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당뇨도 오고 성인병이 와서 아파서 일을 못하게 되니까 안되겠다 싶었다. 그동안은 워낙 일욕심이 많아서 건강에 신경쓰지 못했다."



-건강이 많이 안좋았던 건가.



"살이 엄청 찐 사람들이 걸리는 병들이다. 고지혈증 같은게 왔는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컨디션이 좋아지지 않는 것을 느껴 다이어트를 하게 됐다."


-얼마나 감량을 한 건지.

"가장 쪘을 때보다 20kg 정도 빠진 것 같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지금이 가장 날씬하다. 처음으로 70kg대를 유지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굶는게 아니라 운동하면서 식이요법을 많이 했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렸다."



-술도 끊었나.



"아예 끊었다. 예전에는 잘 먹고 담배도 많이 피웠는데 다 끊었다. 둘다 끊은지는 3년 정도 됐다. 한 번에 끊었다."



-조영수의 24시간은 어떤가.



"지금은 아침에 한 10시쯤 일어나서 혼자 명상도 하고 생각을 많이 한다. 오전에는 주로 커피를 마시거나 사우나에 가고 오후 4시쯤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녹음이 있는 날에는 밤까지 녹음하고 오후에는 주로 편곡으로 하거나 녹음에 집중한다. 예전에는 아침까지 날을 새는 날이 많았는데 이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애쓴다."


-저작권료 1위에 빛나는 작곡가다.

"아마 지금은 아닐거다. 그래도 그동안 꽤 많이 저작권료 1위를 했다. 만든 곡은 총 600곡 정도 된다. 단순히 곡 수로는 김형석 작곡가나 윤일상 작곡가가 훨씬 더 많다. 그러나 나는 2012년부터 2013년도에 정말 많은 곡을 냈다."



-저작권료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한참 많이 들어왔을때는 몇억씩 들어오는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내가 아니라면 김도훈 등 몇 안되는 작곡가들이 모든 발라드를 다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수들이 직접 곡을 만들고 아이돌까지도 자작곡으로 승부를 보는 세상이기 때문에 작곡가들의 색깔이 중요한 시기는 지난 것 같다. 최근들어 곡을 받거나 의뢰하려 오는 이들의 숫자도 크게 줄었다. 작곡가가 업인 나로서는 안좋은 일이지만(웃음) 대중 음악적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상상할수도 없던 일이다."



-조영수의 곡으로 크게 성공한 가수들이 많다. 그 중 몇명을 꼽아본다면.



"SG워너비와 함께 많은 곡을 작업했다. 나에게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가수가 바로 SG워너비다. 또 홍진영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랑의 배터리'가 크게 히트하면서 홍진영의 인지도도 올라갔기 때문에 나도 기분이 좋다. 가수가 주인공이지만 내 곡으로 누군가가 큰 사랑을 받는 것도 굉장히 기쁜 일이다. 이밖에도 오렌지캬라멜의 '마법소녀' '아잉' 등도 꼽고 싶다."



-작곡한 곡들의 장르가 발라드와 댄스, 트로트까지 매우 다양하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재밌는 일이다. 대부분 작곡가는 자기 색깔이 강하다. 나도 예전에는 미디움 템포가 많았고 그것이 곧 내 색깔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음악을 해보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다.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것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트로트도 정말 좋은 장르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곡이지 않나."



-트로트를 함께 하는 것은 독특하다.



"트로트라는 장르는 참 매력적이다. 사실 멋부리는 작곡가들은 기피했다. 내가 '사랑의배터리' 할 때도 '왜 하냐'는 소리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난 재미있었다. 그때는 잘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음에도 정말 흥미롭게 작업했다. 기분 좋은 욕심이었달까. 지금도 어르신들한테도 어필이 된다. 누구나 다 알 수 있다는 것이 좋다."


-600곡 넘게 작곡을 했는데, 영감은 어디서 받나.

"장르가 다를 뿐이지 감성은 같다고 생각한다. 슬프거나 신나거나 두가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신나면 트로트든 댄스든 편곡 상의 문제고 영감은 다르지 않다. 트로트에 어울리는 편곡과 멜로디 구성을 생각하면 된다. 같은 감정으로 쓰기 때문에 크게 어렵거나 하지는 않다. 완전히 다른 음악은 아니다."



-2012년 이후엔 다소 뜸하게 작곡을 한 것 같다.



"10분의 1로 줄었다. 여러가지 복합된 문제다. 일단 건강 때문에 일을 줄여야 했다. 사람이 전성기라는 것이 있으니까 내려오는 길인 것이고 나를 찾는 가수들 수도 줄었으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음악 시장 자체가 자체 제작으로 바뀌니까 스스로 곡을 쓰다보니 일이 줄은 부분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요인은 일을 줄이고 싶은 내 마음이 컸다. 이게 행복한건지 의문스러웠고 일만 하는 나보다는 삶의 질을 좀 높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들어서 정통 발라드에 대한 니즈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분석하고 있나.

"시장은 돌고 돈다. 2003~2010년까지는 발라드가 주를 이뤘다. 2010년에 아이돌이 많아지면서 후크송이 우위를 점했고 가사의 내용보다는 재미있게 꽂히는 가사가 유행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감성이 메마른게 아닌가 싶다. 감정에 호소하는 음악이 없어지다보니 최근에는 아이돌조차도 멜로디컬한 음악을 발표하고 있다. 단순히 신나고 멋있는 것보다 '듣는 음악'에 대한 중요성도 함께 챙겨가는 것이다. 아이돌 음악이 팬덤이 있고, 예전에는 퍼포먼스를 함께 봐야 신나는 음악이 많았지만 지금의 아이돌 음악은 음원으로만 들어도 굉장히 좋다. 예를 들면 방탄소년단의 '봄날'이나 워너원의 '뷰티풀'이 그렇다."



-넥스타 엔터테인먼트의 전속 프로듀서다. 회사 설립을 함께하게 된 계기가 있나.



"대표님이랑 로코베리 작곡가 안영민과 같이 만든 회사다. (만든지는) 꽤 오래됐다."


-현재는 가수 케이시가 소속되어 있다. 어떤 기획사를 꿈꾸는가.

"사실 그동안은 작곡가로서 나의 욕심이 컸다. 회사에서 가수를 키우는 것 보다는 작곡가의 비중이 컸다. 방시혁이 형도 방탄소년단 잘되고 김도훈 형도 마마무로 제작자로서 성공을 거두지 않았나. 나도 욕심이 났다. 작곡가로서보다는 프로듀싱이나 제작에 더 비중을 두고 싶었다. 좋은 가수를 키우고 싶은 생각이 많다. 예전에는 징크스가 있었다. 작곡가가 키우면 망한다는 속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방탄소년단, 마마무 등이 있고 선배님들이 그런 징크스를 깨줬기 때문에 나도 희망을 갖고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가수를 더 영입할 생각은.



"아직 영입할 생각은 없다. 가수의 이미지를 만들고 음악을 창작하기 때문에 만들어가는 재미를 느끼는게 좋다. 기존에 있던 가수를 영입하기 보다는 신인들을 키우는데 집중하려고 한다."



-연습생이 많이 있나.



"아이돌을 준비하는 연습생들도 있고 아티스트로서 곡을 쓰고 노래를 할 줄 아는 가수를 만들기 위해 트레이닝하고 있다."



-제작과 작곡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트렌드 파악이 중요할 것 같다.



"많은 음악을 듣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은 양날의 검이다. 많은 음악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표절시비로 불거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음악을 듣고 영감을 얻는 것은 피하려고 한다. 자기도 모르게 비슷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같은 경우에는 음악 외적인 젊은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뭘 좋아할까'를 생각한다. 문화적인 측면을 봐야될 것 같다.유행하는 장르를 듣고 쓰는게 아니라 어떤 문화가 유행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직접 어린 친구들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린 작곡가들이 어떻게 놀고 문화생활하는지 듣고 물어본다."


-1996년에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4인조로 결성해 대학가요제에 나갔다. 내가 메인 보컬은 아니었고 그때도 작곡을 했다. 노래는 했지만 그때도 가수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곡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도 팀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로 무대에 오른 것이다. 내가 가창한 것이 있긴하다. OST 몇 개와 2007년 올스타 앨범에 한 두 곡씩 부르는 정도였다."



-음악은 언제부터 한 것인가.



"피아노를 배운 것은 9살이다. 그러나 대학은 공대로 진학했다. 연세대학교 생명공학과 출신인데, 원래는 음대에 가고 싶었으나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음악이 업이 되는 것이 싫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취미로만 음악을 했다. 고등학교때 '별밤' 라디오 뽐내기 대회에서 보이스맨 노래를 하고 1등한 적은 있지만 음악을 내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감히 꿈도 못꿨다. 그때 당시만 해도 주변에 음악을 전문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2학년때 대학가요제에 나가서 대상을 받았다. 이후 자연스러베 주변 음악인들을 알게됐다. TV에서나 보던 박진영, 김형석을 사석에서 보게 됐고 가요계에 대한 매력을 많이 느꼈다.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음악계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왔다. 그 당시 김형석을 직접 본게 컸다.(웃음)"


-전문적으로 작곡을 배운 것은 아닌데, 저작권료 1위 작곡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뭔가.

"가요 편곡이나 작곡 등은 모두 독학했다. 의외로 작곡가들 중에는 음악 전공자가 별로 없다. 가요라는 특성인 것 같다. 노래에 전문적인 평가를 매길 수는 없지 않나. 감성이 더 중요하다. 절대적인 어떤 지식으로 평가될 수 없다는 말이다. 가수들도 누가 더 노래를 잘하냐에 따라서 인기를 많이 받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음악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도 작곡가로 잘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될 것 같다."



-최근 작품 중에는 홍진영의 '잘가라'가 또 한번 성공을 거뒀다. 작업은 어땠나.



"정말 잘 맞는다. 홍진영이 워낙에 사람들에게 잘 맞추는 성격이다. 나도 낯을 많이 가리는데 홍진영은 정말 편하다. '잘가라'를 만들기 위해 회의를 할 때 홍진영이 EDM스럽게 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러나 이미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준 바 있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사실 홍진영도 곡을 쓰는 가수이기 때문에 이번 앨범 타이틀 곡을 나에게 의뢰할줄은 몰랐다. 홍진영이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면서 나에게 곡을 의뢰했을 때 고마웠다. 일단 나를 믿어줬다는 사실이 감동이었다."


-올해 각오가 있다면.

"건강도 회복했기 때문에 이제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신기하게도 몸이 회복하고 나니 많은 가수들이 곡을 의뢰하기 시작했다. 올해부터 또 한번 박차를 가해 곡을 써보려고 한다. 예전만큼 몰아서 쓰는 것에는 무리가 있겠지만(웃음)." 



-작곡가로서 이루고 싶은 것은.



"장기적으로는 대중가요 뿐 아니라 영화 음악이나 뮤지컬 등을 해보고 싶다. 더 욕심을 부리면 그쪽에서도 어느정도 좋은 음악을 남길 수 있는 작곡가가 되고 싶다. 영화 음악계에서." 



-영화 음악을 하고 싶은 이유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가 느낀바로는 가요와 많이 다르다. 가요는 짧은 시간안에 승부를 봐야 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게 스트레스이면서도 매력인 부분이다. 영화음악이나 뮤지컬은 순수음악에 가깝고 음악만으로 더 승부를 볼 수 있다. 좋은 음악만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가수의 인기나 트렌드를 배제하고 음악만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나 자신을 믿고 가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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