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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샘 Jan 15. 2020

포도가 재배된다

지형의 특별한 역할

포도밭이 어떤 지형 – 산지, 계곡, 강가ㆍ호숫가ㆍ바닷가 –에 위치하는가에 따라, 또 포도밭의 해발고도와 경사도 및 사면(斜面)의 방향에 따라 포도재배가 받는 지형의 영향은 차이가 난다. 지형조건은 특히 포도재배에 적합하지 않은 기후조건을 보완해 주는 기능을 한다. 포도재배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기후조건을 피하고 이것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지형을 이용하면 또는 인위적으로 지형을 변경하면 포도밭을 일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1. 이러한 지형 중에는 기후조건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적절한 기온과 일조량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주는 지형 특성이 있다산지의 방향과 경사면이 포도재배에 도움을 주는 대표적인 지형이다. 포도밭이 남쪽 또는 남동쪽의 사면으로 25~30°로 경사졌을 때, 태양열을 가장 많이 받는다. 지형의 경사가 10°일 때 일조량이 18%, 20°일 때 37%, 30°일 때 58%로 경사각 커질수록 일조량이 많아진다. 하지만 북쪽에 포도밭이 있을 경우에는 일조 시간도 짧고 또 받는 태양열도 적어서 좋은 포도를 생산할 수 없다. 한편 지형의 경사가 너무 급하면 토양 보전은 물론 노동하기에 불리하다. 따라서 농부들이 포도밭에서 편리하고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25~30°의 경사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독일 라인가우의 포도밭 전경(de.wikipedia.org) -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는 라인 강변 경사지에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예외적으로 포도 재배의 한계 지점인 북위 50°에 가까워 기후조건이 불리한 독일의 포도밭은 세계에서도 맛있는 포도주를 생산하는 이름난 포도밭이 많은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 비밀은 지형의 사면을 이용한 포도밭에 있는데, 독일 라인가우(Rheingau)의 포도밭은 남쪽으로 약 25°에서 30°로 경사져 있어, 일조량을 약 50~58%까지 받는 이상적인 포도 재배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모젤 강변의 대부분의 포도밭은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경사를 가진 언덕에 위치해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포도밭은 모젤 강변의 엘르 마을에 인접해 있는 칼몬트(Calmont)에 있다. 칼몬트 포도밭은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평균 68°의 경사면에 형성되어 있다. 멀리서 포도밭을 바라보면 포도나무가 수직 벽에 붙어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포도나무를 하나씩 말뚝에 묶거나 철사로 고정시켜 재배하고, 수확한 포도는 케이블을 이용하여 운반한다.  

칼몬트의 급경사지 포도밭(wikipedia.org)

어떻게 이런 가파른 언덕에서도 포도밭이 가능할까? 모젤 지방은 포도재배의 북한계선에 위치하여 평지에서 재배하면 일조량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또 매년 기후가 다르기 때문에 일기가 불순한 해에는 일조량의 절대량이 부족해진다. 실제 모젤 지방은 일조량이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 비해 1/3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일반적인 포도재배 조건으로는 포도재배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곳이다. 그래서 포도를 생산하려면 가능한 한 햇볕과 열기를 모두 활용해야만 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모젤 지방의 포도밭은 급경사일지라도 거의 예외 없이 직사광선뿐만 아니라 강물에 반사된 햇볕까지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모젤 강변의 남사면에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라인강 유역의 기후 또한 포도재배에 이상적인 기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도 과수 농업이 발달해 있다. 기후가 적합하지 않은 지역에 농업 활동을 끼워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차가운 날씨에도 잘 자라서 익는 포도 품종을 선택해 심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품종의 포도도 강의 어느 장소에서나 재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강 북쪽 산지의 남사면에 포도밭을 조성했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최상의 포도밭 다수는 남사면에 분포한다. 

 


#2. 포도재배에 적합한 기후조건을 만들어주는 또 다른 지형조건즉 푄(Föhn) 현상을 일으키는 지형(산맥)이 있다. 기온이 낮아 포도재배에 불리한 지역이 다름 아닌 지형(산맥)에 의한 푄 현상 때문에 기온이 높아져 포도재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포도재배 적지가 되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산맥을 넘어온 바람은 넘어오기 전보다 건조해지는데, 건조하면 맑은 날이 많아지게 된다. 그러면 햇빛 비치는 시간이 길어지고 일조량이 많아진다. 이로써 포도밭을 일구기에 안성맞춤이 되는 기후 지역이 되는 것이다.  

보쥬 산맥과 푄 현상에 의한 포도밭(좌)과 알사스 지형도(우)

이와 같은 경우에 해당하는 사례 지역으로 프랑스 알자스와 아르헨티나, 미국 북서부의 포도 재배지를 들 수 있다. 북위 47.5°~49°에 위치한 알자스는 위도로 보아 추운 지역으로 포도를 재배하기에 적절한 지역이 아닌 것 같지만, 오히려 지형조건, 즉 보쥬 산맥의 영향으로 포도재배가 유리한 지역이 되었다. 산맥 서쪽으로부터 오는 바람과 비를 보쥬 산맥이 막아주어 발생하는 푄 현상으로 알자스는 포도재배에 적합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푄 현상의 영향을 받은 알자스 동부지역은 여름에 특히 건조하고 일조량이 풍부하여 포도재배에 적절한 기후가 된 것이다. 프랑스 외에 이러한 푄 현상의 영향으로 포도재배가 가능해진 지역은 안데스 산맥의 영향을 받는 아르헨티나이며, 이 지역은 최근 최대의 포도 산지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포도밭 지역 중의 하나인 북서부의 워싱턴 주는 포도재배의 한계(북위 50°) 지역에 가까운 북위 45°∼49°에 위치하고 있다. 워싱턴의 기후는 비교적 서늘해 이에 맞는 품종인 리슬링, 샤도네이는 물론, 기후가 온화한 지역인 프랑스 보르도의 주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와 론의 주 품종인 시라의 생산도 많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 이유는 워싱턴 서부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평균 해발고도 2,000m의 캐스캐이드 산맥에서 찾을 수 있다. 산맥이 태평양에서 오는 서늘한 기운과 축축한 비구름을 막아주어 산맥의 서쪽은 비가 많이 오지만 포도밭이 몰려 있는 동쪽은 건조하면서 일조량이 매우 풍부한 기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워싱턴 내에서 최대 면적을 자랑하는 콜롬비아 밸리는 사막과 같은 건조한 기후와 적은 강수량, 하루 17시간의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워싱턴에서 가장 오래된, 진한 풍미의 포도주를 생산하는 포도밭이 되었답니다.  

  

참고자료     

김상빈(역), 와인의 지리학, 푸른길, 2018

최영수·김복래·김정하·김형인·조관연, 와인에 담긴 역사와 문화, 북코리아, 2005

정남모, 알자스의 지질학적 특성과 포도 명산지에 대한 지역 연구, <프랑스 문화예술연구> 제31집, 2010

세계일보(2018.2.24.)

www.calmont-mosel.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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