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브랜드는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브랜드인데, 서로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 콘텐츠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게 맞을까요?”
요즘 여기저기서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안 하는 곳이 없다. 뉴스부터 포털사이트, 소셜미디어에서는 여전히 <오징어 게임> 소식을 퍼다 나르고 있다. 항상 세간의 이슈는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되기 마련. 생활용품 브랜드부터 금융사까지, 산업군을 막론하고 광고 배너는 동그라미 세모 네모로 가득하다.
처음엔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고 괜히 뿌듯하기도 했다. 넷플릭스를 구독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 채로 말이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청소년 관람 불가 수준의 잔인한 생존 게임을 다룬 드라마라는 점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영상을 보면서 누가 무슨 역을 맡았고 극을 어떻게 이끌어가는지 보다도, 잔인한 스토리와 대조되는 기괴하고도 독특한 공간 연출이 눈에 더 들어왔다. 공간 관련 영상을 여러 개 찾아 봤다. 그중 미술감독님 인터뷰가 포함된 비하인드 영상과 유현준 교수님의 영상을 참 재미있게 봤다. 그제서야 한 번 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지만 결국 다시 구독해서 보자는 마음은 이기지 못했다.
우리 브랜드는 몇 주 전 이벤트를 진행했다. 기획 단계에서 아니라 다를까 <오징어 게임> 이야기가 나왔다. 다수가 재미있겠다는 반응에 서둘러 기획을 마치고 디자인 시안까지 작업했다. 그 과정에서 동료C가 허를 찔렀다. ‘우리 브랜드는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브랜드인데, 서로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 콘텐츠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게 맞을까요?’ 아… 하루하루 작업을 쳐내기 바쁜 나머지 디자인 단계에서, 아니 그보다 앞선 기획 단계에서 브랜드다움을 점검하지 못했다니.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 다음으로 반성이 이어졌다. 모두가 문제에 공감하여 작업을 중단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이벤트를 홍보했다. 애써 쌓아온 브랜드다움에 치명적인 흡집을 낼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점점 <오징어 게임>이 노이즈처럼 느껴질 때쯤 기사 하나를 봤다.
미국과 유럽 일부 학교에서 할로윈 데이에 <오징어 게임> 복장을 금지했다는 기사였다. 아이들이 복장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 잔인한 게임과 폭력적인 행동까지 모방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 기사를 본 날, 우연치 않게 점심 식사 중에 동료K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요즘 보는 드라마가 있냐는 이야기에 빠지면 섭하지, 자연스럽게 <오징어 게임>이 등장했다. 동료K는 하도 주변에서 말이 많아 본인도 봤는데, 보고 나니 지금의 인기를 과연 좋게만 봐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잔인하고 폭력적인 드라마에 세계가 열광하는 모습을 과연 좋게만 봐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만약 이 드라마가 코로나가 아닌 시기에 방영되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까? 혹시 모두가 갇혀있고 억눌리고 우울하다는 걸 보여주는 건 아닐까? 그래서 더 자극적인 콘텐츠에 열광하는 건 아닐까? 물론 창작자 입장에서 <오징어 게임>은 단순히 자극적인 콘텐츠가 아닌, 빈부격차와 배금주의를 꼬집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어떤 콘텐츠를 소비하고 즐길지는 자유지만, 어떤 식으로 확대 재생산할지는 한번 더 생각해볼만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동그라미 세모 네모가 그려진 광고를 보고서 써 본 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