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간 디자인하며 얻은 인사이트
인스타그램에서 느껴지는 브랜드의 밝고 활기찬 분위기가 좋았어요.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리 브랜드를 알게 된 고객분들이 인터뷰와 리뷰에서 브랜드의 첫인상에 대해 남겨준 이야기다.
입사하고 1년 간 우리 브랜드의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디자인하고 있다. 마케터가 기획을 하면 내가 디자인을 하는 프로세스로, 매주 다음 일주일치 콘텐츠를 한꺼번에 미리 작업한다. 역할이 나누어져 있긴 하지만 기획과 디자인에 서로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결과물을 만든다. 쉽지 않은 과정에서 고객분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은 우리의 메시지와 이미지가 전해진다고 느껴져 크나 큰 보람이 된다.
브랜드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디자인하기 위해 다양한 레퍼런스를 참고하고 직접 실행해 보면서 적지 않은 인사이트를 얻었다. 그중 업무와 소통 측면에서 효율을 높여준다고 생각한 5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처음 관련 업무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일이 많다는 핑계로 귀하게 얻은 인사이트를 놓치는 스스로에게 체크리스트가 되어주길 바라며 이번 글을 썼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규모가 크든 작든, 새삼스럽지만 인스타그램 운영은 필수다. 특히 스몰 브랜드에게 인스타그램은 가장 쉽고 저렴하게 접점을 만들 수 있는 수단인데다가 웹사이트나 오프라인 공간보다도 먼저 고객과 만날 가능성이 높은 접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브랜드 홈페이지에 유입되는 데이터만 봐도 인스타그램이 압도적으로 높다.
MZ세대 트렌드와 마케팅 정보를 알려주는 미디어 채널 '캐릿'에선 MZ세대가 인스타그램을 보고 브랜드의 전반적인 무드를 파악한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브랜드 무드는 어떻게 만들까? 가장 필요한 건 일관성이다. 그중에서도 메시지의 일관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기획 단계서부터 콘텐츠에 브랜드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
'배민라이브'는 배달의 민족에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음악 콘텐츠다. 배달 음식 서비스에서 왜 음악 콘텐츠를 만들까. 배달의 민족은 단순히 '음식을 배달'하는 브랜드를 넘어, 하루 한 끼 맛있는 식사처럼 '일상의 재미를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그 일환이 '배민라이브'다. 이른바 '음악 맛집'을 소개하며 숨은 인디 가수를 발굴하고 그들에게 무대를 제공하는 목적을 가진다. 최근엔 가수와 함께 '음식송'을 만들기도. 기획 의도를 보면 시작점에는 음식과 문화가 있다.
우리 브랜드를 예로 들면, 브랜드 구성원의 건강한 일상을 보여주는 콘텐츠를 여러 차례 기획했다. 고객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함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건강한 삶을 즐겁게 만들자는 브랜드 메시지를 전하고자 싶었다. 채식을 시작한 동료가 만든 채식 요리를 다 같이 맛 본 경험과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동료의 일상을 소개했다. 브랜드 메시지에 공감하고 실천하는 동료들이 모였기에 만들 수 있는 콘텐츠였다. 반응은 상품이나 이벤트 홍보 콘텐츠보다 대체로 좋았다. 브랜드를 만드는 구성원의 실체를 확인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진심이 가닿았으리라.
메시지의 일관성을 반영한 다음에 시각적인 일관성이 필요하다. 시각은 다른 감각에 비해 인지와 연상력이 높고, 그중 컬러는 고유한 감상적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는 대표적인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요소다. 고로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가장 큰 요소라 할 수 있다.
배달의 민족의 브랜드 컬러는 민트색이다. 음식을 배달하는 라이더가 도로 위에서 눈에 잘 띄도록 민트색을 사용했다고, 김봉진 대표가 직접 언급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음식 관련 서비스는 식감을 자극하는 빨강이나 노랑을 사용하는 것과는 확실히 차별화된다. 컬러 외에 투박하게 손으로 깎은 캐릭터와 찢어진 종이와 테이프 같은 개성 있는 그래픽 요소는 배달의 민족 특유의 B급 무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브랜드 컬러를 적극적으로 쓰되, 컬러의 비율을 고려하는 게 좋다. 하나하나의 콘텐츠에 90% 이상 브랜드 컬러를 사용한다면 온 피드가 같은 색으로 단조롭고 지루한 피드가 될지 모른다. 가장 좋은 비율은 70:25:5(기본색:보조색:주색)로, 주색인 브랜드 컬러는 5%면 된다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칼로 자르듯 정확한 비율을 지키려고 하기 보다 작업 시 항상 브랜드 컬러를 인지해 적절한 비율을 유동적으로 찾아 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1주에서 2주치 콘텐츠를 미리 만드는 일이 큰 도움이 된다. 전체 피드의 배색 비율을 점검할 수 있어 시각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다채롭게 디자인할 수 있다.
브랜드 인스타그램이라면 대부분 정기 콘텐츠나 시리즈 콘텐츠가 있다. 그렇다면 이름과 템플릿 만들어 두면 좋다. 템플릿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작업 시간을 줄이는 장점도 있지만, 브랜드와 고객 간의 소통에도 효과적이다. 고객이 규칙적인 템플릿과 특정 이름을 반복해서 보면 자연스럽게 학습되고 어떤 콘텐츠인지 빠르게 인식하도록 돕는다.
당근마켓의 사례를 보자. 최근엔 사용자들이 동네생활 메뉴에 남긴 실제 이야기를 발췌한 콘텐츠가 주기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표지 문구와 썸네일만 바뀌고 컬러와 레이아웃은 동일하게 가져가고, 상단에는 '~소식'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첫장에 너무 많은 글을 넣기보다 핵심만 간략하게 넣자. 템플릿 여부를 떠나 모든 콘텐츠를 디자인할 때 해당된다. 앞서 소개한 당근마켓 콘텐츠도 제목을 두 줄 이상 넘기지 않으며 큼직한 폰트로 임팩트 있게 작성했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서 이미지로 빠르게 콘텐츠를 소비한다. 한눈에 봐도 강렬하고 감각적인 이미지거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만한 문장이어야 스크롤을 내리다가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다음장으로 넘기게 할 수 있다. 특히 정보성이 짙어 글이 많은 지식 콘텐츠라면, 첫장에는 핵심 정보와 고객이 관심 가질 만한 문구로 다듬어보자. 그 뒤에 붙는 정보는 일러스트나 도표 같은 시각 요소를 사용해 고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면 좋다.
동양화 기법에는 '여백의 미'라는 개념이 있다. 여백은 비어 있어 미완성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공간을 여유롭게 만들고 대상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든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한 폭의 동양화라 생각해보자. 적절한 컬러 비율로 보기 좋은 템플릿을 만들었다 해도 그래픽 콘텐츠로만 가득하다면 전체 피드를 봤을 때 무미건조하거나 답답해 보일 수 있다. 특히 우리 브랜드는 젊고 활기찬 무드를 만들기 위해 플랫하고 볼드한 그래픽과 캐릭터를 주로 사용하다보니 자칫 복잡해질 가능성이 컸고, 덜어내자니 브랜드의 특유의 다채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사진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숨 쉴 여유를 주면서 재미있어 보이도록 만드는 일이 필요했다.
예로 스타벅스 인스타그램은 그래픽보다 사진 콘텐츠를 더 많이 사용한다. 위 사진의 오른쪽처럼 그래픽으로만 채웠다면 단조로운 무드에 브랜드 성격도 파악하기 어려웠을테지만, 시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사진을 중간 중간 사용한 덕분에 훨씬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브랜드나 콘텐츠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우리 브랜드의 경우 사진 비율을 높이고 나서 바로 효과를 봤다. 일단 육안으로 봤을 때 전체 피드에 리듬감이 느껴졌고, 실제 고객 반응 또한 잘 정돈된 그래픽이나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콘텐츠보다 사진 콘텐츠가 대체로 더 좋은 반응을 보였다. 특히 그래픽으로만 단순하게 제작했던 정보성 콘텐츠에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후부터는 눈에 띄게 반응이 달라졌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준 사진을 더 잘 쓰는 팁이 있다. 사진에서도 브랜드 이미지를 느낄 수 있도록 우리는 다음 과정을 밟는다. 사진 촬영 시 브랜드 컬러가 들어간 배경이나 소품, 의상을 적극 사용한다. 위에서 소개한 스타벅스의 사진 콘텐츠 속에 항상 초록색 심볼이 들어간 피사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때 피사체 뒷 배경에 복잡한 요소를 제거하고 깔끔하게 정돈하는 것이 팁이라면 팁이다. 정리할 수 없다면 편집 시 피사체에서 중요한 부분을 확대해 배경의 영향을 적게 받도록 만든다. 하지만 매번 고퀄리티의 사진을 촬영하는 일은 쉽지 않을테다. 무료 이미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때는 브랜드 컬러나 브랜드가 가진 분위기와 유사하게 색감을 보정한다.
요즘 스마트폰은 대부분 디스플레이가 크다. 최근에 나온 아이폰 13은 디스플레이 크기가 6.1인치고 프로 맥스는 6.7인치다. 처음엔 폰트가 작아도 디스플레이가 크니까 큰 문제라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내 친구만해도 디스플레이가 4.7인치인 아이폰 SE1를 계속 사용해왔다. 한손에 쏙 들어오는 아담한 사이즈가 좋아 고집스럽게 쓰다가, 마침내 SE1과 유사한 크기의 디스플레이를 가진 아이폰12 미니가 나오자 그제서야 바꾸기도 했다.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는 환경은 저마다 다르다.
물론 손가락으로 확대해서 볼 수도 있겠지만, 일단 대부분 스크롤을 내리기에 바쁘다. 웬만한 인지도가 있는 브랜드가 아니라면 확대는 커녕 읽지도 않고 지나칠 가능성이 높다. 폰트 크기가 작아지지 않게 최대한 핵심만 담고, 가로세로 1080px 대지를 기준으로 가능한 한 최소 35p 이하가 되지 않도록 하자. (마케터와 함께 테스트를 하며 찾아낸 수치다.)
핫하다는 맛집이나 카페를 알게 되면 일단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본다. 그런데 가장 최근 글이 몇 달 전? 지금도 운영을 하는 곳인지 의구심이 든다. 스몰 브랜드일수록 생존신고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 규모가 있는 브랜드에 비해 브랜드 접점이 극히 적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이 아니면 활동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창구가 거의 없을테니 말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주말을 포함해 매일 한 개씩 피드를 발행한다. 도달수를 높히는 데 하루에 하나의 피드가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이틀에서 사흘 사이에 하나를 올리니 도달 수가 낮아졌고, 하루에 두 세개를 올리니 언팔로우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지속적으로 업로드하되 노이즈가 되지 않도록 횟수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루에 하나가 어렵다면 스토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추천한다. 스토리는 24시간 뒤 휘발되기 때문에 피드만큼 공들이지 않아도 되고, 팔로워의 피드를 차지하지 않아 개수가 많아도 서로에게 부담되지 않는다. 터치 몇 번으로 살아있음을 알릴 수 있다니, 오프라인 공간 리뉴얼이나 웹사이트 업데이트와 비교하면 너무나 쉽지 않은가.
지금까지 브랜드의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디자인하는 5가지 방법을 정리해보았다. 나름 중요한 순서대로 소개했다. 일관성, 그중에서도 메시지의 일관성이 선행되어야 그 다음 방법을 차례로 적용했을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항목만으로도 업무와 소통의 효율성은 높여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콘텐츠의 본질인 메시지 여부와 퀄리티에 따라 효과를 볼 수도, 보지 못 할 수도 있다.
우리도 여러 요인에 따라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 5가지는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자세와 최소한의 가이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할 때마다 상기시키려고 노력한다. 잘 다져놓은 땅 위에 어떤 채소를 심을 건지, 그 채소로 어떤 요리를 만들지 늘 고민하고 시도하는 일이 다음 단계에 필요한 일인 듯하다. 각자가 마주한 상황과 문제에 따라 적절히 취하며 업무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
'팬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진심과 성실이다. 이것이 기본이다.
- 나가오카 겐메이,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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