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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paca Prime Oct 22. 2020

방아쇠의 무게

손 닿지 않는 곳에서

2010년 6월의 어느 날,  ‘바그람’의 어느 부대원이 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의 아내가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했고 그는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결정을 한 것이다. 그의 이름도 계급도 출신도 모르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지난 행적을 상상해 보았다. 나보다 먼저 아프간에 도착해서 힘겨운 쟁탈전의 최전선에서 투입 되었다. 탈레반이 설치한 폭발물에 차량과 동료들이 터져나가는 것을 지켜봤고, 총알의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이한다. 몇 개월을 차디찬 MRE를 먹으며 자신의 목숨만큼 자신의 소총과 전우들을 챙긴다. 조국이 맡겨준 짐을 의심 없이 자원하여 매고 용감하고 명예로운 해병으로써 한치 부끄러움 없이 명령을 수행할 것이라 매일 다짐한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돌아온것은 M4의 방아쇠 보다 무거웠던 이별통보와 무기력하고 차가운 현실이었다.


그의 아내를 상상해 본다. 수돗꼭지가 빡빡해 신경질 적으로 당기자 물이 터져나와 부억은 물바다가 되었지만 아내는 혼자 해결 해야한다. 올리브가병을 따려고 아무리 힘을써도 꼭 물린 유리병의 유리병은 열릴 생각을 않는다. 남편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돌아오는건 울리는 자신의 소리일뿐 그는 거기에 없다. 거리의 연인들은 얄밉도록 다정하고, 일과를 미치고 혼자 누운 차디찬 침대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집보다 더 쓸슬하다. 그녀는 외롭고 힘들다. 그러나 그녀의 통보를 들을 남편의 다음 행동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비난의 화살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의 몫이다.


착잡한 소식을 듣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몇 번을 해보았다. 여전히 받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바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지레 넘어갔을 것인데,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후에는 그 주인공이 내가 될 것만 같았다.  


아니, 이미 나는 그 ‘바그람’의 어느 부대원이다. 아내는 나에게 늘 불만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번 파병을 와이프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거절을 할 수도 없었다. 국가는 남편을 데려갔고, 나는 그 명령에 부복했다. 나는 군인이다. 가라면 가고 쏘라면 쏘는 군인이다. 무심한 국가가 원망스럽다. 대대장의 외식이 역겹다. 그들은 나를 도와줄 수 없다. 불만이 가득한 나의 아내, 아니 곧 나의 엑스가 될 그 여자는 이혼 전문 변호사를 만나러 가고 있다. 7개월 된 우리의 아기를 뒤에 태우고. 난 해명하고 싶지만 할 말이 없고, 말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다. 난 여기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헬만드 지구. ‘Hell’만드. 내가 가장 용납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다.


다시 전화기를 들어 아내의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자기야?” 
“응. 바빴어?” 
“정말 미안해. 엄마랑 동생이랑 다운타운에 나왔는데 아기가 너무 울고 보채고 난리도 아니었어. 정신이 쏙 빠지게 한바탕 하고 나서야 전화기를 봤는데, 미스드 콜이 너무 많은 거야.”
“아~ 그랬구나. 아기는 이제 울음 다 그쳤어?” 
“어. 누구 닮아서 이렇게 목소리가 큰지 모르겠어. 얘가 울면 주변 사람이 다 나만 쳐다봐.”
“글쎄… 누굴 닮았나?” 
“능청은.” 
“아무 일 없으면 됐어. 장모님이랑 처제랑 좋은 시간 보내고 조심해서 들어가.” 
“걱정 많이 했어?” 
“누가 누굴 걱정해? 파병 나온 사람은 난데, 자기가 날 걱정해야지.” 
“ㅎㅎ 그러게 말이야. 근데 자기 목소리가 그래서.” 
“아니야. 그냥 밥이 맛대가리 없어서 기분이 나빠서 그래.”
“정말이지?” 
“정말이야.”
“그럼 내가 내일 맛있는 거 잔뜩 싸서 보낼게. 또 한 달 걸리는 거 아니야?”
“라면이랑 그 초콜릿에 찰떡 들은 거 그거 많이 보내.” 
“알고 있네요.”
“ㅎㅎ 알았어. 그만 갈게. 내 뒤에도 전화 줄 섰다.”
“응 빠이~~~ 사랑해~~~” 
“응 나도. 빠이~~” 


울음이 울컥 나는 걸 참았다. 뒤에 줄 서있는 상병이 보면 놀릴게 분명했다. 쿨하척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모자를 눌러쓰고 나왔다. 내 소총을 내려다보니 개머리판 뒤에 먼지가 잔뜩이다. 숙소에 돌아가 칫솔로 깨끗이 닦아 내고야 나는 하루를 시작한다.


그때 그 7개월 울보 아기는 오는 11월에 열한 살이 된다. 내가 알고 있던 전쟁과는 전혀 다른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을 짐작한다. 관념과 가치관이 아직도 자라고 있는 청소년과 고집 있는 중년 아저씨의 갈등은 피할 수 있었으면 피해 가고 싶지만, 이런 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떠난 젊은 전우의 기억에 허전한 마음 한편을 커피로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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