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퍼스널 브랜딩
기획자가 되면 블로그를 해야 한다는 말은 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실제로 다른 기획자분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들어가서 배우는 점도 많았고, 자기가 공부한 걸 정리하는 차원에서도 블로그를 운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어느 정도 노하우나 인사이트가 쌓이면 블로그를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다.
근데 왜 지금이야?
회사에 입사해서 '기획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일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에 기획자라는 직무를 선택하고 일을 시작할 때는 'UX'라는 단어 하나만 보고 일했다. 건방지게도 나는 "UX 전문가야"라는 생각을 했고, 컴퓨터와 인지심리를 복수 전공한 나에겐 그게 당연해 보였다. 그래서 구글에 검색하는 키워드들도 대부분 UX, UI 화면 설계에 관한 것들 뿐이었다.
처음에는 뭔가 멋있어 보이고, 있어 보여서 좋았다. UX 방법론들을 공부하고, 디자인 툴을 다루는 걸 공부하는 것이 좋았다.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리고 가끔 인지심리 관련 글을 읽고 있으면 내가 뭔가 전문가가 되어 연구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뭔가 나 혼자만 일하는 느낌.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느낌. 내가 일한 것이 티가 나지 않는 느낌. 무언가 잘 모르겠지만 이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느끼고 있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기획자는 화면을 디자인하고 화면 계획서만 만들면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부끄럽게도 이전에는 화면 설계서만 멋있게 만들면 그게 좋은 기획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좋은 기획자란 무엇인지 조금씩은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배우고 알게 된 좋은 기획자가 무엇인지 또 그런 기획자가 되기 위해 하는 노력들을 기록하기 위해 지금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럼 왜 브런치야?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어디에서 시작할지 고민이 시작된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 네이버 블로그부터 내가 모든 걸 다 직접 만드는 워드프레스까지 선택은 자유지만 내가 고민했던 선택지들의 장단점을 나열해보고 내가 왜 브런치에서 블로그를 시작했는지 적어보겠다.
1. 접근성 : 네이버는 우리나라 검색 점유율 1등 포털이다. 따라서 노출량 또한 다른 플랫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2. 수익성: 네이버 블로그는 다른 플랫폼들보다 수익화하기 훨씬 쉬운 구조로 되어있다. 기본적으로 노출량이 많다 보니 블로그 판매, 광고문의 등이 훨씬 많이 오는 것 같다.
1. 질보단 양: 접근성이 높다 보니 양질의 콘텐츠들이 올라오는 경우는 드물다. 네이버 블로그의 적당한 사진과 이모티콘, 3줄에서 4줄 정도의 감탄사를 포함한 전형적인 글쓰기 양식은 밈화 되어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너무 저질의 콘텐츠가 많다.
2. 상업화: 수익성이 있으면 상업화가 되는 건 당연한 것이고 돈을 버는 것은 나쁜 게 아니지만 정보 검색을 위해서 블로그를 활용하는 사람들에게 네이버 블로그는 광고판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나부터도 정보검색은 구글을 통해서 노출되는 블로그들만 보고 있고, 네이버 블로그는 맛집 찾을 때나 보는 정도이다. 그마저도 요즘은 안 한다.
3. 검색 최적화: 네이버 블로그 글들은 구글에서 검색이 잘 되지 않는다. 구글만이 아니라 네이버 말고 다른 곳에서 거의 검색이 안된다고 보면 된다. 물론 네이버 자체만으로 검색량이 압도적이다. 단, '한국에서만'. 그렇지만 대부분 기획자나 개발자들이 정보검색을 할 때 구글을 사용하는데 나의 글이 구글에서 노출이 안 되는 건 굉장히 치명적이다.
만약 여러분이 기획자이고, 당신의 생각이나 글을 담아 다른 기획자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네이버 블로그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네이버 블로그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수익화해서 부수입을 버는 것이 목적이라면 최우선적으로 고려해볼 만한 것 같다. 그냥 '나의 부수입을 위한 광고판'
1. 자유도: 티스토리의 디자인은 굉장히 자유도가 높다. 기본적으로 제공해주는 테마들도 훌륭하지만 다른 분들이 만든 테마를 가져와서 적용할 수도 있고, 코딩을 할 줄 알면 본인이 커스터마이징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런 부분은 기획자들이 HTML, CSS 등을 공부하고, 적용해볼 수 있는 나만의 테스트베드가 생기는 큰 장점이 되기도 한다.
2. 수익성: 티스토리도 수익화가 가능하다. 구글의 애드센스를 붙일 수 있기 때문에 잘 운영하면 부수입을 정말 많이 받을 수도 있다. 많은 개발자분들이 티스토리 블로그로 부수입을 만드시는 걸 본 적이 있고, 충분히 좋은 파이프라인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3. 검색 최적화 및 분석: 구글 애널리틱스를 포함한 여러 트래킹 도구들을 블로그에 삽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블로그의 여러 데이터를 살펴보고, 그에 따라서 더 수익성을 높이는 광고 배너 위치나 형태를 고민해 볼 수 있다. 기획자로서 이런 데이터 분석과 마케팅 기획을 연습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
1. 노출량: 티스토리는 기본적으로 다음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다음 검색 시 노출이 잘 되지만 네이버에 비하면 검색 점유율이 너무 낮아 잘 노출되지 않는다. 아무리 검색 최적화를 잘해서 구글에 노출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건 글을 잘 쓰고 양질의 콘텐츠를 올린 정말 훌륭한 블로그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활동하시는 기획자분들이 많이 없는 것 같다. 노출이 되지 않아서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2. 러닝 커브: 위에 장점으로 제시된 것들을 티스토리에서 할 수 있는 건 맞다. 그렇지만 저 모든 걸 하려면 관련 지식을 공부해야 하고 그만큼의 러닝 커브가 소요된다. 글 자체에만 집중해서 퀄리티를 높이는 것보다 기타 다른 기능을 공부하는데 시간을 많이 소모할 수 있다. 많은 기능을 쓸 수 있는 건 좋지만 그만큼 고민의 시간도, 배움의 시간도 소요된다. 일을 하면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에 이건 분명한 단점.
개발자 출신 기획자이거나 웹에 대한 전반적인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신 분들이 하시면 좋은 플랫폼 같다. 그래서 개발 블로그의 대세가 티스토리가 된 걸지도 모르겠다. 나도 전공이 컴공이기도 하고, 주변 개발자 친구들이 티스토리 블로그에 애드센스 달아서 돈 버는 거 보고 혹해서 진지하게 시도해볼까 생각해 봤지만, 생각보다 수익이 많은 것 같지도 않고, 시간을 들여 배워야 할게 많아 선택하지 않았다.
1. 높은 자유도: 티스토리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테마를 사용할 수 있고, 훨씬 더 자유도가 높다. 이 부분은 티스토리에 상위 호환. 하고 싶은 모든 걸 할 수 있다.
2. 검색 노출: 구글 SEO 관련 플러그인이 잘 되어 있어 티스토리보다 훨씬 구글 노출에 유리하다.
3. 그냥 만능: 사실상 블로그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수 있는 선택지이다.
1. 시간: 티스토리 상위 호환이지만 그만큼 시간도 많이 든다. 시작하기도 전에 공부만 하다가 제목 한번 적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다. (이건 진짜. 다른 블로그 관련 글을 봐도 워드프레스로 블로그를 하기 위해서 사전 작업만 한 달을 준비했다는 후기를 읽은 적이 있다.)
2. 비용: 진짜 치명적인 단점인데 워드프레스는 도메인 호스팅비를 내야 한다. 맘에 드는 테마도 돈을 내야 한다. (굳이 돈을 내고 해야 할까?)
워드프레스로 블로그를 운영하면 정말 전문가 같다. 기획자분들 중에도 워드프레스로 운영하시는 유명한 기획자분들이 많다. 실제로 구글에 검색해도 해당 블로그 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정말 전문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나만의 퍼스널 브랜딩을 하기 위해 가장 어울리는 형태는 워드프레스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만큼 시간과 비용 노력도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처음 시작하는 것보다는 다른 플랫폼에서 나의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글인지 먼저 테스트해보고 이후에 옮겨가는 것이 좋은 방법일 듯하다.
장점
1. 힙하다: 뭔가 너무 추상적이고 느낌적인 느낌이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미디엄은 해외에서도 활용하는 정말 힙한 블로그 형태이다. 특히나 영어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너무 좋은 글들이 쏟아지는 곳이다. 해외 유명한 서비스들이 공식적으로 팀 블로그를 운영하는 플랫폼이기도 하고, 유명한 개발자, 디자이너, PM 등의 글들은 다 여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생각한다. 브런치에 훌륭한 글들은 미디엄에 있는 글들을 번역한 것들도 많다. 그 정도로 콘텐츠의 퀄리티는 단연 압도적인 공간.
2. 간결함: 글을 쓰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콘셉트이다. 별다른 테마나 플러그인을 설치할 수 없지만 글을 쓰는데 필요한 것만 딱 모아져 있는 공간이다. "블로그는 글을 쓰는 곳이야.", "사진을 보고 싶으면 인스타로 가", "동영상을 보고 싶으면 유튜브로 가". "디자인을 보고 싶으면 핀터레스트나 비핸스로 가" "여긴 미디엄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1. 빈약한 한국어 콘텐츠 : 사실 개인적으로는 미디엄이 한국에 정착하기 바랐다. 그래서 미디엄이 더 많은 한국사람들을 위한 서비스와 지원을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미디엄에서 활동하는 기획자는 커녕 한국사람 조차 드문 게 현실이다. 영어로 블로그를 작성할게 아니라면 미디엄은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쓴 글을 한국 사람이 읽고, 한국사람이 공유하고, 한국사람이 댓글을 달아야 의미가 있지.
2. 한글 폰트: 그냥 할많하않.
참 아쉽지만 이미 한국에서는 브런치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 같다. 해외에서 일을 하고 영어로 글을 작성하는 게 아니라면 브런치보다 특별한 장점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굳이 브런치가 있는 상황에서 선택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1. 양질의 콘텐츠: 기본적으로 브런치는 작가 지망생들이 글을 쓰는 공간이다. 개인적인 에세이 수준의 글도 분명 있지만, 오늘 뭐했는지 단순히 나열하는 일기 같은 글들은 적어도 없다. 에세이여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조리 있게 쓴 글들이다. 그게 아니면 개발, 기획, 디자인 같은 전문성이 있는 정보성 글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런 글들이 모여서 실제로 책으로 출간이 되는 멋진 공간이다. 작가 신청을 통해 승인된 사람만 글을 발행할 수 있는 점이 이런 장점을 만드는 것 같다.
2. 고급짐: 나를 알리는 목적의 블로그라면 적어도 글을 쓰는 공간 자체도 멋진 곳이어야 나를 멋지게 알릴 수 있는데 브런치는 그런 점에서 참 포지셔닝을 잘한 것 같다. 다른 곳은 블로그 하면 그냥 '블로그' 한다.라고 말하지만 '브런치'는 '브런치 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모두가 서로를 '작가님'이라고 부른다. 미디엄은 힙하지만 브런치는 고급지다.
3. 카카오: 브런치는 카카오가 운영한다. 티스토리는 다음이 운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카카오나 다음이나 같은 회사인데? 그게 그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브런치의 글은 무려 카카오의 메인에도 노출이 된다. 다음과 네이버라면 네이버가 단연 압도적이다. 하지만 카카오와 네이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미 검색 노출은 모바일이 대세가 된 지 오래고 모바일 트래픽은 네이버에 비해서 카카오는 전혀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네이버 블로그들과 경쟁해서 네이버 메인에 걸리는 것보다 브런치에서 내가 정성 들여 쓴 글이 카카오 메인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 구글 노출도 잘 된다. 초기에 글만 잘 쓰면 카카오의 푸시로 트래픽을 늘릴 수 있고, 그 트래픽으로 자연스럽게 구글의 검색 노출이 올라가서 블로그가 잘 성장할 수 있는 구조이다.
4. 간결함: 한국에서 만큼은 미디엄의 상위 호환이다. 글 자체의 집중할 수 있는 간결한 콘셉트의 디자인이고, 한국어, 한글의 가독성 및 UX가 훌륭하다. 작가들은 별다른 디자인 요소를 신경 쓸 거 없이 본인의 글에만 집중하면 된다. 블로그는 글을 쓰는 곳이고, 작가는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화려한 사진, 이모티콘 다 필요 없다.
1. 작가 신청: 작가로 승인이 되어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글이 노출되는 것은 분명한 진입장벽이다. 이건 작가로 승인된 사람들은 해당이 안 되겠지만 분명 지금도 승인을 기다리는 누군가 또 브런치를 고려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분명 단점이자 허들로 작용한다.
2. 수익화할 수 없음: 수익화를 어떤 식으로든 할 수 없다는 건 양질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작가들이 만드는데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 다른 플랫폼처럼 광고를 다는 것은 나도 원치 않지만, 책을 만들어서 파는 것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고, 작가들에게 꾸준하게 수익을 조금씩이라도 벌 수 있는 요소가 추가되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브런치에 좋은 글을 쓰러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3. 디자인: 나는 글을 쓰는 것, 본질에만 충실한 브런치의 디자인 콘셉트가 좋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고, 더 많은 테마나 커스텀 요소가 없는 건 단점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있는데 안 쓰는 거랑 없어서 못 쓰는 건 분명히 다르다.
내가 브런치를 선택했기 때문에 브런치에 대해서 주관적으로 더 좋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브런치 말고도 개인적으로 티스토리나 워드프레스는 기획자들이 선택하기에 굉장히 좋은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공부할 것이 많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기 때문에 경력이 높으신 분들이 많이 선택하시는 것 같다. 다만, 나 같은 주니어 기획자는 그날그날 회사 업무를 쳐내는 것도 벅차고 많은 시간을 블로그에 쏟을 수 없다. 적당히 글만 잘 쓰면 알아서 잘 크고, 나를 알리기에도 적절하고, 알려지면 업계에서 그래도 조금 괜찮게 보이는 플랫폼은 브런치가 가장 적절한 것 같다. 결론은 브런치 하세요.
그럼 나도 기획자인데 블로그 할까?
당신이 기획자라면 무조건 해라. 기획자가 자기 일 잘하는 거 티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포트폴리오가 블로그인 것 같다. 개발자는 깃허브, 디자이너는 비핸스, 기획자는 블로그. 우리 모두 그냥 이력서에 블로그 주소만 넣어도 뽑고 싶은 그런 기획자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