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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Jan 05. 2024

042. 상대적 시간 박탈감

엄마도 저녁에 나가서 놀고 싶어




얼마 전 지인과 아주 오랜만에, 2년 만에 만날 약속을 잡게 되었다. 그녀가 제안했다.

"그날 저녁에 영화 시사회 있는데 그거 같이 볼까?"

나는 대답했다.

"나 저녁에는 못 나가."

첫째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만 6세가 된 오늘까지 오후 5시 이후에 홀로 집을 나선 적이 없다. 단 하루도. 


물론 아이들이 유치원에 간 낮 시간은 자유롭게 쓰는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리랜서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일을 하는데 그 시간을 대부분 쓰는 편이다. 가끔 저녁 시간에 자유부인으로 놀았어, 간단하게 술 한잔했어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물론 집집마다 스케줄이 있고 부부간의 타임테이블이 다르다. 나의 경우는 남편이 야근이 많은 편이기에 내가 아이들을 도맡아 케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에 있어서 대체 인력이 없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때론 아쉬울 때가 있다. 반차를 내고 싶어도 대체 인력이 없는 것과 같달까. 


결국 그 지인과는 낮에 점심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기혼이지만 아이 없이 남편과 오붓하게 살고 있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아이를 가진다는 건 대체 어떤 것이길래 모든 사람들이 180도 바뀌는 거야? 궁금해."

내가 대답했다. 

"정면에서 대형트럭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을 때, 아이가 없는 사람은 '아이고야 나 죽었구나'하고 생각하고 아이가 있는 사람은 '아이고야 나 죽으면 우리 애는 어쩌나'하고 생각하는 거야."


그녀와 헤어지고 곰곰 생각해 보았다. 아이가 있고 없고의 그 차이가 내가 박탈당한 6년간의 저녁 시간을 잊게 하고 있었던 건가 싶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차이의 효력이 이제 슬슬 떨어지나 보다. 아이들이 한 시간 정도는 저희들끼리 집에서 놀 수 있게 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하나 둘 늘어가는 걸 보며 내가 되돌려 받아야 할 시간이 있음을 깨닫고 있다. 


때때로 나도 저녁에 나가서 지인들을 만나고 싶다. 낮 시간에 시간을 맞출 수 없는 사람들도 있고 간단히 술 한잔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남편이 아주 가끔 회사일을 마친 후 잠깐이라도 지인을 만나는 날에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곤 한다. 아니 느끼곤 했다. 난 저녁에 약속을 잡을 여지조차 없는데. 지금은 익숙해져서 그런 박탈감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태까지 잊고 있던 아쉬운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걸 보니 때가 되었나 보다. 아이들이 나에게서 독립을 시작하는 때. 내가 아이들로부터 내 시간을 돌려받을 때. 하지만 난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대형트럭이 눈앞으로 달려올 때 아이들 하원 걱정을 하는 게 엄마라고. 그 거대한 책임감이 아직 너무 크다. 최진영의 시간은 나 혼자 쓰지만, 엄마의 시간은 나와 내 아이들까지 함께 쓰는 시간이니 말이다. 


시간에 대한 아쉬움 따위 좀 더 미뤄도 될 것 같다. 그래도 그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아예 잊는 건 또 안되니까 이렇게 적어 놓는다. 잠시 미뤄두긴 하지만 잊지는 말아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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