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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Jan 28. 2024

043. 병을 뒤로 미루는 사람

엄마의 현실적 정의 1.



얼마 전 지인이 아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독감예방을 주사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독감에 걸렸고, 두 아이 역시 독감에 걸렸다.

"언니, 저 독감 걸렸었어요. 애들이랑요."

그녀의 말속에서 집에서 지지고 볶고 했을 그 상황이 드라마처럼 펼쳐졌다. 고생했다는 대답도 민망해서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고생도 그런 쌩고생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두 아이와 함께 코로나에 걸렸을 때였다. 아이들이 연이어 열이 나고 나도 열이 나는 상황. 열만 나나, 몸도 바스러지게 아프다는 거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내 아픔은 자연스레 뒤로 밀렸다. 내 아픔은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열이 40도 가까이 오르고 있었으니까.

회사를 다니는 상황에서 아프면 병가를 낸다. 직장 상사에게 "나 아프니 하루 이틀만 좀 대타를 구해서 일하세요. 돌아와서 다시 빡세게 할게요 엉엉." 하는 공식 서류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상황에서 아프면 내 병한테 대기를 신청한다. "지금 나 아플 때가 아니니 나중에 좀 와줄래?" 하는 신호를 보낸다.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엄마들은 안다. 그 신호가 진짜 통한다는 걸. '아프면 안 돼 아프면 안 돼 아프면 안 돼'이 말을 주문처럼 외우면 자기세뇌가 되는지 신기하게 아픔이 뒤로 밀린다. 잠깐 모르핀 같은 진통제를 맞는 듯 한 느낌도 든다. 몸의 모든 긴장을 총 동원해서 병과 아픔을 밀어내고 밀어낸 후, 어느 정도 상황이 진정되면 대기시켜 놓은 병이 후루루 몰려온다. 밀물처럼.


두 아이와 나까지 세 명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코로나를 일주일 넘게 겪어냈더랬다. 일주일 후 코로나 동안의 아픔보다 더 큰 피로감이 한 번에 몰려오는 걸 경험했었다. 사람들이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 있다. 너무 바빠서 아플 시간도 없다고. 엄마들에게는 이 말이 현실이다. 엄마의 시간을 먹고 엄마의 시간에 기대어 사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프면 안 된다. 병과 아픔 따위 아이들의 웃음 앞에서는 버러지 같은 거다.


어제오늘 약간의 몸살기운이 있어서 후다닥 약을 먹었다. 몸살기운 말고 약기운 때문에 가물거리는 나에게 이제 막 7살 된 첫째가 다가와 말한다.

"엄마, 베개 갖다 줄까?"

마음이 찡해져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이제 아이들이 커가면서 엄마도 아파야 할 때 아플 수 있겠구나 싶었다.

독감러쉬를 이겨낸 내 지인에게 이 자리를 빌려 동질감 섞인 위로를 건넨다. 당신의 고생이 헛되지 않아서 아이들이 다시 씩씩해진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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